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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2018.1.12
    지정일
    각자장은 대량 인출이 필요한 서적을 만들기 위하여 책판의 글자와 세밀한 그림을 새김과 동시에 책판의 관리, 보수와 장판(藏板)을 전담하는 장인이다. 고인쇄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할 때 충청북도의 목판인쇄문화를 이어갈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자 한다.

    ○ 더불어 책판 전통 새김 기법 등의 끊임없는 연구와 체계적이고 다양한 사고를 통해 계승 발전에 노력하고 있는 박영덕을 각자장 기능 보유자로 인정하여 명맥을 유지하고자 한다.
  • 2018.1.12
    지정일
    충주시 앙성면 출신인 유필무씨는 16세에 공방에 입문 후 40년여 간 전통 붓 제작의 외길을 걸어와 국내 최고의‘전통 붓 제작’장인으로 알려져 왔다.

    유필무씨의 전통 붓 제작방식은 원모 선별부터 풀 먹이고 빼기 등 크게 13가지 과정으로 분류되며, 세부적으로는 30여 과정 250여회의 손길을 거쳐야 할 정도로 많은 정성이 투입된다.

    또 붓 완성 후 필관에 한국적 색채를 띤 전통문양 넣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이 밖에도 원모를 붓촉으로 만들기 위한 지방질 제거 작업, 필관(붓 몸통)과 붓촉을 접착하는 방법에서 다른 장인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 2006.1.12
    지정일
    입사는 금속 표면에 금실이나 은실을 박아 무늬를 장식하는 기예로 전 세게 여러 곳에서 활용하고 있는 기술이며 입사는 우리 고유의 명칭이다. 흔히 함께 쓰이는 상감이란 용어는 재료에 상관없이 다른 재료를 넣어 무늬를 내는 기법을 지칭하는 것으로 중국에서는 양감이라 하였다. 상감은 일본에서 들어온 용어이다. 입사에 쓰이는 전통 문양은 식물문, 동물문, 기하문, 문자문이 있으며 이들을 조합하여 바탕은 도안화된 무늬를 넣고 중앙에 회화적 무늬를 넣는 등 조화롭게 주성한다. 입사장은 고도의 정밀한 작업기술과 기물과 문양에 대한 높은 안목이 요구되는 기예이다.

    2006년 1월 12일에 최교준이 보유자로 인정받아 활동해 오고 있다.

    ※위 문화재에 대한 상세문의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02-2133-2616)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 2006.1.12
    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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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사는 금속 표면에 금실이나 은실을 박아 무늬를 장식하는 기예로 전 세게 여러 곳에서 활용하고 있는 기술이며 입사는 우리 고유의 명칭이다. 흔히 함께 쓰이는 상감이란 용어는 재료에 상관없이 다른 재료를 넣어 무늬를 내는 기법을 지칭하는 것으로 중국에서는 양감이라 하였다. 상감은 일본에서 들어온 용어이다. 입사에 쓰이는 전통 문양은 식물문, 동물문, 기하문, 문자문이 있으며 이들을 조합하여 바탕은 도안화된 무늬를 넣고 중앙에 회화적 무늬를 넣는 등 조화롭게 주성한다. 입사장은 고도의 정밀한 작업기술과 기물과 문양에 대한 높은 안목이 요구되는 기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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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1월 12일에 최교준이 보유자로 인정받아 활동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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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문화재에 대한 상세문의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02-2133-2616)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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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3
    지정일
    전통가구에 부착되어 견고성과 멋을 내는 장석의 전통적제작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음
  • 2013.1.14
    지정일
    ‘궁중채화’는 전문적인 장인이 궁중의 연희나 의례 목적에 맞게 비단, 모시 등으로 제작한 꽃으로 궁중에서 존중의 뜻을 표현하거나, 평화·장수·건강 등의 상징으로 꽃을 이용한 궁중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1985.1.14
    지정일
    판소리고법은 판소리가 정착한 조선 중기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판소리에 맞추어 고수(북치는 사람)가 북으로 장단을 쳐 반주하는 것을 말한다.

