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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1984.7.25
    지정일
    날뫼북춤은 대구의 비산동 일대에서 전승되어 오는 북춤이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산 모양의 구름이 날아오다 어느 여인의 비명소리에 놀라 땅에 떨어져서 동산이 되었다는 전설에 의해 날아온 산이라 하여 ‘날뫼(飛山)’라 부르게 되었고, 옛날 지방관리가 순직했을 때 백성들이 이를 추모하기 위해 봄·가을에 북을 치며 춤을 추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날뫼북춤은 흰 바지저고리에 감색 전투복을 입고 머리에 흰 띠를 두른다. 북만이 연주악기로 사용되며, 경상도 특유의 덧배기가락(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연출과정은 덩덕궁이, 자반득이(반직굿), 엎어빼기, 다드래기, 허허굿, 모듬굿, 살풀이굿, 덧배기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날뫼북춤은 우리 조상들의 생활과 정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민속춤으로 예능보유자 윤종곤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1998.7.25
    지정일
    설위설경(設位設經)은 설경(設經)이라고도 하는데, 경(經)을 이야기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넓은 뜻으로는 법사(法師)의 굿 장소를 종이로 꾸며 장식한 곳을 가리키기도 한다.

    설위설경 장소를 만들려면 창호지에다 신령, 보살의 모습과 부적, 꽃무늬 등을 오려서 만든다. 이것은 굿당의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귀신을 잡아 가두는 도구이다. 창호지를 가위나 칼로 자르거나 오려서 만드는데, 주사라는 붉은 광물을 섞은 물감으로 신령의 이름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부적을 써 붙이기도 한다. 설위설경은 규모에 따라 대설경, 홑설경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예전에는 설위설경이 전국적으로 분포하였으나 이제는 그 명맥이 충청도 일원에서만 보이고 있으며, 다른 지방의 이른바 ‘선굿’과 마구 혼합되어 가는 실정이다.

    설위설경은 토착신앙이자 전통문화로, 이를 보존하기 위해 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다.
  • 2007.7.27
    지정일
    고창오거리당산제의 유래는 오랜 옛날부터 고창고을의 허(虛)를 메꾸기 위하여 5방에 세운 자연신체의 당산으로 유지되어 왔으나, 조선후기 정조 년간(1790년대)에 전라도 일대에 홍수피해로 엄청난 질병 때문에 피막(避幕)에서 시달림을 겪자, 어명에 의하여 화주(化主)를 자청한 고을 아전들이 민심수습을 위해 고을의 수구막을 보호하고자, 인공적 역사를 시작하여 중거리․주앙․하거리의 저지대 당산을 완공하였다.

    마을신앙의 표적으로서의 의미도 있거니와, 전국에서 유일한 가족 당산형태로 된 고을의 풍수적인 집단 신앙적 화표로서도 유명하며, 오거리당산제보존회에서는 매년 오거리 당산제 및 대보름 민속놀이를 재현하여 전통을 수호하고, 주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 2014.7.28
    지정일
    영산재(靈山齋)는 49재(사람이 죽은지 49일째 되는 날에 지내는 제사)의 한 형태로, 영혼이 불교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극락왕생하게 하는 의식이다.

    불교 천도의례 중 대표적인 제사로 일명 ‘영산작법(靈山作法)'이라고도 한다.까마득한 2500년 전 법회 장면이 오늘날까지 영산작법으로 보존되고 전승된 것이 중요문형문화재 제50호인 영산재이다.

    또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지난 2014년 7월 광주광역시는 ‘광주영산재’를 시의 문형문화재 23호로 지정했다.
  • 2005.7.28
    지정일
    김삼식씨는 1946년 9월 9일에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 131번지에서 태어났으며, 9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땅 한평 없는 막막한 처지에서 자형의 사촌인 유영운(남, 80세, 농암면 갈동리)씨가 운영하는 닥공장에 들어가 한지 만드는 일을 거들며 온갖 허드렛일을 하다가 11세때부터 한지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48년간 선조들이 발달시킨 독특한 제조기법으로 한지를 만들고 있다.

    30여년 전만해도 문경지역에는 20여개소의 한지 공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김삼식씨가 운영하는 한 곳 뿐이다.전통한지는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등 만드는 과정이 너무 까다롭고, 현대 제지산업의 발달로 인한 일반 종이류의 보급, 값싼 수입원 자재를 이용한 변형된 한지의 유통 등으로 인한 전통 한지의 수용 감소 등으로 전통한지 생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이 전통적인 메밀짚 잿물을 이용한 사고지(소지), 이물지, 삼합지, 두장무이, 석장무이(장판지)의 전통한지만을 고집하여 생산하고 있다.

