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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2002.5.8
    지정일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제주농요는 제주 지역에서 불리는 대표적인 밭일노래이다.

    제주 지역은 화산회토의 자연 환경이 말해 주듯 밭일과 관련한 민요들이 많이 불렸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제주농요는「밧 불리는 소리」·「진사대 소리」·「타작질 소리」등 세 수이며, 기능 보유자는 이명숙(여, 74)이다.
  • 2013.5.8
    지정일
    ○ 목조각장 보유자 이희옥(법명 靑苑)은 15세에 불교조각에 입문하여 수많은 목조불상을 조성하는 등 40여년을 조각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각승으로서 법맥과 목조각장 전승계보도 분명하게 계승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 조각승의 계보도 계승하고 있다.

    ○ 특히 전통 도구와 전통 제작방식에 입각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전통 도구의 쓰임새와 불교 도상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이해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봉안 방식을 고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창건되는 사찰의 환경에 적합한 불상을 조성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등 기능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불신관의 계승이라는 외형적 완성도나 단순한 예배 대상물에 그치지 않고 불교 성보물로서의 신성성도 깃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목조각장 보유자인 이희옥은 법맥계보와 전승계보가 뚜렷하며, 전통 조각기법에 대 한 체계적인 이론과 뛰어난 기능을 겸비한 목조각장이며, 특히 근대 이후 단절된 조 각승의 명맥을 계승하고 있는 점이 높이 평가되는 등 등 부산광역시지정 무형문화재 지정 및 보유자 인정의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 2015.5.8
    지정일
    고성지역에서 불려지는 어로요는 몇가지 다른 명칭으로 사용하는데 배 내리는 소리를 ‘든대질소리’ ‘자아소리’라 하고, 배를 올리는 소리를 ‘든대질소리’, ‘야하소리’라고 한다. 또한 고기뜯어내는소리를 ‘베끼소리’라 하고, 명태를 가래로 떠넘기면서 부르는 소리를 ‘배지우는소리’ 노 젓는소리를 ‘어기여차소리’ ‘에이야소리’라고 한다. 고기푸는 소리를 ‘가래소리’ ‘산대질소리’ ‘에이야소리’라 하고 그물당기는 소리를 ‘에샤소리’ 그물터는소리를 ‘도리깨질소리’ 명태세는 소리를 ‘장자요 부자요’ 라 한다. 배내리고 올리는 소리 (든대질소리), 노젓고 그물내리는 소리, 그물 당기고 푸는 소리, 명태 베끼고 세는 소리, 상덕하기와 관태소리로 구성되고 전승되고 있는데, 이처럼 다양한 명태소리가 존재하고 있다. 어로요의 내용은 작업의 단계마다 달라진다. 닻감는소리나 든대소리에 이어 노젓는 소리를 하면서 바다로 나간다. 그 뒤에는 어로방식에 따라 노래가 달라지는데, 미리 쳐두었던 명태그물을 걷어올리는 경우는 바로 그물당기는 소리를 하지만, 배에 장착한 뜰그물로 멸치를 잡을 때에는 그물지르는소리, 그물당기는소리, 고기푸는 소리가 연속으로 이어진다. 반면에 후릿그물로 멸치를 잡을 때는 그물지르는 소리는 하지 않고 그물당기는 소리와 고기푸는소리를 했다. 고성 지역에는 명태잡이소리 외에도 반암리 반바우 후리질소리와 공현진 곰바위 미역따기 소리 등이 있다. 반바우 후리질소리는 어부와 주민들이 멸치를 잡아 만선으로 귀향하는 고깃배를 맞이하며 풍어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어로요로 ‘출어 및 후릿그물을 놓는 소리’, ‘후릿그물 당기는소리 ’, ‘고기 푸는 소리’로 나뉘어진다. 공현진 곰바위 미역따기 어로요는 공현진 앞바다의 곰바위, 불근내바위 등 크고 작은 바위에서 질 좋은 미역을 따기 위해 바위에 붙은 잡풀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면서 힘겨움을 잊기위해 부르던 어로요도 전해지고 있다
  • 1978.5.9
    지정일
    좌수영어방놀이는 지금의 부산 동래에 전승되고 있는 놀이로, 어업의 작업과정과 노동요를 놀이화한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바다에 나가기 전에 굿과 놀이를 하면서 많은 고기를 잡아 만선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좌수영어방놀이는 어부들이 그물로 고기를 잡으며 여러 가지 노래를 부르는 내용이 중요부분을 이룬다. 즉 어로작업을 하면서 작업과정에 따른 앞소리, 뒷소리, 맞는소리를 맞추며 부르는 것을 말한다.

