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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1970.7.22
    지정일
    광주칠석고싸움놀이는 주로 전라남도 일대(현재의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칠석마을)에서 정월 대보름 전후에 행해지는 격렬한 남성집단놀이이다. 고싸움의 고란 옷고름, 고맺음, 고풀이 등의 예에서 보듯이 노끈의 한 가닥을 길게 늘여 둥그런 모양으로 맺은 것을 말하며, 2개의 고가 서로 맞붙어 싸움을 벌인다 해서 고싸움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측된다.<br /><br />고줄은 줄머리에 둥근 고를 만들어 세우고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 대목을 속에 넣어 팔뚝만한 동아줄로 칭칭 감아 고줄이 빳빳하도록 하고, 둥글게 구부려 묶어서 고몸체를 만든다. 고몸체도 단단해야 하므로 큰 통나무를 속에 넣고 동아줄로 감아 곧은 줄을 만든다. 고머리나 고몸체 줄은 사람이 걸터앉아도 두 다리가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크다. 7∼8개의 통나무는 고를 메거나 고가 서로 부딪칠 때 떠받치고 밀어주는 구실도 한다. 고가 만들어지면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공동으로 마을 앞에서 간단한 고사를 지내고 집집마다 돌며 마당밟이굿을 한다. 고를 메고 싸움터로 나가기 전에 마을을 돌며 농악으로 흥을 돋운다. 양쪽의 고가 서로 접근하면 고를 높이 들었다 내렸다 하며 기세를 올린다. 놀이꾼은 줄패장, 고를 메는 몰꾼, 고의 몸과 꼬리를 잡는 꼬리줄잡이, 농악대 등으로 구성된다. 우두머리인 줄패장은 고 위에 앉아 싸움을 총지휘하고, 부장들은 깃발을 휘둘러 기세를 북돋운다. 상대방의 고를 덮쳐 땅에 닿게 하면 이기는데,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일단 고를 풀어서 줄로 만들어 2월 1일에 줄다리기로 승부를 내기도 한다. 고싸움은 줄다리기와 마찬가지로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의식의 한 형태이며, 놀이를 통하여 마을사람들의 협동심과 단결력을 다지는 집단놀이로서 의의를 지닌다.<br /><br /> ※ 명칭변경(고싸움놀이 → 광주칠석고싸움놀이/ 명칭변경일 : 2005.9.23.) : 고싸움놀이는 원래 광주광역시 남구(구 전남 광산군 대촌면) 칠석동 마을에 전하는 민속놀이로 오늘날 각 지역마다 형태와 규모가 유사한 다양한 고싸움놀이로 인해 지정 명칭상 변별성이 없어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지역을 병기한 &quot;광주칠석고싸움놀이&quot;로 변경하였다.
  • 1970.7.22
    지정일
    탈춤은 조선 전기까지 각 지방에서 행해지던 가면놀이이다.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궁중의 관장하에 “산대”라 불리는 무대에서 상연되던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2493)' onmouseout='dn2()'>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span>의 형태로, 인종 12년(1634)에 궁중에서의 상연이 폐지되자 민중에게 유입되어 전국으로 전파되었다. 황해도탈춤은 황해도의 평산과 기린의 남북을 중심으로 북쪽의 봉산탈춤형과 남쪽의 해주탈춤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강령탈춤은 해주탈춤형으로 분류된다. <br /><br />강령탈춤은 매년 단오에 행해지는데 사자춤·말뚝이춤·목중춤·상좌춤·양반과 말뚝이춤·노승과 취발이춤·영감과 할미광대춤의 7개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놀이에 앞서 탈과 의상을 갖추고 음악을 울리면서 공연장소까지 행렬하는 길놀이를 한다. 등장인물은 마부·사자·원숭이·말뚝이·목중·상좌·맏양반·둘째양반·재물대감·도령·영감·할미·용산삼개집·취발이·노승·소무 등 모두 20명이다. 파계승에 대한 풍자와 양반계급에 대한 모욕, 일부처첩의 삼각관계와 서민의 생활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춤은 느린 사위로 장삼소매를 고개 너머로 휘두르는 장삼춤이 주가 되며, 장단에는 도드리, 타령, 자진굿거리가 주로 쓰이지만 소리의 사설이 30여 가지나 되고 소리마다 장단이 특이하다. <br /><br />강령탈춤의 내용 중에서 양반 3형제가 나와 양반의 근본을 찾고 말뚝이를 부르거나 말뚝이가 재담하는 과장은 경남의 오광대와 비슷하고, 할미광대가 물레를 돌리는 장면은 가산오광대와 매우 유사한데, 이러한 유사점은 탈춤의 전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사실적인 얼굴 모습을 묘사한 인물탈을 쓰고 장삼춤을 추는 아담하고 부드러운 점이 같은 황해도 탈춤인 봉산탈춤과 다른 특징이다.
