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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1969.11.29
    지정일
    낙죽장이란 불에 달군 인두를 대나무에 지져가면서 장식적인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는 기능 또는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낙죽이 물건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고대 중국에서부터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문 기술이었으나 조선 순조(재위 1800∼1834)때 박창규에 의해 일제강점기까지 전승되었다.

    낙죽은 온도를 맞추어 그려야 하고 인두가 식기 전에 한 무늬나 글씨를 마무리지어야 하기 때문에 작업 경험과 속력을 필요로 하는데, 주로 화살대·침통·칼자루·병풍·담뱃대·부채·대나무필통 등에 쓰인다.

    낙죽은 접는 부채의 맨 처음과 마지막에 쓰이는 두꺼운 대나무(합죽선)살에 가장 많이 쓰인다. 합죽선에는 나비무늬를 많이 사용하지만 간혹 박쥐무늬도 보인다.
  • 1996.11.30
    지정일
    농요는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하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들노래 또는 농사짓기 소리라고도 한다. 토속민요의 하나로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부르며 지방에 따라서 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결성농요는 금곡천 유역에 인류가 정착하여 농경문화가 발달하면서 크게 발달하였다. 내용은 용신제·모내기·건젱이·뚝매기·아시매기(논매기)·쉴참·만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내기소리인 ‘어럴럴럴상사리’와 논매기소리인 ‘얼카덩어리’또는 두레소리 등은 이 지방에서 자생한 소리이다.

    결성농요는 순수 우리 가락이며, 근래에 들어와 예전의 농요와 두레(공동작업을 하기위한 조직)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홍성에 살고 있는 예능보유자 최양섭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2012.11.30
    지정일
    1944년에 태어난 임순옥은 이모이자 스승인 서정순으로부터 바느질을 배웠다.

    임순옥은 조선왕조 궁중의상 복식 등 전통복식 제작에 종사해 왔고, 공방을 통해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대한민국 한복, 침선 문화상품 공모대전, 전라북도 기능경기대회, 대한민국 미대회 등의 다수 수상 경력이 있다.
  • 1985.12.1
    지정일
    평택은 소샛들이라는 넓은 들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농산물이 풍부하였고, 이는 평택농악을 이루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또한 평택 근처의 청룡사는 일찍부터 사당패들의 근거지가 되어 조선 말기에는 그들의 농악이 크게 발달하였다. 그래서 평택농악은 두레농악인 동시에 걸립패농악(중들이 꽹과리치면서 염불하고 동냥하는 일)의 성격을 갖는다.

    농악에 사용되는 악기로는 꽹과리, 징, 북, 버꾸, 호적, 나팔이 있다. 편성은 영기수, 농기수, 나팔수, 호적수, 상쇠, 부쇠, 종쇠, 징수 1, 징수 2, 설장구, 부장구, 상장구, 북, 상버꾸, 부버꾸, 종버꾸, 꼬리버꾸, 상무동, 종무동, 삼무동, 칠무동, 중애(사미), 양반으로 되어있다.

    농악수들은 옛날 군졸들이 입었던 의상을 입고 그 위에 색띠를 걸쳐 매며 머리에는 벙거지나 고깔을 쓴다. 악기에 있어서 징과 북이 타지역에 비하여 적으며 소고와 법고의 구별이 없다.

    가락의 가림새가 분명하며 노래굿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또한 길군악칠채는 경기농악에만 보이는 장단으로 평택농악의 길군악칠채는 다른 지역과 구분된다.

    평택농악은 두레농악의 소박한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공연성이 뛰어난 남사당패 예인들의 전문적인 연희를 받아들여 복합적으로 구성한 수준높은 농악이며, 무동놀이(어른의 목말을 타고 아이가 춤추는 놀이)가 특히 발달하였다.
  • 1985.12.1
    지정일
    이리농악은 익산(옛 이리)지방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호남우도농악에 속한다. 익산시 새실마을은 예로부터 마을농악이 왕성했고, 김제·정읍 등지에서 전문적인 농악을 배워온 사람들을 받아들여 오늘과 같은 높은 수준의 농악단을 배출할 수 있었다.

