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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1996.12.10
    지정일
    누비는 옷감의 보강과 보온을 위해 옷감의 겉감과 안감사이에 솜, 털, 닥종이 등을 넣거나 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안팎을 줄지어 규칙적으로 홈질하여 맞붙이는 바느질 방법이다. 우리나라의 누비는 면화재배 이후 적극적으로 활성화되었으며 조선시대의 다양한 실물자료들이 전해지고 있다. 승려들이 일상복으로 입는 납의는 헤진 옷을 수십 년 동안 기워 입은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점차 누비기법으로 발전하여 방한과 내구성, 실용성 등이 뛰어나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누비는 누비 간격이나 바느질 땀수에 따라 세누비·잔누비·중누비 등으로 나뉘며, 형태에 따라 오목누비·볼록누비·납작누비로 크게 구분된다. 누비 간격은 잔누비 0.3㎝, 세누비 0.5㎝, 중누비 1.0㎝ 이상으로 구분된다. 세누비·잔누비 중에서도 옷감 2겹만을 누벼주어 겉모양이 오목오목하면 오목누비라 하고, 솜을 여유있게 두고 누벼주어 겉모양이 볼록한 입체적인 효과를 나타내면 볼록누비라 한다. 또 얇은 솜을 두거나 닥종이를 이용하기도 하고 옷감만으로 누벼주어 평면적이면 납작누비라 구분하였다.

    누비용구로는 옷감재질과 동일한 실, 누비 두께에 따른 다양한 바늘 종류, 가위, 인두, 밀대, 자, 골무 등이 있다. 누비 바느질 기법은 홈질이 대부분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박음질도 사용된다. 의복이나 침구류에는 규칙적인 직선누비가 주로 사용되었으나 주머니나 보자기류에는 누비 자체를 문양으로 살려 곡선과 직선으로 조화를 이룬 것도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 손누비는 세계 유일한 재봉법으로 그 정교함과 작품성이 자수를 능가하는 예술품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나, 지금에 와서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라져가고 있다.
  • 2008.12.10
    지정일
    완초장은 완초를 재배한 후에 선별․가공하는 기능, 완초에 물감을 들이는 염색처리 기능, 염색 완초의 적절한 배열로 미적인 요소를 살려내는 기능까지 3단계 기능을 가지고 있는 장인을 말한다.

    완초공예품은 ‘삼국사기’에 신라 때부터 사용했다고 기록됐다. 조선시대에는 관청에서 민간에 공납을 요구하는 품목 중 하나로 왕골을 포함시켰는데 이것은 완초 공예품이 매우 귀한 물건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완초장 한명자 선생은 완초공예 기능인 편조법(손을 이용한 엮기법)으로 화방석, 그릇형태, 팔각형 함 등 아름다움과 쓰임새가 결합된 생활 속의 공예품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완초공예 기능 전승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 2008.12.10
    지정일
    현재의 인천 서구 지역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면서 정조 13년(1789) 서곶면이라는 방리가 기록되어 남아있다.

    그 후로 행정구역의 명칭이 서곶으로 개편되면서 지금까지도 긴 역사를 이어오며 소중한 농경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인천 서구의 농경문화의 발달은 조선시대 또는 그 이전으로 추측할 수 있다.

    『서곶 들노래』는 인천 서곶 지역의 농민들이 옛날부터 모심기와 김매기를 할 때 부르던 소리 농요로서 모찌기, 모심기 소리는 꺾음조의 소리로 부드러움을 자랑한다.

    매기 소리는 애벌, 두벌, 세벌매기로 나눠져 농군들의 힘을 실어주는 경쾌한 리듬의 선창의 짧은 장단과 후창의 긴 장단의 교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 2008.12.10
    지정일
    전통사회에서 농악은 크게 세 가지 존재방식을 갖는다. 첫째, 대보름 무렵에 하는 당산굿이나 마당 밟기와 같은 의식과 관련된 농악, 둘째, 두레꾼과 함께 김매기 등에서 치던 두레굿과 같이 노동과 관련된 농악, 셋째 판굿과 같이 놀이와 관련된 농악이 그것이다.

    현재 전승되는 “갑비고차 농악”은 이 중 놀이와 관련된 판굿 형태의 농악이며, 이 안에서 농사일을 놀이로 재현하는 농사굿 놀이가 주 내용을 이룬다.