    고법은 판소리의 반주이기 때문에 고수를 내세우는 일이 없어 조선시대에는 이름난 명고수가 드물었다. 또한 고수를 판소리수업의 한 방편으로 여겨 고법의 발달은 미미하였다. 조선 후기에 들어 판소리가 매우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발전함에 따라 고법도 발전하나,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전문적인 고수들이 나와 고법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게 된다.

    판소리고법의 이론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크게 자세론, 고장론, 연기론으로 나눌 수 있다.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로 인정된 김재근씨는 고(故) 김명환씨에게 사사받은 전수자로 이 김명환류의 판소리고법 이론에는 몇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는 앉는 법으로 고수가 소리꾼의 왼편 조금 앞에 북을 놓는데, 보통은 오른 발을 왼쪽 무릎 밑에 넣고 그 앞에 북을 놓지만, 김명환류는 왼쪽 무릎 옆에 놓고 친다. 둘째는 손놀림으로 북채를 옆으로 많이 벌리거나 머리 위로 치켜올리는 수법은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여긴다. 셋째는 타점법(打点法)으로 북통을 치는 자리는 고수에 따라서 4∼6점이 보통인데 반해, 김명환류는 북통의 꼭대기 가운데·북통의 꼭대기 오른쪽 모서리·북통의 앞쪽 오른편 자리의 3점이다.

    김명환씨에게 고법을 전수받은 예능보유자 김재근씨는 스승의 고법과 나름대로의 추임새를 가지고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 1985.1.14
    지정일
    판소리는 소리꾼 한 명이 고수(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창(소리), 말(아니리), 몸짓(너름새)을 섞어가며 긴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을 말한다.

    판소리는 순조(재위 1800∼1834) 무렵부터 판소리 8명창이라 하여 권삼득, 송흥록, 모흥갑, 염계달, 고수관, 신만엽 등이 유명하였는데 이들에 의해 장단과 곡조가 오늘날과 같이 발전하였고, 동편제(전라도 동북지역)·서편제(전라도 서남지역)·중고제(경기도, 충청도) 등 지역에 따라 나뉘어 졌다.

    판소리가 발생할 당시에는 한 마당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판소리 열두마당이라 하여 그 수가 많았으나 현재는 판소리 다섯마당 또는 판소리 5바탕이라 하여 춘향가·심청가·수궁가·흥보가·적벽가 만이 전승되고 있다.

    수궁가는 판소리 다섯마당 중의 하나로 토별가·토끼타령·별주부타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용왕이 병이 들자 약에 쓸 토끼의 간을 구하기 위하여 자라는 세상에 나와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리고 간다. 그러나 토끼는 꾀를 내어 용왕을 속이고 살아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엮은 것이다.
  • 2004.1.15
    지정일
    판소리는 서민예술의 하나로, 서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반영시켜 노래한 창악이다. 판소리는 광대가 병충을 두르고 돗자리를 펼친 마당이나 공연장에서 고수의 북 반주로 짧게는 세 시간, 길게는 여덟 시간 정도 걸리는 긴 이야기를, 몸짓을 섞어 가며 흥미롭게 노래하는 판의 예술이다. 연행하는 형태로 보자면 음악극의 모습이기도 하며, 담고 있는 내용으로 보자면 이야기를 연극으로 보여주는 서사극이기도 하다. '판'에서 이야기와 노래 및 연행이 함께 이루어지는 종합예술의형태가 바로 판소리인 것이다.

    2004년 1월 15일에 이옥천이 흥보가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2013년 1월 3일에 정의진이 수궁가 보유자로 인정받아 활동하고 있다.