    놀이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물로 고기를 잡기 위하여 줄틀로 줄을 꼬며 부르는 내왕소리, 친 그물을 끌어당길 때 부르는 사리소리, 고기를 많이 잡은 어부들이 풍어를 축하하며 부르는 칭칭소리 세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셋째마당의 칭칭소리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춤을 곁들인 풍어놀이로서 올해의 풍어에 감사하고 이듬해의 풍어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노랫가락은 영남지방에서 흔히 불리는 쾌지나칭칭나네이며 가사의 일부가 바뀔 뿐이다. 어방놀이에는 좌수영어방기, 풍어기, 봉황기 등이 동원된다.

    좌수영어방놀이는 어업에 따르는 노래와 풍어를 축하하는 어부들과 여인들의 집단놀이가 종합된 것으로 축제와 같은 성격이 강하다. 좌수영어방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우리나라의 유일한 어업협동기구라는 점과 어방의 전통적인 놀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 2016.5.9
    지정일
    불화는 불탑, 불상 등과 함께 불교의 신앙 대상으로, 제작 형태에 따라 탱화, 경화, 벽화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특히 탱화는 복장식, 점안식 등의 신앙 의식 절차를 거쳐 불단의 주요 신앙대상물로 봉안된다. 우리나라 전통사찰에 전해오는 탱화는 불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불화 제작을 담당하는 장인을 특별히 금어, 화승, 화사, 화원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동안 불화 제작기능은 단청보유자에 의해 전승되어 왔으나 종목의 특성을 고려해 단일종목으로 분리하여 불화장으로 지정하였다.

    불화장 김종섭은 충남 태안에서 태어났으나 사불산의 대승사와 운달산의 김룡사 화맥으로 문경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정착 후 '관음불교미술연구소'를 설립하여 작품 활동에 매진해 오고 있다.
  • 2015.5.11
    지정일
    이 춤은 하규일-정소산-백년욱의 전승계보로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대구 무용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정소산 선생의 춤 원형이 보존된 입춤 형식의 작품이다.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수건춤으로서 춤사위는 장중함과 단아함, 절제미가 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흥을 돋운다. 보유자로 인정된 백년욱은 1955년부터 정소산 선생의 문하생으로 입문하여 근대기 대구지역의 대표적인 춤꾼인 정소산의 전통을 이어오며 지금까지 전승하고 있다.
  • 2012.5.11
    지정일
    삼회향놀이는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천도하는 불교의식인 영산재의 뒷풀이 축제로 속칭 ‘땅설법’이라 한다. 삼회향은 『대승의장』의 삼종회향에서 유래된 말로 자기가 닦은 선근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돌리는 중생회향, 보리회향, 실제회향을 뜻하고 삼회향놀이는 불교의식에 우리나라 민속이 더해진 불교민속이다.

    영산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노고를 치하하고 각기 다른 기능을 발휘하여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데, 그 즉흥성과 종합 예술인 놀이마당의 성격이 강한 행위전승의 민속이다.
  • 2012.5.11
    지정일
    시조창 보유자 이상래는 1959년 입문한 이래 석암 정경태와 김월하, 한우섭, 박인규에게 시조를 배웠고, 1964년에 이관승에게 사사하여 민속문화인 시조창을 보존하고 있으며, 시조의 연륜이 오래고 영제를 제외한 모든 시조에 능하며 나름의 독특한 시김새를 가지고 있는 시조인이다.