  • 1970.7.22
    지정일
    조각장은 금속에 조각을 하는 기능이나 그 기능을 가진 사람으로, 조이장이라고도 한다. 금속조각은 금속제 그릇이나 물건의 표면에 무늬를 새겨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br /><br />출토된 유물에 의하면 금속조각은 청동기시대에 처음 발견되었고, 삼국시대에는 여러 가지 조각기법이 사용되었으며, 고려시대에 크게 발전하였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240)' onmouseout='dn2()'>경공장(京工匠)</span>의 금속공예 분야가 세분화되면서 조각장이 따로 설정되어 있었다.<br /><br />금속조각 기법으로는 평각(平刻)·투각·고각·육각·상감입사(象嵌入絲) 등이 있다. 평각이란 일명 음각이라고도 하는데 평면에 여러 가지 문양을 쪼아서 나타낸다. 투각은 바탕면의 문양에 따라 필요없는 부분을 정으로 쪼거나 오려서 빼낸다. 고각은 바탕면에 무늬를 도드라지게 튀어나오도록 한다. 육각은 가장 어려운 기법으로 기물의 외면과 내면에 정으로 두들기거나 오그려서 무늬를 나타낸다. 상감입사는 바탕에 홈을 파고 그 자리에 금·은·오동선 등을 넣은 후 빠지지 않게 다진다. 재료는 금·은·철·석·연·아연 등으로 다양하나 주로 은을 사용한다. 무늬는 산수·<span class='xml2' onmouseover='up2(6249)' onmouseout='dn2()'>화조(花鳥)</span>·구름과 용·덩굴무늬 등이 일반적이고, 조선말 이후에는 아름답거나 좋은 뜻을 지닌 문양을 주류를 이룬다.
  • 2012.7.23
    지정일
    '법성포 단오제'는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 일대에서 단오 무렵 지역 주민에 의해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민속축제이다. 법성포에는 조선시대 한양으로 올라가는 세곡을 관리하는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4924)' onmouseout='dn2()'>조창(漕倉)</span>이 있었으며, 조기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5771)' onmouseout='dn2()'>파시(波市)</span>의 중심지였기에 오래전부터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2601)' onmouseout='dn2()'>상권(商圈)</span>이 발달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파시가 형성되는 시기에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6451)' onmouseout='dn2()'>난장(亂場)</span>이 크게 섰으며, 이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단오제가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다.<br /><br />특히, 뱃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용왕제, 부녀자들이 중심으로 즐겼던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2856)' onmouseout='dn2()'>선유(船遊)</span>놀이를 비롯해 '숲쟁이'(법성포 숲)에서 벌어지는 예인들의 경연행사는 법성포 단오제의 지역성과 전통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았다. 또 과거의 전통을 기반으로 현재의 주민이 향유하고 있는 생활·문화적 가치를 주목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 2009.7.24
    지정일
    창민요는 넓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에 의해 불린다 해서 통속민요라 칭하기도 하고, 놀이요의 성격을 갖는 민요와 한데 묶어 잡요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요즘에는 노래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춤추기나 윷놀이 등을 통해서 얻는 즐거움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아 노래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들을 가창유희요라고 하여 유희요의 범주에 넣어 다루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하나의 분류명이 모든 경우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워 필자마다 경우에 따라서 다른 명칭을 쓰고 있다.