    또한 그는 “우리 종이라면 우리 땅에서 자란 닥나무라야 한다”라는 신념으로 우리나라의 자연에서 얻은 닥나무, 닥풀, 맑은 물과 풍부한 태양광선으로 질 좋은 전통 한지만을 만들어 그의 진정한 장인 정신을 아는 고객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특히 그는 1999년 자택에 그의 평소의 신념인 “진실을 심고, 양심을 심고, 전통을 심어야 전통 한지가 나오는 지소가 된다” 라는 뜻을 담은 작업장을 새로 마련하고,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는 보일러를 응용한 건조대도 자체 개발해 전통 한지 생산의 요청이 있을시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가 강의를 하며 전통 한지에 대한 설명도 빠뜨리지 않고 강의하여 전통 한지의 홍보에도 남다른 열의를 보이고 있으며, 전통 한지의 전수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다.

    현재 그는 부인 박금자씨, 아들 춘호와 함께 한지를 만들고 있으며, 유일한 전수자인 아들 춘호는 아버지의 한지 만드는 일을 도우며 전통한지 기술 전수에 몰두하고 있다.

    전통한지가 급격히 소멸되고 있는 상황에서 동부지역의 청송한지 이외에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전통한지라 할 수 있다.
  • 2005.7.28
    지정일
    이 들소리는 경북 경산시 자인면 일대에서 불려오던 11가지의 농요를 하나로 묶은 것으로 경상도 농요의 일반적 특징인 메나리조와 덧배기 장단이 그대로 살아 있다.

    또한, 자인은 경상도 내륙에 위치하여 타 지역의 영향을 적게 받아 이지방만의 선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한, 경상도 지역의 주민기질과 말씨의 억양을 닮아 꿋꿋하며 투박한 역동감이 넘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 2010.7.30
    지정일
    목소장은 전통 우리 빗을 만드는 기능 또는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로, 빗은 그 유물로 낙랑유적에서 목재빗이 발견되었고 삼국시대에는 대모빗, 통일신라시대에는 대모장식빗 조선시대에는 추칠빗, 화각빗 등이 현재까지 전하는 등 그 역사가 깊다.

    특히 경국대전에는 목장, 조각장, 각자장, 목소장, 목영장, 풍물장, 표통장, 칠장, 변비장, 우산장 등이 기록되어 있는 등 전통 목공예 기술의 발달과 전문장인의 분화를 보여준다.

    빗(얼레빗)의 주재료로는 대추나무, 살구나무, 박달나무, 호두나무, 회양목 등 전통적으로 단단한 목재를 사용하며 그 외에 대모, 무소뿔, 화각, 상아로 장식한다.

    제작방법은 1) 선정된 나무를 내림톱으로 적당한 두께로 켜서 충분히 건조시킴 2) 건조한 나무를 곧은결 무늬를 따라 빗의 크기만큼 자름 3) 앞뒷면을 명대패로 다음은 후 본을 대고 빗 모양을 그림 4) 빗틀에 고정시킨 후 살접이톱을 빗살을 켬 5) 살잽이줄로 빗살을 다듬고 돌림톱으로 외형을 자름 6) 기본모양이 만들어진 빗에 검환(삼각줄), 사포 등으로 빗살을 곱게 다듬고 굴림대패, 갈기칼로 몸체부분을 다듬음 7) 여러종류의 사포로 빗살 및 몸체를 곱게 사포질함 8) 조각 및 입사, 상감 작업이 끝난 얼레빗은 칠(주칠, 흑칠) 또는 피마자유로 마무리함(뿔이나 쇠골을 쓸때는 간장으로 마무리 함) 9) 화각빗의 경우 1.5mm~2mm 얇게 다듬은 각재 뒷면에 당채로 그림을 그리고 알맞게 잘라서 부레풀로 몸체에 붙이고 표면을 고운 사포로 다듬은 다음 간장으로 표면 광택을 냄 10) 마지막 손질이 끝난 빗에 장식(칠보, 은, 매듭)을 달기도 하며 칠 작업이 끝나면 작품이 완성된다.
  • 1999.7.31
    지게놀이는 우리나라 전통의 운반수단이었던 지게를 이용한 민속놀이이다. 산이 많고 따로 길이 없는 농촌과 산촌에서는 지게가 필수적인 운반수단이었다. 강원도 양구지방에서는 노동의 고달픔과 단조로움을 잊고 즐거움을 얻고자 지게를 이용한 놀이를 했다.

