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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2017.6.16
    지정일
    고양 상여·회다지소리는 고양시 송포면 대화리 김녕김씨金寧金氏 집성촌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는 장례의식요葬禮儀式謠를 말한다.

    김녕김씨의 김유봉(1725년생)이 부모님의 장례 시 행했던 상례문화가 그 기원으로, 토목 및 궁궐의 보수 공사를 담당했던 관청인 선공감繕工監의 감역을 맡았던 김성권(1867년생)이 그 맥을 복원하였다.

    당시 상여의 규모가 일반상여의 3배에 달했으며, 만장기가 무려 250여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문행렬은 5리(2km)에 달하였으며, 당시 조문객에게 대접한 양식이 쌀 열두 가마를 하고도 모자랐을 정도로

    큰 규모의 상례였다고 한다.

    송포면 대화리에 초상이 나면 상제들이 장지葬地로 떠나는 상여속의 망자에게 절을 올리며, 상여꾼들은 염불소리와 하직소리를 부른다. 집을 나서면 오호소리를 부르고 걸음을 빨리 하거나 언덕길을 오를 때 자진 상여소리를 부른다. 장지에 다다르면 긴염불 소리를 부른 후 상여를 내려놓는다. 시체가 놓이는 무덤의 구덩이인 광중壙中이 조성되면 하관 후 달구질을 하면서 회다지소리를 부르는데 긴소리를 부르고 이어 달구소리, 양산도, 방아타령, 놀놀이, 떳다소리, 상사소리, 훨훨이로 끝맺는다.

    고양 일대에서 달구질을 할 때 광중 밖에서 밟는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조선시대 왕릉 조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일대에는 왕릉이 많은데, 나라님을 밟을 수 없어 광 밖에서 밟는 것에서 유래된 풍속이라고 한다.

    현재 보존회장 김우규를 주축으로 고양상여회다지소리보존회를 통해 이 종목의 전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0년에는 독일 비스바덴 카니발에 초청되어 공연을 진행했으며, 2012년 이후 일본 위안부

    피해자 진혼제를 매년 치루고 있다.
  • 2011.9.30
    지정일
    2008년 제33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입선

    2009년 제14회 전주전통공예전국대전 입선

    2010년 제35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특선
  • 2010.11.4
    지정일
    도당제는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중심으로 전승되어 오는 마을신앙의 대표적인 갈래이다. 도당제의 세부적인 신앙형태와 의례 절차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마을신을 제장에 모셨다 돌려보내는 구조적 측면에서는 공통성을 찾아 볼 수 있다. 삼각산도당제 또한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를 모셔 의례를 행한 후 돌려보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유자가 없는 종목이며, 2010년 11월 4일에 삼각산도당제보존회가 보유단체로 인정받았다.

    ※위 문화재에 대한 상세문의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02-2133-2616)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 2002.11.25
    지정일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에 대한 총칭으로 질그릇은 유약을 시유하지 않은 도기이고, 오지그릇은 잿물 유약을 시유한 도기로 좁은 의미에서의 옹기에 해당한다.

    고려시대까지는 유약을 바르지 않은 도기가 위주가 되었으나 조선시대 중기부터 옹기에 해당하는 약토를 바른 흑갈색의 도기가 제작되면서 조선후기에는 유약을 입힌 시유도기가 일반화된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 이전부터 ‘옹’으로 지칭되는 대형의 도기 항아리가 술·물·장·젓갈 등 액체나 음식을 담거나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 태안 마도해역에서 출토된 다량의 고려시대 도기 항아리들이 물을 저장하거나 젓갈 등을 운반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조선시대에는 도기를 만드는 장인은 옹장으로 지칭되었는데,『경국대전』 공전 공장조에 의하면 104명의 옹장이 중앙관청 14곳에 소속되어 왕실과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도기를 제작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옹기를 포함한 도기는 일상용 그릇으로 왕실에서부터 민간까지 폭넓은 계층에서 사용되었고, 기후나 쓰임과 관련하여 지역적 특색을 나타내며 발달하였다.

    2002년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김일만은 6대에 걸쳐 옹기를 만들어 온 집안 출신으로 조선후기부터 내려온 3기의 전통 가마를 이용하여 경기도의 전통적인 옹기의 제작에 전념해 왔다.

    2010년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 옹기장으로 승격이 되면서 현재는 그의 아들 김성호와 김용호가 전수자로 지정되어 경기도 옹기 제작의 전통을 잇고 있다.
  • 2002.12.27
    지정일
    남도 지방은 예부터 다양하고 풍부한 농산물과 수산물을 재료로 여러 가지 음식의 조리법이 발달하였다. 특히 사람의 일생에서 거치는 각종 의례마다 특성에 맞는 음식들이 정해지고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승 보급되었다.