    이리농악은 용기, 농기, 쇄납, 나팔, 사물(쇠4, 징2, 북2, 장고4), 법고(불교의식에서 쓰는 작은 북), 잡색(양반, 대포수, 조리중, 창부, 각시, 무동)으로 편성된다.

    농악수들은 치배 또는 군총이라고도 하는데 흰 바지 저고리에 색동달린 반소매의 검은색 쇠옷이나 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르며 머리에는 상모와 고깔을 쓴다.

    쇠가락에는 일체, 이채, 삼채, 외마치질굿, 풍류굿, 오채질굿, 좌질굿, 양산도가락, 호호굿, 오방진가락 등이 있다.

    판굿의 절차는 인사굿, 오체질굿(오른쪽으로 돈다 하여 우질굿), 좌질굿, 풍류굿, 양산도, 긴매도지(미지기 : 쇠와 장구가 마주보고 전진후퇴), 삼방진굿, 방울진굿, 호호굿, 달라치기, 짧은매도지, 짝드름, 일광놀이, 구정놀이(개인놀이), 기(旗)쓸기 순서이다.

    상쇠의 부포놀이가 매우 다양하고 장구의 가락과 춤이 발달되어 있으며, 소고춤의 기법이나 진풀이가 많은 편이다. 비교적 느린 가락을 자주 쓰며, 가락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변형 연주되어 리듬이 다채롭다. 풍류굿, 덩덕궁이(삼채굿)에서는 악절마다 맺고 푸는 리듬기법을 쓰는 등 가락의 기교가 뛰어나다.<

    이리농악은 마을사회의 역사와 그 명맥을 함께 하는 민속예술로 농사의 고달픔을 잊고 서로의 화합과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1985.12.1
    지정일
    강릉농악은 강원도 태백산맥 동쪽에 전승되어 오는 대표적인 영동농악의 하나로 농경생활을 흉내내어 재현하는 농사풀이가 있기 때문에 농사풀이농악이라고도 한다. 유래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강릉농악은 농기, 쇄납(날라리), 꽹과리, 징, 북, 장구, 소고, 법고(불교의식 때 쓰는 작은북) 및 무동(사내아이)으로 편성된다. 연주자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홍·청·황의 삼색띠를 두르고 무동들은 여러 가지 색깔이 섞인 옷을 입는다.

    강릉농악에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3∼4일간 농악대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농악과 고사를 나는 지신밟기, 마을의 공동 기금을 걷기 위해 걸립패로 꾸며 농악을 하는 걸립농악, 모심기와 김매기 등을 할 때 하는 김매기농악, 김매기가 끝난 후 질 먹을 때 하는 질먹기, 건립굿이나 봄철 화전놀이 때 큰 마당에서 벌이는 마당굿이 있다.

    타지역에 없는 달맞이굿(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 횃불놀이, 놋다리밟기(젊은 여자들이 1명을 뽑아 자신들의 허리 위로 걸어가게 하는 놀이)가 있고, 두레농악이라 할 수 있는 김매기농악과 질먹기, 길놀이농악이 있는 것이 특색이다.

    강릉농악은 단체적인 놀이를 위주로 하여 농사의 고달픔을 잊고 서로의 화합과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1985.12.1
    지정일
    고성농요는 경상남도 고성지역에서 전승되어오고 있는 전통농요이다. 고성농요는 하지무렵부터 시작되는 농사소리가 주축을 이루며 이를 ‘등지’라고도 하는데, 등지는 모내기소리의 경상도 방언이다.

    고성농요는 모판에서 모를 찌면서 부르는 모찌기소리,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모심기소리, 보리타작하며 부르는 도리깨질소리, 김맬 때 부르는 상사소리 및 방아타령 등으로 이밖에 부녀자들이 삼을 삼으면서 부르는 삼삼기소리, 물레질하며 부르는 물레타령 등이 있다.