    제주 지역에서는 창민요의 전승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오돌또기」, 「이야홍」, 「너영나영」, 「신목사타령」, 「봉지가」, 「산천초목」, 「동풍가」, 「중타령」, 「질군악」, 「용천검」, 「계화타령」, 「사랑가」 등 50여 종의 노래들이 전승되고 있다.
  • 2014.7.24
    지정일
    < 용전들노래 보존회 현황 >

    회원수 : 70여명

    市 무형문화재 22호 지정(용전들노래) : 2014. 7. 24.

    유래 : 용전동 일대에서 불려지던 들소리(노동요)로 60년대 말까지 구전되어 오다 그 맥이 끊겼으나 사)용전들노래보존회 전 김동언회장과,故)지춘상, 故)범대순 전남대 명예교수가 2년여 고증 통해 발굴재현(’99.6)

    단체명 변천사 : 사)지산용전들노래보존회 → 사)지산용전들소리보존회

    → 사)용전들노래보존회(’12.6)

    주요수상실적

    - 제1회(’99.7), 제9회(’07.6) 광주광역시 민속예술축제 대상

    - 제40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종합우수상(국무총리상) : ’99.7

    - 제48회 한국민속예술축제 금상(문화관광부장관상) : ’07.6

    - 제56회 한국민속예술축제 금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 ’15.10
  • 1984.7.25
    지정일
    농악은 농부들이 두레를 짜서 일할 때 치는 음악으로 꽹과리·징·장고·북과 같은 타악기를 치며 벌이는 음악을 두루 가리킨다. 농악을 공연하는 목적에 따라 종류를 나누어 보면 당산굿·마당밟이·걸립굿·두레굿·판굿·기우제굿·배굿 등으로 나눌 수 있고, 지역적 특징에 따라 분류하면 경기농악·영동농악·호남우도농악·호남좌도농악·경남농악·경북농악으로 갈라진다.

    고산농악은 마을 개척시기부터 해마다 정월 대보름 마을제사를 지내는 한 과정으로 행해져온 것이라 전해진다. 농악의 과정은 농기구를 앞세우고 상쇠를 선두로 징·북·장구·상모·잡색이 농악이 행해질 곳으로 향하는 길매구, 상쇠의 지휘에 따라 가볍게 뛰며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다가 태극무늬를 만들며 시계방향으로 도는 덩덕궁이, 원을 돌며 상쇠의 지휘에 따라 뒤돌아가기와 두 개의 동심원을 그리는 둘석, 상쇠의 가락에 따라 원을 돌며 각자 춤을 추는 춤굿, 상모를 쓴 사람들이 원 가운데에서 서로 손을 잡고 작은 원을 돌면서 닭을 쫓는 닭쫓기, 농기구를 중간에 두고 원을 돌면서 좁혀 들어갔다가 다시 풀어 나오는 방석말이, 원이 풀어지면서 징·북·장구가 한 줄로 서고 상모 1명이 중앙에 마주보고 서서 쇠를 치는 모내기굿, 상모·장구·북·징의 순서로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끼리 원 가운데에 나와 놀이를 하는 법고놀이로 진행된다.

    고산농악의 특징은 고유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향토색 짙은 농악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다른 농악놀이에는 없는 닭쫓기 마당이 있다는 점이다.
  • 1984.7.25
    지정일
    날뫼북춤은 대구의 비산동 일대에서 전승되어 오는 북춤이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산 모양의 구름이 날아오다 어느 여인의 비명소리에 놀라 땅에 떨어져서 동산이 되었다는 전설에 의해 날아온 산이라 하여 ‘날뫼(飛山)’라 부르게 되었고, 옛날 지방관리가 순직했을 때 백성들이 이를 추모하기 위해 봄·가을에 북을 치며 춤을 추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날뫼북춤은 흰 바지저고리에 감색 전투복을 입고 머리에 흰 띠를 두른다. 북만이 연주악기로 사용되며, 경상도 특유의 덧배기가락(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연출과정은 덩덕궁이, 자반득이(반직굿), 엎어빼기, 다드래기, 허허굿, 모듬굿, 살풀이굿, 덧배기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날뫼북춤은 우리 조상들의 생활과 정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민속춤으로 예능보유자 윤종곤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1998.7.25
    지정일
    설위설경(設位設經)은 설경(設經)이라고도 하는데, 경(經)을 이야기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넓은 뜻으로는 법사(法師)의 굿 장소를 종이로 꾸며 장식한 곳을 가리키기도 한다.

    설위설경 장소를 만들려면 창호지에다 신령, 보살의 모습과 부적, 꽃무늬 등을 오려서 만든다. 이것은 굿당의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귀신을 잡아 가두는 도구이다. 창호지를 가위나 칼로 자르거나 오려서 만드는데, 주사라는 붉은 광물을 섞은 물감으로 신령의 이름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부적을 써 붙이기도 한다. 설위설경은 규모에 따라 대설경, 홑설경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예전에는 설위설경이 전국적으로 분포하였으나 이제는 그 명맥이 충청도 일원에서만 보이고 있으며, 다른 지방의 이른바 ‘선굿’과 마구 혼합되어 가는 실정이다.