    이런 농사굿은 경상북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보이는데 지역적으로 먼 강화에서 비슷한 내용의 농악이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2008.12.10
    지정일
    전통사회에서 전승되어 조선말기에서 20세기 초에 특히 성행하였던 노래의 하나로서 전문예능인들의 노래, 곧 기생·사당패·소리꾼과 같은 전문가들이 긴 사설을 기교적 음악어법으로 부르는 노래를 잡가라고 하며 이보다 단순한 비전문가들의 노래인 민요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휘모리 잡가는 빠른 속도로 몰아간다는 뜻의 잡가이고 서서 부른다. 장형시조의 사설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며 해학적이고도 재미있는 말솜씨로 엮어지고, 사설시조와 유사한 점이 많으나 장단과 창법에 있어서 구별된다.

    소리꾼들이 부를 때 흔히 처음에는 긴잡가를 부르고 다음에 입창을 부르고 나서 마지막에 휘모리잡가를 불렀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휘모리잡가로는 곰보타령·생매잡아·만학천봉·육칠월·흐린 날·한잔 부어라·병정타령·순검타령·기생타령·바위타령·비단타령·맹꽁이타령 등이 있다.
  • 2017.12.10
    지정일
    외연도 당제는 서해안의 외딴섬에 행하지는 마을 신앙으로, 매년 음력 2월 15일 거행되는 전통행사이다.

    외연도 당제는 전통문화의 상징 요소가 다수포함되어 충남 해안의 민속신앙의 전형으로 볼 수 있으며, 당제, 풍어제, 전횡장군 사당제 등 여러 제향행사가 거행되며, 제물마련 절차, 도서지역만의 특색이 담긴 풍물소리 등이 특정이다. 이러한 제향은 유교식 축문 독축 없이 헌작과 재배, 무당의 고사덕담이 추가된 비유고식 제의 절차를 갖추고 있어 보다 민중적인 신앙 양상을 보여준다.

    당제는 조선시대 중기 이후 외연도에 주민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거행되었다고 추정하며,1970년대 이전까지는 연 3차례 거행되었으나, 이후 1987년에 주민들의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정월제사로 축소되어 복원되었으나 전통을 고수하여 제향을 지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유 무형의 문화유산 요소를 갖춘 외연도 당제는 충남 도서지역을 대표하는 마을신앙인 동시에 한국의 민간신앙의 측면에서 볼 때 종교적 욕구의 변화 속에서 산신(山神)과 인물신(人物神)의 분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앙자료이므로 한국 민간신앙의 보고(寶庫)로도 평가 할 수 있다.
  • 1986.12.11
    지정일
    징은 타악기의 하나로 금정 또는 단순히 금이라고도 한다. 중국 고대로부터 널리 쓰여 온 악기로 우리나라에는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중국 명나라로부터 들여와 군대의 악기로 사용했고, 또 종묘악·무악·법악·농악에도 널리 사용하였다.

    징은 구리 160, 상납 43의 무게비율로 녹여 만드는데 대정, 가질대정, 앞매꾼, 전매꾼, 센매꾼, 풀무꾼이 한 조가 되어 제작을 한다.

    제작과정은 놋쇠녹임, 늘품질, 도둠질, 냄질, 싸개질, 달금질, 울음잡기, 가질, 재울음의 순인데 재울음은 망치질 한번으로도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나는 예민한 작업이다.

    징의 생명은 소리에 있다. 지방에 따라 왕왕거리는 소리, 굽이치는 소리, 길게 울리는 소리, 끝이 올라가는 소리 등 다양하다. 제대로 된 징의 소리는 깊고 긴 여운이 있으며 가슴깊이 파고드는 호소력이 있는데 김천징의 소리가 바로 이런 특징을 갖는다.

    징장 기능보유자인 김일웅씨는 4대째 함양에서 징을 만들어온 외조부 밑에서 기술을 익힌 후 김천 황금동 약물내기에 농악기 공장을 차려 지금까지 40여 년간 황소울음을 내는 듯한 김천징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 1986.12.11
    지정일
    농요는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하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들노래 또는 농사짓기소리라고도 한다. 토속민요의 하나로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부르며, 지방에 따라서 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예천 공처농요는 낙동강 연안을 중심으로 널리 전승되던 노동요이다. 내륙의 외딴 마을이었기에 이웃 문화의 유입과 혼합됨이 없이 오직 이 마을에서만 불려진 순수한 민요이다.