    고성농요의 노랫말에는 이 고장 농민들의 생활감정이 풍부하게 담겨 있으며 향토적인 정서가 물씬 풍긴다.

    고성농요는 투박하고 억센 경상도 특유의 음악성을 간직한 경상도 노래이지만, 지리적인 영향으로 음악적인 면에서는 전라도의 계면조 선율구조로 되어 있다.
  • 1985.12.1
    지정일
    농요란 농민들이 힘들고 바쁜 일손으로부터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들노래 또는 농사짓기소리라고도 한다.

    예천 통명농요는 경북 예천군 예천읍 통명리의 농민들이 매년 모심기를 할 때 힘겨운 노동으로 인한 고달픔을 해소하기 위하여 부르는 농요로 조선 중기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심기할 때 부르는 <아부레이수나>와 모를 다 심고 논에서 나오면서 부르는 <도움소소리>, 논을 맬 때 부르는 <애벌매기소리>와 <상사듸여>, 논을 다 매고 나오면서 부르는 <방애소리>·<에이용소리>, 논매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봉헤이>로 이루어져있다. 또한 부녀자들이 부르는 <삼삼기노래>·<베틀노래>·<도해따기> 등이 있다.

    모심기소리나 논매기소리가 모두 느리고, 길게 빼는 음을 많이 쓰고, 노래를 메기고 받을 때에 앞소리의 끝과 뒷소리의 앞을 부분적으로 겹치게 불러 이중창적인 효과를 내는 점은 예천 통명농요의 특징이다.

    예천 통명농요는 전원다운 맛과 소박한 멋이 있고 곡과 가사의 내용이 향토적인 농요이다.
  • 1988.12.1
    지정일
    태평무는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춤으로 표현한 것이다.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1900년대의 무용가이며 명고수였던 한성준이 경기 무속춤을 재구성하여 추었던 춤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남녀가 왕과 왕비의 복장을 하여 궁중풍의 웅장하고 화려함을 보여 주며, 춤장단은 진쇠, 낙궁, 터벌림, 도살풀이 등으로 다른 춤장단에 비해 구성이 복잡하고 까다롭다. 장단의 변화와 함께 겹걸음, 잔걸음, 무릎들어 걷기, 뒷꿈치 꺾기 등 디딤새의 기교가 현란하면서도 조급하지 않은 절제미를 보여준다.

    동작이 섬세하고 우아하며 동작 하나하나에 절도가 있는데, 이동안류의 춤은 서민적인 소박함과 귀족적인 정서가 혼합된 형태로 흥과 멋, 장중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강선영류의 춤은 엄숙함과 장중함이 배어 있고 율동이 크면서도 팔사위가 우아하고 화려하여 춤의 기품을 느낄 수 있다.

    태평무는 우리나라 춤 중에서 가장 기교적인 발짓춤이라 할 수 있는 공연예술로서 민속춤이 지닌 특징을 잘 표현해 주고 있으며 세계에 견줄 만큼 예술성이 높다.
  • 1989.12.1
    지정일
    제주도는 흔히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고 하여 삼다도라고도 한다. 직업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민요도 많이 전해지고 있어 민요의 보물창고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주도에서 불려지는 토속적인 민요와 통속적인 민요는 민요를 부르는 사람들의 직업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뉘는데, 농사짓기소리, 고기잡이소리, 일할 때 부르는 소리, 의식에서 부르는 소리, 부녀요와 동요, 통속화된 잡요로 나눌 수 있다.

    농사짓기소리로는 <사대소리>, <밭밟는소리>가 있고, 고기잡이소리로는 <노젓는소리>, <멸치후리는소리> 등이 있다. 일하면서 부르는 소리로는 <고래소리>, <가래질소리>, <방앗돌굴리는소리> 등이 있으며, 의식요에는 <행상소리>, <달구소리>, <꽃염불> 등이 있다. 부녀요와 동요로는 <시집살이노래>, <애기흥그는소리>, <원님노래> 등이 있다. 잡요로는 <오돌또기>, <이야홍타령>, <서우젯소리> 등이 있다.