    양구 돌산령지게놀이에는 개인적으로 승부를 내는 지게걸음싸움과 단체로 하는 상여놀이가 있다. 지게걸음싸움은 지게의 두 다리 위에 올라가 지게 머리를 잡고 걸어가서 상대를 부딪쳐 쓰러뜨리는 놀이이다. 상여놀이는 편을 갈라 지게를 서로 묶어서 상여를 만들어 메고 구성진 상여소리를 부르며 어르다가 상대의 상여를 밀어 쓰러뜨린다. 승부가 나면 진 팀은 이긴 팀의 지게짐을 운반한다.

    상여놀이에는 회다지놀이가 있는데 장례식 때 구덩이를 다지는 풍습을 놀이화한 것으로 회다지소리를 부르고, 지게작대기를 두드리며 논다. 재미있는 것은 회다지놀이 때 불효하거나 우애롭지 못한 사람, 마을일에 협조하지 않은 사람을 회다지의 인물로 정하여 한바탕 놀고 나면 그 사람의 심성이 고와진다는 개과천선의 교훈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양구 돌산령지게놀이는 전통적인 장례의식과 지게를 얽어 만든 독특한 산간민속놀이로 강원도 산간에서만 유일하게 보여지고 있다.
  • 1988.8.1
    지정일
    임실 필봉농악은 필봉리에 전승되고 있는 농악으로 호남좌도농악에 속한다. 필봉마을에는 예로부터 당산굿·마당밟기 정도의 단순한 농악이 전승되어 왔는데, 오늘날과 같은 높은 수준이 된 것은 1920년경에 상쇠(패의 지도자 격으로 꽹과리를 가장 잘 치는 사람) 박학삼을 마을로 초빙하여 그의 농악을 배우면서부터라고 한다.<br /><br /> 필봉농악의 농악수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르는데, 쇠잡이(꽹과리나 징을 치는 사람)만 상모(털이나 줄이 달린 농악에서 쓰는 모자)를 쓰며 나머지는 고깔을 쓴다. 농기, 용기(그릇), 영기(깃발), 긴 쇠나발, 사물(꽹과리, 징, 북, 장구), 법고(불교의식 때 쓰는 작은 북), 잡색(대포수, 창부<남자광대>, 양반, 조리중<삼태기를 맨 중>, 쇠채만 든 농구, 각시, 화동과 무동<사내아이>)으로 편성된다.<br /><br /> 농악의 종류에는 섣달 그믐의 매굿, 정초의 마당밟기(풍물을 치며 집집마다 도는 것), 당산제굿(당산에서 마을을 위해 제사지낼 때 농악을 치며 노는 것), 보름굿과 징검다리에서 치는 노디굿, 걸궁굿, 문굿, 농사철의 두레굿, 기굿과 판굿이 있다. 이 중에서 판굿은 가장 예술성이 뛰어나다. 뒷굿에 편성되는 영산가락은 가진영산, 다드래기영산(상쇠가 부포시범을 보임), 미지기영산, 재넘기영산(상쇠가 쇠시범을 보임) 및 군영놀이영산(개인놀이와 비슷함)으로 매우 세분화되어 있고 느린 편이다. <br /><br /> 임실 필봉농악은 쇠가락(농악의 대표격인 꽹과리 가락)의 맺고 끊음이 분명하여 가락이 힘차고 씩씩하며, 개개인의 기교보다 단체의 화합과 단결을 중시한다.
  • 1972.8.1
    지정일
    단청은 청색·적색·황색·백색·흑색 등 다섯 가지 색을 기본으로 하여 궁궐·사찰·사원 등에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그려 장엄하게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단청은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1060)' onmouseout='dn2()'>단벽(丹碧)</span>·단록(丹綠)·<span class='xml2' onmouseover='up2(5257)' onmouseout='dn2()'>진채(眞彩)</span>·당채(唐彩)·<span class='xml2' onmouseover='up2(3761)' onmouseout='dn2()'>오채(五彩)</span>·화채(畵彩)·<span class='xml2' onmouseover='up2(1079)' onmouseout='dn2()'>단칠(丹漆)</span> 등의 다른 이름이 있고, 이에 종사하는 사람을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1076)' onmouseout='dn2()'>단청장(丹靑匠)</span>·화사(畵師)·<span class='xml2' onmouseover='up2(6242)' onmouseout='dn2()'>화원(畵員)</span>·화공(畵工)·가칠장(假漆匠)·<span class='xml2' onmouseover='up2(1289)' onmouseout='dn2()'>도채장(塗彩匠)</span> 등으로 부른다. 