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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1999.7.1
    지정일
    휘몰이잡가는 조선 후기 경기지방에서 서민들에 의해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소리의 하나로, 휘몰이라는 말은 휘몰아치듯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며 잡가는 국악용어로 정식적인 노래에 속하지 않는 노래라는 말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휘모리잡가로는 만학천봉·병정타령·곰보타령·생매잡아·육칠월·기생타령·비단타령·바위타령·맹꽁이타령·한잔 부어라 등이 있다. 노랫말은 서민들의 생활상과 감정이 담겨있는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긴 사설이다.

    현재 경기소리 휘몰이잡가는 박상옥씨가 보유자로 인정받아 전수에 힘쓰고 있다.

    ※위 문화재에 대한 상세문의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02-2133-2616)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 2009.7.1
    지정일
    대장간은 금속[쇠]을 단야하여 전통 농기구 등 각종 연장[도구]을 제작하는 곳으로, 대장장은 전통 농기구 등을 만드는 기술 또는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현재 대장간의 시설로는 풀무, 모루, 정, 메 등이 있으며 대장장은 쇠의 성형,천공, 열처리[담금질] 등을 통해 각종 연장[도구]을 생산하고 있다.

    1960년대 까지만 하여도 다수 존재하였던 대장장은 현재는 산업화에 밀려 대장장의 전통적 제작기법 및 전승에 위기를 맞고 있는데, 전통적인 대장장 제작기능을 이어받아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특히, 성형, 천공, 열처리 기술 등에 있어 전통적인 기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 대장간의 맥을 이어받아 제작기능의 전통성과 수월성이 뛰어나는 등 전통적인 대장장의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 1987.7.2
    지정일
    다대포 후리소리는 해변가에서 멸치잡이 후리질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로서 작업의 순서에 따라 그 동작이 함께 곁들여진다. 토속민요의 하나로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부르며, 지방에 따라서 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다대포 후리소리는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면 다른 여러 사람이 그 노래를 받아 부르는 선후창(先後唱)형식이다. 내용은 그물을 어장으로 옮겨 배에 실으면서 부르는 그물을 배에 싣는 소리, 용왕고사(제사)를 지내며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제, 고깃배의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노젓는 소리, 어부들이 양쪽에서 벼릿줄(그물)을 당기면서 부르는 후리소리, 후리질을 하며 그물을 쪼으면서 부르는 그물터는소리, 멸치를 저장통에 옮기면서 부르는 가래소리, 가래질을 마친 후 ‘쾌지나칭칭나네’를 부르며 즐기는 풍어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다대포 후리소리는 이 지역의 특성을 지닌 민요로서 멸치잡이에 소요되는 어구와 작업의 방법을 재현·보존하고 있어 민속적·음악적·문화적 가치가 높다. 현재 다대포후리소리보존회에서 전승·보급에 힘쓰고 있다.
  • 1979.7.3
    지정일
    한산소곡주는 한산지방의 이름난 술로서 빛깔은 청주와 같다. 백제 때의 궁중술로서 백제 유민들이 나라를 잃고 그 슬픔을 잊기 위해 빚어 마셨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 가장 많이 알려진 술로『동국세시기』·『경도잡지』·『시의전서』·『규합총서』등에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다.

    소곡주를 만드는 방법은 찹쌀을 빚어 100일 동안 익힌다. 이때 며느리가 술맛을 보느라고 젓가락으로 찍어 먹다보면 저도 모르게 취하여 일어서지도 못하고 앉은뱅이처럼 엉금엉금 기어다닌다고 하여 ‘앉은뱅이술’이라고도 한다.

    한산소곡주는 술맛이 독특한 뛰어난 민속주로 기능보유자 우희열씨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 2009.7.3
    지정일
    강하주는 과하주라고도 한다. 건강증진을 위한 술로 첨가하는 약재와 지역에 따라 독특한 맛과 향을 살린 우리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 민속주이다. 일제의 주세법과 개발시대의 편협한 논리로 대부분의 우수한 전통주가 사라지고 말았다. 강하주도 예외일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문화의 한 요소인 전통주를 찾고 지키고 키워나가는 일은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성 강하주’는 보성군 회천면 지역을 기반으로 전승되어온 전통주로 향과 맛이 진하고 숙취가 없으며, 마실 때 부드럽고 뒷맛이 개운하다. 재료로 밀, 보리, 멥쌀, 찹쌀 등 주곡(主穀)이 다 들어가는 술로 전국적으로도 유래가 드물다. 특히, 보리를 사용하여 증류주를 만드는 전라도 지역의 특징적인 기법을 간직하고 있다. 양조기법상으로 밑술, 덧술, 증류주 첨가 등 중양(重釀) 후 혼양(混釀)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만 선진 양조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회천면지역에서 전승 작업을 하는 도화자씨는 16세(1963년)부터 어머니로부터 배워왔고 그 어머니는 또한 외할머니로부터 배워온 즉 3대에 걸쳐 전승되어온 강하주 전승자이다. 보성 강하주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시판되는 희석식 소주에 밀려 중간에 약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전통주 맥잇기 사업의 일환으로 온전히 복원하여 전승하고 있고, 일반 대중의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보성 강하주는 전통의 보편성과 지역적 독창성을 지니고 있는 술이다. 그리고 현대의 과학적인 분석에 의해서도 건강증진에 도움이 되는 약주로 선인들의 지혜와 과학성이 입증되었으며, 지역적 전통을 충실히 이어오고 있다.
  • 1969.7.4
    지정일
    승무(僧舞)는 승복을 입고 추는 춤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춤 가운데 하나이다. 승무는 흔히 무복(舞服) 때문에 중춤이라고도 하지만 불교의식에서 승려가 추는 춤과는 다르다. 승무의 유래는 불교문화사적 입장에서 본 불교설과 김만중 소설 중 구운몽에서 나왔다는 설, 탈놀음 중에서 노장춤과 파계승의 번뇌에서 비롯된 춤이라는 설 중 어느 것이 확실한지 알 수 없으나, 1910년대쯤 기방에서 발전되었다고 한다.