    ※위 문화재에 대한 상세문의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02-2133-2616)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 1967.1.16
    지정일
    진주검무는 진주지방에 전승되는 여성검무로서 검기무 또는 칼춤이라고도 하며 대궐안 잔치 때 행하던 춤의 하나이다.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죽은 소년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춤을 추었다는 설과 논개의 얼을 달래기 위해 진주기생들이 칼춤을 춘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진주검무는 도드리장단, 느린타령, 빠른타령에 맞추어 조선시대 무사복을 갖춘 8명의 무용수가 2줄로 마주보고 서서 양손에 색동천을 끼고 칼을 휘저으며 춘다. 춤사위의 종류로는 한삼을 끼고 무릎을 굽혀 도는 숙은사위, 앉아서 추는 앉은사위, 허리를 앞으로 엎쳤다가 뒤로 제치며 빙빙 도는 연풍대가락, 맨손으로 팔을 펴는 손사위 등으로 다양하며 독특하다. 반주악기로는 피리, 저, 해금, 장구, 북 등이 쓰인다. 현재의 진주검무는 당시 진주감영(현재의 시청)에 속해 있던 교방청(敎坊廳:일종의 기생학교) 기녀들의 의해 전승되던 춤으로 궁중 기녀들이 낙향하여 관청 기녀들에게 가르쳤을 것으로 추정된다.진주검무는 연출형식, 춤가락, 칼 쓰는 법 등 모든 기법이 과거 궁중에서 열던 검무의 원형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어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다.
  • 1967.1.16
    지정일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높은 날’ 또는 ‘신 날’이란 뜻의 수릿날이라고도 한다. 강릉단오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축제로, 마을을 지켜주는 대관령 산신을 제사하고,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번영, 집안의 태평을 기원한다.

    강릉단오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매년 3, 4, 5월 중 무당들이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3일동안 굿을 벌였다는 남효온의 문집(『추강냉화』) 기록과, 1603년(선조 36년)에 강릉단오제를 구경하였다고 기록한 허균의 문집『성소부부고』) 등이 있다.

    마을사람들은 단오제를 드리지 않으면 마을에 큰 재앙이 온다고 믿어 대관령서낭당에서 서낭신을 모셔와 강릉시내의 여서낭신과 함께 제사를 드리는데, 대관령산신은 김유신 장군으로 전해지며, 단오제에서 주체가 되는 서낭신은 범일국사이고, 여서낭신은 강릉의 정씨처녀로 전해진다.

    단오제는 신에게 드릴 술을 담그면서 시작된다. 대관령산신당에서 제사를 올리고 신성시하는 나무를 모시고 내려와 국사성황당을 거쳐 홍제동에 있는 국사여성황당에 모셨다가 행사 전날 저녁 영신제를 지내고 남대천 백사장에 마련된 제단에 옮겨 모심으로 강릉단오제의 서막을 올린다. 단오장에서는 5일간 아침, 저녁으로 제를 올리고 굿을 하며 농사의 번영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며 모두 한마음이 되어 제를 올린다. 이밖에 양반과 소매각시, 장자머리, 시시딱딱이가 가면을 쓰고 말없이 관노가면극놀이를 하거나, 그네뛰기, 씨름, 농악경연대회, 창포머리감기, 수리취떡먹기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단오 다음날에 신성시하는 나무를 태우고 서낭신을 대관령으로 모시면서 단오제는 막을 내린다.

    강릉단오제는 제관의 의해 이루어지는 유교식 의례와 무당들의 굿이 함께 거행되는 동해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을축제로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고 난장이 크게 벌어진다. 특히 관노가면극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무언극으로 대사없이 몸짓으로 관객을 웃기고 즐겁게 한다. 민간신앙이 결합된 우리나라 고유의 향토축제이며, 지역주민이 화합하고 단결하는 협동정신을 볼 수 있다.