    설위설경은 토착신앙이자 전통문화로, 이를 보존하기 위해 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다.
  • 2007.7.27
    지정일
    고창오거리당산제의 유래는 오랜 옛날부터 고창고을의 허(虛)를 메꾸기 위하여 5방에 세운 자연신체의 당산으로 유지되어 왔으나, 조선후기 정조 년간(1790년대)에 전라도 일대에 홍수피해로 엄청난 질병 때문에 피막(避幕)에서 시달림을 겪자, 어명에 의하여 화주(化主)를 자청한 고을 아전들이 민심수습을 위해 고을의 수구막을 보호하고자, 인공적 역사를 시작하여 중거리․주앙․하거리의 저지대 당산을 완공하였다.

    마을신앙의 표적으로서의 의미도 있거니와, 전국에서 유일한 가족 당산형태로 된 고을의 풍수적인 집단 신앙적 화표로서도 유명하며, 오거리당산제보존회에서는 매년 오거리 당산제 및 대보름 민속놀이를 재현하여 전통을 수호하고, 주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 2014.7.28
    지정일
    영산재(靈山齋)는 49재(사람이 죽은지 49일째 되는 날에 지내는 제사)의 한 형태로, 영혼이 불교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극락왕생하게 하는 의식이다.

    불교 천도의례 중 대표적인 제사로 일명 ‘영산작법(靈山作法)'이라고도 한다.까마득한 2500년 전 법회 장면이 오늘날까지 영산작법으로 보존되고 전승된 것이 중요문형문화재 제50호인 영산재이다.

    또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지난 2014년 7월 광주광역시는 ‘광주영산재’를 시의 문형문화재 23호로 지정했다.
  • 2005.7.28
    지정일
    김삼식씨는 1946년 9월 9일에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 131번지에서 태어났으며, 9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땅 한평 없는 막막한 처지에서 자형의 사촌인 유영운(남, 80세, 농암면 갈동리)씨가 운영하는 닥공장에 들어가 한지 만드는 일을 거들며 온갖 허드렛일을 하다가 11세때부터 한지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48년간 선조들이 발달시킨 독특한 제조기법으로 한지를 만들고 있다.

    30여년 전만해도 문경지역에는 20여개소의 한지 공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김삼식씨가 운영하는 한 곳 뿐이다.전통한지는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등 만드는 과정이 너무 까다롭고, 현대 제지산업의 발달로 인한 일반 종이류의 보급, 값싼 수입원 자재를 이용한 변형된 한지의 유통 등으로 인한 전통 한지의 수용 감소 등으로 전통한지 생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이 전통적인 메밀짚 잿물을 이용한 사고지(소지), 이물지, 삼합지, 두장무이, 석장무이(장판지)의 전통한지만을 고집하여 생산하고 있다.

    또한 그는 “우리 종이라면 우리 땅에서 자란 닥나무라야 한다”라는 신념으로 우리나라의 자연에서 얻은 닥나무, 닥풀, 맑은 물과 풍부한 태양광선으로 질 좋은 전통 한지만을 만들어 그의 진정한 장인 정신을 아는 고객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특히 그는 1999년 자택에 그의 평소의 신념인 “진실을 심고, 양심을 심고, 전통을 심어야 전통 한지가 나오는 지소가 된다” 라는 뜻을 담은 작업장을 새로 마련하고,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는 보일러를 응용한 건조대도 자체 개발해 전통 한지 생산의 요청이 있을시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가 강의를 하며 전통 한지에 대한 설명도 빠뜨리지 않고 강의하여 전통 한지의 홍보에도 남다른 열의를 보이고 있으며, 전통 한지의 전수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다.

    현재 그는 부인 박금자씨, 아들 춘호와 함께 한지를 만들고 있으며, 유일한 전수자인 아들 춘호는 아버지의 한지 만드는 일을 도우며 전통한지 기술 전수에 몰두하고 있다.

    전통한지가 급격히 소멸되고 있는 상황에서 동부지역의 청송한지 이외에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전통한지라 할 수 있다.
  • 2005.7.28
    지정일
    이 들소리는 경북 경산시 자인면 일대에서 불려오던 11가지의 농요를 하나로 묶은 것으로 경상도 농요의 일반적 특징인 메나리조와 덧배기 장단이 그대로 살아 있다.