    최영자는 이연채의 가문에서 의례음식 기능을 전수하였고 전통 음식 남도의례연구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폐백, 제사음식, 음청류, 조과류, 저장찬류, 한과류, 약밥, 떡, 전통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리 기법 기능도 보유하고 있다

    이애섭은 어려서는 조모와 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익히고 호남의 명가 울산 김씨 가문에 들어가서 혼례음식, 이바지 음식 등에 그 솜씨를 발휘하였다. 이애섭은 남도 의례음식 중 전통 폐백 음식과 이바지 음식 분야에서 정교한 솜씨를 지니고 있다. 광주의 문화재 (2010)
  • 2005.2.7
    지정일
    과천 지방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정조가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으로 행차할 때, 과천의 부락민들이 나이 어린 소년을 뽑아 여장을 시켜 남자의 어깨 위에 태우고서 춤과 재주를 부리는 놀이, 즉 무동놀이를 펼쳐 그의 효행을 찬양하고 능행길을 환송했다고 한다. 무동놀이와 정월대보름에 풍년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동네 다리 위를 오가던 답교놀이가 더해진 것이 과천 무동 답교놀이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명맥이 끊어졌으나, 1981년 이윤영과 과천 지역민들이 참여한 과천민속보존회에서 전체적인 시나리오를 복원하였다. 1982년 제23회 전국민속예술공연대회에 문예진흥원장상을 수상 하면서, 과천을 대표하는 민속놀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후 복원된 원형에 무동춤과 농악이 보강되고, 과천의 또 다른 민속놀이인 지신밟기, 당나무고사, 선소리놀이, 우물고사,마당놀이 등이 더해져 다채로운 내용으로 조금씩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길을 안내하는 길라집이와 농기와 영기를 든 기수를 선두로 호적·꽹과리·징·제금·장구·북·소고 등으로 편성된 농악대가 뒤따르고 그 뒤를 잡색과 무동들이 따른다. 놀이는 당나무고사, 지신밝기와 우물고사, 다리고사, 마당놀이, 선소리 답교, 무동 답교놀이, 마무리 및 소원빌기 순으로 연행된다.

    과천 무동 답교놀이는 전문 국악인 오은명이 가세하며 과천무동 답교놀이의 내용과 구성이 풍부해졌다. 2010년 놀이패의 지휘자격인 상쇠 보유자로 오은명이 지정되었으며, 그녀를 주축으로 과천 무동 답교놀이를 전수하는데 힘쓰고 있다.
  • 2018.3.2
    지정일
    배첩이란 글씨나 그림에 종이, 비단 등을 붙여 족자나 액자, 병풍 등을 만들어서 아름다움은 물론 실용성 및 보존성을 높여주는 전통적인 서화처리법을 가리킨다. 일제시대에 들어온 말로 오늘날에는 '표구'라고도 하며, 현재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장황'이라고 한다. 배첩장은 조선 전기에 회화를 담당하던 국가기관인 도화서 소속으로 궁중의 서화처리를 전담하던 사람을 말한다.

    중국 한(漢) 시대에 기원한 것으로 알려진 배첩은 당(唐)대에 한층 발전하여 정립단계에 이르며, 우리나라에 어떻게 유입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고구려 고분 벽화의 병풍 그림으로 보아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변경환

    - 1964년 서재영 배첩 사사

    - 1979~1998 : 원광대학교 출판부 『한국금석문대계』 자료 배첩 및 족자 제작

    - 2005년 대한명인 지정

    - 2010년 전북도립미술관 소장품 병풍 제작

    - (사)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회원

    - 장황문화재연구원 운영
  • 2010.3.3
    지정일
    목조각장은 나무로 불상을 깎는 일을 맡아 하는 장인이다.

    불상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들어왔으며, 불상을 제작하는 기술 또한 전래 당시부터 시작되었다. 다만 나무로 만든 불상은 청동제에 비해 시대가 오랜 유물이 많지 않으나 고려시대의 유물은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을 비롯하여 10여점이 남아 전한다.

    목조각장이 갖춰야할 기본 요건은 숙련된 기술뿐 아니라 예배대상으로서 신심을 돕는 조형적 감각과 높은 안목이 필수적이다.

    일반조각과 다른 점은 불상이 감상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불상의 품격을 판단하는 기준도 일반조각과 다르게 적용된다. 형태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입체감과 비례미는 물론,부처의 가르침에 기초한 도상, 그리고 불교도상을 충족하는 고유의 조형미, 자비로운 상호 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목조불상을 제작하는 재료는 은행나무, 오동나무, 소나무, 전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 등이 주로 쓰였으며, 지금은 벌레에 강하고 조각도가 잘 먹는 은행나무를 즐겨 쓴다. 목조불상을 새기기 위해서는 재료의 성질을 다스리는 치밀한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바닷물이나 개펄에 수년간 담가 두거나 솥에 삶아서 쓰기도 했다.

    경기도에는 목조각장 한봉석이 2010년에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한봉석은 허길량에게 배워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였으며, 중요한 문화재급 불상유물을 복원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 2020.4.9
    지정일
    문경 모전들소리는 문경시 모전동 일대에서 전승해온 노동요와 의식요 및 유희요를 뜻한다. 가래질소리를 시작으로 목도질소리, 모심는소리 등 총 10가지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10년 창립한 모전들소리보존회에 의해 전승 보존되고 있다.

    모전들소리보존회의 모태는 모전중신기농악대로, 1900년경부터 빈농들이 이 지역에 모이면서 연희되어 오다가 1940년대에 농악대가 정식으로 형성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농악대는 양수봉이라는 3대 상쇠를 통해 전승되어 현재 소리꾼 중심인물 5명 중 4명에게 전수되고 있다.

    음악적 측면에서 선율은 대부분 경상도 지역의 메나리 토리로 구성되었으나 인접한 상주, 예천지역의 소리와 다르고 강원도 소리와도 다른 문경 지역만의 독특한 소리가 있어 고유한 지역적 특색을 지니고 있다. 또한 장원질소리의 연행부분에서 상여소리를 삶과 죽음을 넘어선 일과 놀이의 일상으로 승화시키는 문경 지역민들의 독특한 사고도 모전들소리의 고유한 향토성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