    제주민요는 일하면서 부르는 노동요가 많고 부녀자들이 부르는 민요가 흔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노랫말도 특이한 제주도 사투리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경기지역 민요보다 구슬프다. 제주민요는 한스러운 느낌을 푸념하듯이 나타내어 색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 보유자 없는 보유단체로 인정 : 2017.4.3.(사단법인 국가무형문화재 제주민요보존회)
  • 2013.12.2
    지정일
    보령지역에는 예로부터 남포오석으로 불리는 우수한 돌이 생산되어 전국적으로 유명한 고을이었다.

    남포오석은 석질이 좋아 오랫동안 글씨를 보존하는 관계로 비석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조선시대 왕릉의 절반 정도도 남포 오석으로 비석을 만들 정도였으며, 오늘날 대통령 묘비도 남포오석을 사용하였다. 그러다 보니 보령지역에는 어느 곳 보다 석공업이 발달하였고 우수한 석장이 나타났다.

    현재 보령 지역에는 많은 석장이 있는데 그 중 고석산(1955~ )은 보령 웅천 출신으로 보령에서 뛰어난 석장으로 활동하며 불상 등 많은 우수한 석공예품을 제작하고 있으며, 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68년 정종섭을 스승으로 하여 석공예 입문한 고석산은 불교미술 전람회 조각부문 우수상, 전국 기능경기대회 석공예부분 입상,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 선정, 문화재수리기능사 지정 등의 화려한 전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통 기법에 의한 석공예 기능 전수에 노력하고 있다.
  • 2013.12.2
    지정일
    - 굿은 형태에 따라 크게 선굿과 앉은굿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선굿은 무당이 서서하는 일반적인 굿을 뜻하고, 앉은굿은 충청도 지역에서 무당이 앉아서 주로 경을 읽는 지역적, 행위적 특성으로 인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앉은경, 독경, 양반굿 등으로도 칭함.

    앉은굿은 역사적으로 불교, 도교 등 다른 종교와 상호관계를 맺으며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 무속의 한 갈래로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특히, 서산․태안을 포함한 충남 서북부지역(내포지역)의 내포 앉은굿은 그 전통이 강해 우리나라에서 특징적인 앉은굿 무속문화권을 이루고 있음.

    - 내포 앉은굿은 과거부터 서해안에 접해있는 충남 서북부지역(내포지역)의 무사안녕을 위한 기원과 풍어제, 산신제 등의 민속(무속)문화 등에 깊은 영향을 끼치며 현재까지 계승되어 왔으며 향후 지역 민속문화의 전승 및 활용 등 보존가치가 있어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 관리하고자 지정함.
  • 1994.12.5
    지정일
    진도홍주는 고려 때 중국 원나라에서 들어왔다는 소주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삼별초를 토벌하러 온 몽고인들이 홍주 내리는 비법을 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주장을 하지만, 재료로 쓰이는 지초는 황폐한 몽고땅에서 재배가 힘들기 때문에 생약을 활용한 홍주를 전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려 후기 이후 우리 선인들은 어느 지방에서나 한주, 백주라 하여 소주를 제조하여 마셔왔다. 원래 소주는 조정에서만 사용하였으나 차츰 서민층에 대중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소주에 약제를 가미하는 지혜가 생겼고, 약소주 또는 한소주로 발전되어 지방마다 특색있는 유명한 술을 낳게 된 것이다. 진도홍주 역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져 토속 명주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만드는 과정은 누룩의 제조, 담금 및 발효, 증류의 3단계이다. 홍주는 소화를 도와 식욕을 왕성하게 하고, 알콜 40% 이상의 도수가 높은 술인데 목 안에 큰 자극을 주지 않고 적은 양으로도 취기를 느끼게 하며 숙취가 없고 칵테일을 할 수 있는 효능과 특징이 있다.