    또한, 자인은 경상도 내륙에 위치하여 타 지역의 영향을 적게 받아 이지방만의 선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한, 경상도 지역의 주민기질과 말씨의 억양을 닮아 꿋꿋하며 투박한 역동감이 넘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 2010.7.30
    지정일
    목소장은 전통 우리 빗을 만드는 기능 또는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로, 빗은 그 유물로 낙랑유적에서 목재빗이 발견되었고 삼국시대에는 대모빗, 통일신라시대에는 대모장식빗 조선시대에는 추칠빗, 화각빗 등이 현재까지 전하는 등 그 역사가 깊다.

    특히 경국대전에는 목장, 조각장, 각자장, 목소장, 목영장, 풍물장, 표통장, 칠장, 변비장, 우산장 등이 기록되어 있는 등 전통 목공예 기술의 발달과 전문장인의 분화를 보여준다.

    빗(얼레빗)의 주재료로는 대추나무, 살구나무, 박달나무, 호두나무, 회양목 등 전통적으로 단단한 목재를 사용하며 그 외에 대모, 무소뿔, 화각, 상아로 장식한다.

    제작방법은 1) 선정된 나무를 내림톱으로 적당한 두께로 켜서 충분히 건조시킴 2) 건조한 나무를 곧은결 무늬를 따라 빗의 크기만큼 자름 3) 앞뒷면을 명대패로 다음은 후 본을 대고 빗 모양을 그림 4) 빗틀에 고정시킨 후 살접이톱을 빗살을 켬 5) 살잽이줄로 빗살을 다듬고 돌림톱으로 외형을 자름 6) 기본모양이 만들어진 빗에 검환(삼각줄), 사포 등으로 빗살을 곱게 다듬고 굴림대패, 갈기칼로 몸체부분을 다듬음 7) 여러종류의 사포로 빗살 및 몸체를 곱게 사포질함 8) 조각 및 입사, 상감 작업이 끝난 얼레빗은 칠(주칠, 흑칠) 또는 피마자유로 마무리함(뿔이나 쇠골을 쓸때는 간장으로 마무리 함) 9) 화각빗의 경우 1.5mm~2mm 얇게 다듬은 각재 뒷면에 당채로 그림을 그리고 알맞게 잘라서 부레풀로 몸체에 붙이고 표면을 고운 사포로 다듬은 다음 간장으로 표면 광택을 냄 10) 마지막 손질이 끝난 빗에 장식(칠보, 은, 매듭)을 달기도 하며 칠 작업이 끝나면 작품이 완성된다.
  • 1999.7.31
    지게놀이는 우리나라 전통의 운반수단이었던 지게를 이용한 민속놀이이다. 산이 많고 따로 길이 없는 농촌과 산촌에서는 지게가 필수적인 운반수단이었다. 강원도 양구지방에서는 노동의 고달픔과 단조로움을 잊고 즐거움을 얻고자 지게를 이용한 놀이를 했다.

    양구 돌산령지게놀이에는 개인적으로 승부를 내는 지게걸음싸움과 단체로 하는 상여놀이가 있다. 지게걸음싸움은 지게의 두 다리 위에 올라가 지게 머리를 잡고 걸어가서 상대를 부딪쳐 쓰러뜨리는 놀이이다. 상여놀이는 편을 갈라 지게를 서로 묶어서 상여를 만들어 메고 구성진 상여소리를 부르며 어르다가 상대의 상여를 밀어 쓰러뜨린다. 승부가 나면 진 팀은 이긴 팀의 지게짐을 운반한다.

    상여놀이에는 회다지놀이가 있는데 장례식 때 구덩이를 다지는 풍습을 놀이화한 것으로 회다지소리를 부르고, 지게작대기를 두드리며 논다. 재미있는 것은 회다지놀이 때 불효하거나 우애롭지 못한 사람, 마을일에 협조하지 않은 사람을 회다지의 인물로 정하여 한바탕 놀고 나면 그 사람의 심성이 고와진다는 개과천선의 교훈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양구 돌산령지게놀이는 전통적인 장례의식과 지게를 얽어 만든 독특한 산간민속놀이로 강원도 산간에서만 유일하게 보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