승려인 경우에는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6227)' onmouseout='dn2()'>화승(畵僧)</span>, 불화에 숙달된 승려는 금어(金魚), 단순한 단청장은 어장(魚杖)이라고도 일컫는다. <br /><br /> 우리나라 단청은 삼국시대의 고분 등에서 기원을 살필 수 있고, 불교의 수용과 함께 더욱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단청을 하는 과정은 먼저 단청을 올릴 바탕을 닦는 일부터 시작한다. 아교를 넣고 묽게 끓인 물을 바탕에 바르고 거기에 가칠을 다섯 번 반복하여 초지를 마련한다. 초지 무늬를 건물에 올리기 위해서 전체 면에 청녹색 흙을 바르는 청토바르기를 한다. 그리고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1251)' onmouseout='dn2()'>도본(圖本)</span>을 해당 면에 대고 분주머니를 두드리면 본의 무늬에 있는 송곳구멍으로 가루가 나와 바탕에 무늬가 박히게 된다. 이렇게 타분작업(打粉作業)이 끝나면 그 본에 따라 광물성 안료로 청·적·황·백·흑의 오색을 입히는데 각기 맡은 색만 찾아 그려 칸을 메워 단청을 끝내게 된다.<br /><br /> 단청은 목재의 보존과 목재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표면도장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으며, 건물의 위엄과 신성함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건축에 많이 이용된다. 단청은 불교나 유교가 성행했던 한국·중국·일본에서 유행했으나, 오늘날까지 단청문화의 전통이 계승되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다.
  • 1988.8.1
    지정일
    바디는 베를 짜는 베틀의 한 부분으로 이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바디장이라 한다. 옷은 엣부터 사람들의 의·식·주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으며, 신석기시대의 유적지에서 실을 뽑은 가락에 끼우는 방추차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미 신석기시대에 베를 짜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br /><br /> 바디는 대나무의 껍질로 만드는데, 3~4년이 지난 대나무라야 껍질이 단단하고 두터워 재료로서 적합하다. 제작과정을 보면 바디살 만드는 과정, 기둥살(일명 날대) 만드는 과정, 마구리를 끼우는 과정, 그리고 갓 붙이는 과정 등으로 구분된다. 바디의 종류는 모시베, 명주베, 무명베, 삼베 등 짜는 옷감의 종류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같은 모시베를 짜는 바디라 할지라도 베의 바탕 올이 가늘고 굵기에 따라 9새에서부터 18새까지 모두 다르다. <br /><br /> 바디는 안동과 한산지방에서 제작된 것이 섬세하고 튼튼하여 명물로 인정받고 있으며, 한산 모시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여 각종 직조기술이 발달하였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합성섬유의 발달로 바디제작이 많이 쇠퇴하기도 했으나 지금까지 전통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1988.8.1
    지정일
    침선이란 바느질로 옷과 장신구를 만드는 기술을 말하며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침선장이라 한다.