    진도홍주는 해방 전까지는 살림이 넉넉한 집에서 일반적으로 제조되어 왔으나 이후 주류단속이 심하자 부자집보다는 생활이 어려운 부녀자들이 생계수단으로 은밀히 제조하여 그 비법이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1993년 창립한 진도전통홍주보존회에서 보존, 개발, 산업화하고 있으며, 기능보유자 허화자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 1994.12.5
    지정일
    농악은 농부들이 두레를 짜서 일할 때 치는 음악으로 꽹과리·징·장구·북과 같은 타악기를 치며 벌이는 음악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다.

    전라남도의 농악은 구성방식·복장·음악성 등을 기준으로 볼 때 크게 좌도굿, 우도굿, 도서해안굿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중 도서해안굿은 남해와 서남해 일대인 고흥군 금산면과 완도, 진도 일대에서 행하여지는 농악으로 길굿이 육지의 것과 다르고 당제를 중심으로 신과 친근성을 지니는 등 좌도·우도 어느 지역권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

    고흥 월포농악은 도서해안굿의 일종으로, 임진왜란(1592) 당시 군대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농악을 연주한데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나 확실하지는 않다. 농악의 구성은 덕석기·농기·농악기·영기·쇠·농부·징·장구·북·벅구·소고·대포수·양반으로 되어있다.

    문굿을 온전히 보존하여 치고 있고 당제와 관련하여 종교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며, 춤과 기예가 활기차고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농부’라는 소년의 역할이 돋보인다. 현재 고흥 월포농악은 최병태씨가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있다.
  • 2011.12.6
    지정일
    송서는 말 그대로 책을 읽는 소리를 말한다. 본래 한학을 공부하는 글방에서는 책읽는 소리, 즉 독서성이 사용되었다. 독서성은 어떤 종류의 책을 읽는가에 따라 음영에 가깝기도 하고 선율적인 가창에 가깝기도 하다. 이 가운데 음악적 선율이 두드러진 몇 가지가 전문 소리꾼에게 불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이 연행하는 시창이나 송서는 극히 제한된 글을 노래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 현행 전통음악에서 시창으로 불리는 노래는 ‘관산융마’가 대표적이며, 송서의 경우는 서도명창 김정연이 남긴 ‘적벽부’와 ‘추풍감별곡’, 묵계월이 전승한 ‘삼설기’가 있다. 이외에 김덕순이 불렀던 ‘경포대시’와 ‘십재경영’ 등의 율창 자료가 남아있기도 하다. 이들 시창은 한시의 낭송에서 유래된 것이며, 송서는 한문독서성에 바탕을 두고 전문예능인들이 음악적으로 세련되게 다듬어 만든 악곡이다.

    한편 일반인들이 서당 교육을 통해 전승한 송서는 또 다른 계열로 전승되고 있다. 송서·율창은 과거 선비들이 뜻 문자인 한자 공부를 위하여 가락을 넣어 읊조렸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일반인들의 송서·율창은 한시나 명문장에 음률을 넣어 노래조로 읊조리는 것인데, 서당에서 글을 읽을 때 운율에 맞추어 부르던 것을 말한다. 오언五言이나 칠언율시를 낭송하는 경우에는 이를 따로 시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송서는 계면조의 애조 띤 맛을 주는 간단한 율조를 넣어서 서도식으로 읽는 소리조에 가까우며, 율창은 음의 높고 낮음과 길이를 나타내는 평상거입平上去入을 달아 누구나 동일한 음을 낼 수 있다.

    경기도의 문화재로 지정된 송서·율창은 전문가의 소리와 일반인의 송서를 모두 포함한 경우로 볼 수 있다. 보유자 한병옥이 2019.8.3. 작고하여 전수교육조교 이석기가 공연 및 전승활동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