    내용은 모심기노래·논매기소리·타작소리·걸채소리·칭칭이(쾌지나칭칭) 등으로 짜여진다. 모심기노래는 모를 심으면서, 논매기소리는 논을 매면서, 타작소리는 보리를 타작하면서, 칭칭이는 논매기 후에 밭을 나오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이 민요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라고 한다.

    예천 공처농요는 향토색을 지닌 채 전승되어 왔으며, 농민의 슬픔과 기쁨을 담고 있다. 예천군 풍양면에 살고 있는 예능보유자 황기석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1977.12.13
    지정일
    동래지역에 전승되는 민속놀이의 하나로 지신을 진정시키고, 잡귀를 물리치는 민간신앙적 마을굿의 한 형태이다.

    지신밟기는 옛부터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일종의 가면행렬놀이로서 마을과 집안의 평안을 빌고 나아가서는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종교성을 띤다. 현재의 동래지신밟기는 조선 후기에 행해지던 것을 원형으로 재구성하여 1970년 경부터 민속놀이로 다듬은 것이다.

    동래지신밟기는 음력 12월에 악기, 의상, 도구 등을 준비하며 조선시대 각 계층의 신분인 사대부, 포수, 하동, 각시 등 35명 내외의 인원을 구성하여 놀이연습을 한다. 사대부는 총지휘자격이고, 하동과 포수는 상대역으로서 흥을 돋우는 구실을 한다. 하동과 포수가 사대부를 상대로 하여 벌이는 해학적인 대사는 양반을 조롱하는 풍자성이 깃들여 있다.

    놀이의 구성은 주산 지신풀이, 당산 지신풀이, 우물샘 지신풀이, 생원댁 지신풀이의 네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산과 당산에 먼저 고사를 지내고, 마을로 내려와 마을 우물샘에 고사하고 풀이를 한다. 마지막으로 집집마다 돌며 지신밟기를 행한다. 지신을 밟아주면 집주인은 사례로 술, 곡식, 돈을 내놓는데 곡식과 돈은 마을의 공동사업에 쓰여진다.

    다른 민속놀이가 풍물놀음을 위주로 하는 것과 달리 동래지신밟기는 굿거리 장단에 덧배기춤을 위주로 함이 특징이다. 현재는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와 전수학교에서 전승·보급에 힘쓰고 있다.
  • 2003.12.15
    지정일
    백광훈은 누대에 걸쳐 영덕 지방 옹기제조법을 전수하였고, 전통적인 옹기제조방법을 비교적 잘 고수하고 있으며, 옹기의 품질이 아주 우수할 뿐만 아니라 40여년간 외길로 옹기를 만들고 있다. 더구나 경북에서 옹기업이 가장 성행한 영덕지방 옹기일의 마지막 보루이다.
  • 2016.12.15
    지정일
    상여 디딜방아액막이소리는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왕조시대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인명의 손실이 많았을 때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민간신앙」의 한 방법이었습니다. 의술이 발달한 현대인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짓일는지 모르나 옛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질병을 예방하고 또 치유할 수 있다고 믿어 왔음.

    이러한 민간신앙의 의식을 행할 때는 「소리」를 동반했는데 이를 일러 「거창상여 디딜방아액막이소리」 또는 「거창 디딜방아액막이소리」라 하여 왔음.
  • 2016.12.15
    지정일
    한국의 전통적인 제의식에는 상주권공재, 생전예수재, 시왕각배제, 영산재, 수륙재의 다섯 종류가 있다.

    상주권공재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천도하는 가장 규모가 작은 재, 생전예수재는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을 천도해 주기를 바라며 미리 행하는 재이며, 시왕각배재는 명부의 十王에게 천도를 위해 재를 올리는 의식으로 중간 규모의 재이고, 영산재는 규모가 가장 큰 재로 국가나 기관 등의 주재로 국가나 기관 등에 중요한 인물들의 천도를 기리기 위해 치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재이며, 수륙재는 본래 물과 육지에 떠도는 孤魂을 위해 베푸는 재로 불교의 종교적 의미가 가장 많이 깃든 재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그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위해 설치하는 齋壇의 종류가 달라지며, 그에 따라 재를 거행하는 순서나 내용도 달라진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7호 ‘아랫녘수륙재’와 ‘영남영산재’는 그 목적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별도 지정한 바 있다.