    시조창을 부를때 호흡을 길고 유장하게 하여 시조의 특징인 느림의 미학을 잘 표현하고, 3박자로 길게 전성으로 부를 때 완강속법과 영성법을 잘 구사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 1995.5.12
    지정일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해의 나쁜 운을 풀기 위해 굿판을 벌였는데 그곳에서 무당이 즉흥적으로 나쁜 기운을 푸는 춤을 춘 것을 살풀이춤이라 하며, 도살풀이춤·허튼춤·입춤·수건춤·즉흥무라고도 한다.

    전해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신라시대의 도솔가는 도살풀이·살풀이라고 해석되며, 시나위(남도무악)는 향가 중 사승가의 맥과 통한다고 한다.

    춤꾼은 고운 쪽머리에 비녀를 꽂고 백색의 치마저고리를 입으며, 멋스러움과 감정확대를 위해 하얀 수건을 든다. 살풀이장단에 시나위를 연주하되 피리, 대금, 장구, 아쟁, 북 등의 반주로서 춤을 춘다.

    살풀이춤은 오랜 역사를 지닌 남도무속무용 계열의 춤으로 권명화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1987.5.13
    지정일
    과하주는 수백 년 내려온 김천의 유명한 술이다. 찹쌀과 누룩을 원료로 하며,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과하천의 물을 사용한다. 이 샘물로 술을 빚으면 술맛이 좋고 여름이 지나도 술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여 과하주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다른 지방사람이 이곳에 와서 과하주 빚는 방법을 배워가서 똑같은 방법으로 아무리 빚어봐도 과하주의 맛과 향기가 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물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금릉승감』에 적혀있다.

    찹쌀과 누룩가루를 같은 양으로 섞어 떡을 만들고 물을 넣지않고 독에 밀봉하여 저온으로 1∼3개월 발효시켜서 만든다. 이렇게 해서 빚은 과하주는 알코올 13∼14도 정도로 독특한 향기가 있고 맛이 좋다.

    과하주는 일제시대까지 ‘큰도가’(김천주조회사)에서 빚었는데 한때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재개되고 다시 한국전쟁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1984년 송재성씨가 시험양조 끝에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해 김천 명주의 맥을 이었다. 1999년 송재성씨가 사망하여 현재는 기능보유자가 없다.
  • 1987.5.13
    지정일
    안동소주는 안동지방의 이름난 집에서 전수되어 오던 증류식 소주로, 일반 백성들은 안동소주를 상처, 배앓이, 식욕부진, 소화불량 등에 구급처방으로 활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만드는 방법은 쌀, 보리, 조, 수수, 콩 등 다섯가지 곡물을 물에 불린 후 시루에 쪄서 여기에다 누룩을 섞어 10일 가량 발효시켜 진술을 만든다.

    이 진술을 솥에 담고 그 위에 소주고리를 얹어 불을 지피면 진술이 증류되어 소주가 만들어진다. 목성산의 맑은 물이 좋아 이곳에서 생산되는 안동소주는 그 맛과 향이 뛰어나다.

    안동소주는 가양주로 전승되어 오다 1920년 안동시에 공장을 세워 ‘제비원소주’라는 상표로 상품화 되었다가 1962년 주세법 개정으로 순곡소주 생산이 금지되어 생산이 중단되었다.

    그뒤 1987년에 와서 안동소주 제조비법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조옥화씨가 기능보유자로 인정되면서 1990년 민속주로 생산과 판매가 다시 이루어졌다.
  • 1987.5.13
    지정일
    민요는 백성들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난 노래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직업·풍속·놀이 등을 기능으로 하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지역이나 부르는 사람의 취향에 맞게 또는 즉흥성에 의해 달라질 수도 있다.