    강릉단오제는 그 문화적 독창성과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아 2005년 11월 25일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 1967.1.16
    지정일
    모시는 오랜 기간동안 이용되어 온 직물로서 일명 저포·저치라고도 하며, 모시나무가지를 꺾어 그 껍질을 벗긴 것을 재료로 한다. 통일신라 경문왕(재위 861∼875) 때 당나라에 보낸 기록으로 보아 외국과의 교역품으로 이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모시풀은 다년생으로 뿌리쪽 줄기가 황갈색으로 변하며, 밑의 잎이 시들어 마를 때 수확한다. 보통 1년에 3번 정도 수확하는데 5월∼6월초, 8월초∼8월하순, 10월초∼10월하순이며 두번째 수확한 모시가 품질이 제일 좋다. <br /><br /> 한산모시는 한산에서 만드는 모시로 예로부터 다른 지역에 비해서 품질이 우수하며 섬세하고 단아하여 모시의 대명사로 불리어 왔다. 제작과정은 재배와 수확, 태모시 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굿 만들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짜기, 모시표백 순이다. 우선 재배하여 수확한 모시를 훑고 겉껍질을 벗겨 태모시를 만든 다음 하루쯤 물에 담가 말린 후 이를 다시 물에 적셔 실의 올을 하나하나 쪼갠다. 이것을 모시째기라고 한다. 쪼갠 모시올을 이어 실을 만드는데, 이 과정을 모시삼기라 한다. 이 모시삼기의 과정은 실의 균일도가 가름되는 과정으로 한산의 모시삼기기술은 우수하여 균일도가 일정하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실을 체에 일정한 크기로 서려 담아 노끈으로 열 십(十)자로 담아 모시굿을 만든다. 모시날기는 실의 굵기에 의해 한 폭에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하는 것이다. 모시매기인 풀먹이기 과정을 거친 후 베틀을 이용해 모시를 짠다. 마지막으로 모시표백은 물에 적셔 햇빛에 여러 번 말려 백저포, 곧 흰 모시가 된다.<br /><br /> 모시는 보통 7새에서 15새(보름새)까지 있는데 10새 이상을 세모시라 하고 숫자가 높을수록 고운 최상품으로 여긴다. 1새는 30㎝ 포폭에 80올의 날실로 짜여진 것이다. 모시는 습도가 모자라면 끊어지기 쉬우므로 더위에도 통풍이 안되는 움집에서 짜야 하고, 바람이 불거나 비오는 날에는 일을 할 수가 없다. 근래에는 염소표백을 하여 흰 모시를 만들기도 하며, 섬유공업의 발달과 함께 수요가 줄어들어서 이 지방의 모시짜기 기술도 점차 쇠퇴하고 있다.<br /><br /> 한산모시는 우리나라의 미를 상징하는 여름 전통옷감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아 제작기술을 보호하고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 2019.1.21
    지정일
    김선식 보유자는 중.고교시절 부친(김복만)으로부터 도자기의 성형기술,소성기술,유약 만드는 법 등 전반적인 기술을 배웠으며, 부친이 작고한 이후 현재까지 문경읍 갈평리에서 관음요를 운영하고 있다.
  • 2018.1.22
    지정일
    ☆정문길은 1958년부터 부친으로부터 기와제작의 기능을 전수받아 전통기와의 맥을 잇고 있고, 영주 부석사와 경주 불국사, 양산 통도사 등의 불교사찰과 안동 도산서원과 하회마을 고택 등 유적의 문화재 보수에 기여하였다.

    정문길은 전통 기와가마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노력한 결과 2017년 6월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기와가마를 축조하였으며, 향후 전통가마에서 전통기와를 소성하고자 실험과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 2006.1.23
    지정일
    ☆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관혼상제의 4대 의례를 가장 귀한 것으로 생각하고 실행해 왔다. 그 중 상례의 절차는 전국적으로 비슷하나 지방에 따라 변형되어 다소 다른 모양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인천근해 도서지방은 지세가 고르지 못할 뿐 아니라 경기도, 황해도와 인접해 있으며 생활수단도 어업으로 이어가고 있어 상여소리도 경기도, 황해도의 민요와 뱃노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상여소리는 초혼 및 운구, 행상, 산오름과 외나무다리 넘어가기, 가래소리와 회다지소리, 고별소리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