    영남영산재의 범패는 신라시대부터 연행되어 오던 불교의식과 그에 불리던 의식 노래로서의 梵唄, 또 이를 반주하는 징, 북, 꽹과리 등의 기악반주, 그리고 각종 齊壇을 꾸미는 莊嚴 등이 그 예술성과 함께 종교성, 역사성, 문화성, 지역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영남영산재의 美는 그 예술적 가치와 함께 종교적 가치, 역사적 가치, 문화적 가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영산재를 지속적인 계보 전승 및 지역 문화유산 보존관리를 위해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 2004.12.16
    지정일
    모필장은 문방사우의 하나인 붓을 만드는 사람과 그 기술을 말한다.

    붓은 먹을 함유하되 균일하게 발산할 수 있어야 하고, 마모에 오래 견딜 수 있는 내구력과 붓끝인 호의 갈라짐이 없어야 하고, 탄력과 유연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재료로 양의 겨드랑이 털, 족제비 꼬리털, 산토끼털 등 여러 동물들의 털이 사용되는데, 추운 내륙지방의 짐승일수록 품질이 좋다.

    붓의 구성은 촉과 붓대롱, 그리고 큰붓의 경우 붓촉과 붓대롱을 연결하는 각통으로 되어있는데, 붓대롱은 주로 대나무를 사용하고, 각통은 참죽나무를 많이 쓴다.

    붓의 제작과정은 선별-탈지-정모-혼모-분모-의체와 작촉-필촉 삽입의 복잡하고 섬세한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기능보유자인 김종춘씨는 10대 때부터 붓제작에 입문하여 전통공예의 맥을 잇고 있는데, 특히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황모붓과 암노루 겨드랑이털을 사용한 장액붓의 제작에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다.
  • 2008.12.16
    지정일
    불화는 불교 교리를 알기 쉽게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예배용·교화용 탱화 제작을 주로 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15호 불화장 권영관은 불화장으로서 전승 관계가 뚜렷하게 증명되는 자이다. 그의 부친 권정두는 20세기 초반 대불모이자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에 많은 불화를 남긴 양완호로부터 전수를 받아 전국적으로 뛰어난 불화, 불상 조각 등을 제작하였으며, 권영관은 다시 부친에게서 전수를 받았다.

    1962년에 입문하여 현재까지 부산에서 46년간 오로지 탱화 제작에만 종사해 왔다. 1972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주최 제3회 불교 미술 전람회 불화 부문에 후불탱화를 출품하여 우수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1973년 제4회 때에는 최고상을 수상하였고, 다음 해인 1974년 제5회 때에는 특상을 수상하는 등 수상 경력이 매우 뛰어나다.

    범어사와 삼광사 등 부산의 사찰뿐만 아니라 전국 사찰에 봉안되어 있는 그의 주요 작품 또한 50여 점에 이르고 있다. 그의 문하에는 현재 8명의 전수자가 불화 제작 기능 전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불화 제작에 있어 불교 경전 내용을 도상화할 수 있는 기량과 함께 안료와 배접 방법에서도 전통적인 제작 방법을 충실히 지켜가고 있다. 2008년 12월 16일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15호 불화장으로 지정되었다.
  • 2003.12.19
    지정일
    죽력고는 청죽을 잘개 쪼개 불에 넣어 구워 스며 나오는 진액[죽력]을 소주에 넣고, 꿀과 생강즙을 넣어 끓는 물에다 중탕하여 제조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중기 이후에 제조되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죽력고는 대나무가 많은 전라도 지방에서 빚은 약용주로서, 한방에서는 어린이가 풍으로 갑자기 말을 못할 때 구급약으로 사용되었는데, 생지황·계심·석장포를 넣어 제조하기도 하였다.

    최남선은 평양의 감흥로와 전주의 이강주 및 죽력고를 조선의 유명한 술로 기록한 바 있다.

    기능보유자 송명섭은 30여년간 전통적인 방법에 의하여 술 담그는 법을 전수해 오고 있으며, 국순당의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는가 하면, 전통주의 맥을 잇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