    사람이 바느질을 시작한 것은 역사시대 이전부터였다고 한다. 지금의 바늘과 흡사한 신라시대 금속제가 발견되었으며, 고구려 고분벽화나『삼국사기』를 통해 볼때 삼국시대부터 이미 상당한 수준의 침선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침선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더욱 발달하여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침선에 필요한 용구로는 옷감, 바늘, 실, 실패, 골무, 가위, 자, 인두, 인두판, 다리미, 다리미판, 못바늘 등이다.

    옷감으로는 주로 비단, 무명, 모시, 마 등이 쓰인다. 실은 무명실을 많이 사용하며, 실의 선택은 옷감의 재질, 색상, 두께 등에 따라 달라진다.

    바느질 방법은 기초적인 감침질과 홈질, 박음질, 상침질, 휘갑치기, 사뜨기, 공그리기 등으로 옷의 부위에 따라 필요한 바느질법을 사용한다.

    계절변화에 따라 여름에는 홑으로 솔기를 가늘게 바느질하고, 봄·가을에는 겹으로 바느질하며, 겨울에는 솜을 넣어 따뜻한 옷을 만든다.

    옛날에는 여자면 누구나 침선을 할 줄 알아야만 했기에 집안에서 바느질법을 익히고 솜씨를 전수받아서 침선법이 계속 이어져왔으며, 궁중에서도 침방이 있어 기법이 전승되기도 하였다.
  • 1988.8.1
    지정일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은 무업을 전문으로 하는 무당이 소모양으로 꾸미고 농사의 풍년과 장사의 번창,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며 노는 굿놀이로서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소놀음굿은 단독으로 하지 않고 제석거리에 이어서 하는데, 이것은 제석거리가 자손의 번창과 수명을 연장하는 성격을 띠고 있어서 소놀음굿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은 기호와 해서 지방에서 놀던 놀이로 강한 종교적 성격을 띤다. <br /><br /> 굿은 해질 무렵에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된다. 굿판은 앞마당에서 6명의 여자무당이 장구와 징, 저나 피리를 가지고 굿놀이를 벌인다. 마당에는 팔선녀가 내려오는 여덟 개의 무지개를 상징하는 천을 늘어뜨리고 그 밑에는 팔선녀가 내려와 목욕하는 곳이라 하여 큰 물통에 바가지 여덟 개를 띠운다. 흰장삼에 고깔을 쓴 무당은 삼불제석역으로 나와서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지상에 내려와 인간을 탄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 내력을 노래한다. 이때 바지저고리 차림에 벙거지를 쓴 마부가 소를 끌고 들어온다. 소는 어미 논갈이소와 송아지로 종이로 만든 소머리를 손에 잡고 짚으로 만든 자리를 뒤집어 쓴다. 제석은 마부와 소가 들어오면 이야기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마부는 소를 끌고 다니면서 밭갈이를 한다. 이때 치마저고리에 수건을 쓰고 바구니를 든 애미보살이 씨를 뿌리며 뒤따르고, 치마저고리에 호미를 든 지장보살이 김을 매면 갓 쓰고 도포 입은 신농씨가 농사일을 감독하는 시늉을 한다. 이어서 소부리기와 쟁기의 바닥에 삽모양의 쇳조각을 맞추는 법을 가르치기, 방아찧기, 지경다지기, 아이만들기 등의 놀이를 하면서 농사법과 복을 준다. 제석은 소를 타고 나졸들은 춤을 추며 굿판을 돌아 서천서역국으로 가는 것으로 소놀음굿은 끝난다. 굿에 등장하는 삼불제석과 애미보살, 지장보살은 불교의 신들로, 지상에 내려와 고통받는 인간에게 복을 주며 좋은 길로 인도하는데, 이것은 평산 소놀음굿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장면이다. <br /><br /> 평산 소놀음굿은 평산 출신의 무당 장보배가 해방 후에 소놀음굿을 재현함으로써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은 무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무당들에 의해 진행되는 놀이이지만 불교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고 오락성과 예술성을 지니고 있는 놀이로서 주민들의 풍요를 기원하면서 화합을 다지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 1988.8.1
    지정일
    제와장이란 기와를 전문으로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기와는 건축물의 지붕에 빗물이나 습기가 새어들지 못하게 덮어 씌워 침수를 막고 흘러내리게 하여 지붕 밑에 있는 목재의 부식을 방지함과 동시에 건물의 경관과 치장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한때 장식적인 효과와 더불어 권위와 부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br /><br /> 우리나라 기와의 역사는 기원전 2∼1세기경 중국 한(漢)대에 대동강 유역으로 먼저 들어와 차츰 전 지역에 퍼져 지금에 이르렀다. 기와는 암키와와 수키와가 있으며, 부속장식 기와로는 암막새와 수막새, 귀면기와, 치미(치尾), 용두(龍頭),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1494)' onmouseout='dn2()'>망와(望瓦)</span> 등이 다채롭게 개발되었다. <br /><br /> 기와를 만드는 공정은 찰진 진흙으로 된 점토를 물과 반죽하여 나무로 만든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6499)' onmouseout='dn2()'>모골(模骨)</span>이란 틀에 넣는다. 모골의 외부에 마포나 무명천을 깔고 반죽한 진흙을 다져 점토판 위에다 씌워 방망이 같은 판으로 두들겨 약간의 기간동안 건조한다. 그런 다음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3797)' onmouseout='dn2()'>와도(瓦刀)</span>로 2등분하거나 또는 3, 4등분하여 자른 다음 기와가마에다 차곡차곡 쌓아 1000℃ 이상의 높은 온도로 구워낸다. 검은색이나 은회색이 되면 제대로 구워진 것이다. <br /><br /> 우리나라는 각 지방마다 특색있는 기와를 만들었으나 콘크리트, 슬라브집이 생기면서 차츰 그 수요가 줄어 현재에는 경상도 울산과 전라도 장흥지방에서만 제작되고 있다.
  • 2019.8.1
    작약산 생전예수제가 밀양지역을 중심으로 성행을 한 까닭은 지방의 강한 불교적 신앙생활과 토속적 산앙생활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고, 불교문화가 대중들의 놀이 문화에 많는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밀양 연극촌에서 공연 되었던 연극 '오구' 는 작약산 생전예수제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