    상주민요는 일을 하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동요이다. 민요의 내용은 모심기소리, 논매기소리, 타작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모심기소리는 모심기 때 부르는 노래로 일명 공갈못노래·채련요 라고도 하며, 경상북도 지방의 대표적 민요이다. 논매기소리는 김을 매며 부르는 노래이고 타작소리는 보리를 타작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이 민요는 남녀노소 없이 널리 불리고 있으며, 낙동강 연안을 비롯하여 경상북도의 내륙지방 깊숙히 널리 전파·전승되고 있다.

    상주민요는 노동요로서 흥겨움과 슬픈 가락을 띤 독특한 민요다. 상주시에 살고있는 육종덕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2013.5.13
    지정일
    선화 제작 도구의 성질, 내용 및 사용 방법을 잘 파악하고 있으며, 불교적 교리에 입각한 선승의 자세, 참선과 수행을 통해 선화의 준비과정을 거치는 등 전통적인 선풍에 입각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선화 보유자인 박만식은 선맥 계보와 선화의 전승계보가 뚜렷하며, 선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은 물론 수행 또한 겸비한 선화승이다.

    특히, 선화 제작 과정에서 참선과 수행을 통한 선승으로서의 자질이 선화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점이 높이 평가되며, 작품의 미적 완성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선을 통한 운필 능력이 일정한 경지를 넘어 자유자재로 구사될 수 있다는 점 등 부산광역시지정 무형문화재 지정 및 보유자 인정의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 1990.5.15
    지정일
    시조창은 시조시(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를 가사로 하여 노래부르는 것을 말하며, ‘시절가’, ‘시절단가’, ‘단가’라고도 한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영조(재위 1724∼1776) 때 학자 신광수의『석북집』「관서악부」로 이세춘이 시조에 장단을 붙였다는 시가 나온다. 순조(재위 1800∼1834) 때 간행된『유예지』와『구라철사금자보』에서는 시조의 악보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그 후 가곡의 영향을 받아서 시조곡조가 보급됨에 따라 지역적 특징을 지니고 나뉘게 되었다.

    영제시조는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 시조창이다. 평시조와 사설시조가 가장 많고, 뚝뚝 끊어지게 불러서 경상도 특유의 액센트가 강하게 나타나며, 씩씩하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악기 없이 장구나 무릎장단으로 일시적 연주를 하기 때문에 초장과 중장, 끝장단에서 5박자가 줄어들기도 한다. 음계는 3음의 계면조(슬프고 처절한 느낌을 주는 음조)와 5음의 우조(맑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 음조)로 되어있다.

    영제시조는 “영남시조가 좋다”라는 말에서 “영판좋다”라는 속담이 생겨날 정도로 음악성이 뛰어나며, 점잖고 격조가 높아 궁중에서까지 소중히 여기던 시조창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다른 지역의 시조창에 비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어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게 되었다.
  • 1990.5.15
    지정일
    농요는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하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들노래’ 또는 ‘농사짓기소리’라고도 한다. 토속민요의 하나로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부르며 지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공산농요는 노동요로서 먼저 선소리꾼이 노래를 부르면 농부들이 받아서 뒷소리를 받아 부르는 문답창(問答唱) 형식이다. 내용은 어사용(나무꾼노래)·망깨노래·도리깨·타작노래·모찌기노래·모심기노래·논매기노래·벼베기노래 등으로 되어 있다. 어사용노래는 나무를 베거나 풀벨 때 부르는 노래이고, 모찌기는 모를 찌으면서, 모심기는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노래이다. 논매기는 논을 매면서, 벼베기는 벼를 베면서 부른 노래이다. 모찌기노래와 모심기노래에는 여자들이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며, 노래는 종류마다 가락에 분명한 차이가 있으나 어사용노래와 벼베기노래는 같은 가락이다. 현재 두레·품앗이 등은 사라지고 노래만 전해지고 있다.

    공산농요는 소박한 농민들의 슬픔과 기쁨이 어린 향토색을 지닌 민요로 전승하고 보호하기 위해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대구에 살고 있는 예능보유자 송문창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