    춤의 형태는 의식성이나 종교성, 생산성, 극성, 놀이성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홀춤[독무]으로, 춤사위가 살풀이춤과 유사함을 지니고 있어 기녀들에 의해 예술적인 춤의 형식이 갖추어졌다고 보여진다.

    승무는 흰(검은) 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치고 흰 고깔을 착용한다. 승무는 염불, 도드리, 타령, 굿거리, 자진모리 등 장단의 변화에 따라 춤을 추는데, 장삼소매를 뿌리는 동작이나 장삼자락을 휘날리게 하는 팔동작은 춤 공간의 백미를 나타낸다. 반주악기로는 피리, 대금, 해금, 장구, 북이 사용된다.

    승무는 달고 어르고 맺고 푸는 리듬의 섬세한 표현과 초월의 경지를 아우르는 춤사위의 오묘함이 조화된 춤이다.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높은 차원에서 극복하고 승화시킨 춤이라 할 수 있다.
  • 1969.7.4
    지정일
    나주의 샛골나이는 전남 나주 샛골의 무명짜는 직녀 또는 무명짜는 일에 대한 통칭이다. 목화를 원료로 만든 무명은 조선 초기부터 화폐의 구실을 하거나 일본과의 중요한 교역품 중에 하나였다.

    무명의 제작과정은 재배와 수확, 씨앗기와 솜타기, 고치말기, 실잣기, 무명날기, 베매기, 무명짜기 순으로 이루어진다. 8월 중순 목화를 타고, 볕에 말린 후 씨아틀로 씨를 빼내는 씨앗기를 한다.

    솜활을 이용하여 솜을 타고, 말대로 비벼 고치를 만든다. 물레를 이용하여 실을 뽑아 가락에 감는 실잣기 후 실의 굵기에 의해 한 폭에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하는 무명날기를 한다.

    풀먹이기 과정인 베매기 후에는 베틀을 이용하여 직물을 짜면 무명이 완성된다. 나주의 나주세목 또는 샛골목은 오늘날의 12승 무명으로 유명하다.
  • 1993.7.6
    지정일
    대금장이란 삼금(대금·중금·소금) 가운데 하나인 대금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 또는 기술을 말한다. 대금은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로 ‘저’ 혹은 ‘젓대’라고도 한다.

    대금 제작에 사용되는 재료로는 황죽(黃竹)이나 쌍골죽(雙骨竹)이 쓰인다.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황죽 또는 쌍골죽을 불에 구워 기름을 제거하고, 구부러진 부분을 바로 잡아 약 2개월간 건조시킨다. 이어 대나무 안에 소금물을 부어 약 24시간 경과시킨 다음 소금물은 제거하여 10일간 건조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대나무에 구멍을 뚫고 갈라짐을 방지하기 위해 마디 위치에 따라 10군데를 낚시줄로 동여맨다. 구멍에는 취구(吹ㅁ)·청공(淸孔)지공(指孔)칠성공(七星孔)·청가리개가 있는데, 취구는 입김을 불어넣는 곳이며, 청공은 떨림판 역할을 하는 갈대의 속껍질을 붙이는 곳이다. 지공은 손가락으로 음정을 조절하며, 칠성공은 전체 음정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 1989.7.6
    지정일
    가야금산조는 가야금으로 연주하도록 짜여진 산조를 가리킨다. 산조란 악기를 혼자서 연주하는 형식을 말하며, 느린 장단으로 시작하여 차츰 빠른 장단으로 바뀌는데, 이는 듣는 사람을 서서히 긴장시키면서 흥겨움을 끌어올리게 한다.

    가야금산조는 4∼6개의 장단으로 짜여진다. 각 장단의 느낌을 살펴보면 진양조는 아주 느려서 서정적이고, 중모리는 안정적이며, 중중모리는 흥취를 돋운다. 자진모리는 밝고 경쾌하고, 휘모리는 흥분과 급박감이 있다.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 산조보다 먼저 만들어졌으며, 뛰어난 기교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끌어서 여러 유파가 형성되었다.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는 막아내기, 눌러내기 등 어려운 기교가 많아 기교파의 총수로 평가된다. 특징을 보면 산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계면조(슬프고 처절한 느낌을 주는 음조)를 줄이고, 우조(맑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 음조)와 강산제(목소리가 분명하고 정교하여 화창하고 맑은 느낌을 주는 음조)를 많이 끌어들임으로써 호쾌하고 온화한 면이 많다. 가락은 복잡하고 불규칙적이며 엇박이 많이 나타난다.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는 전통음악 중에서 순수한 음악미를 추구하는 독주곡으로, 다른 산조에 비해 경쾌한 느낌을 주는 귀중한 음악이다. 현재 강태홍류가야금산조보존회에서 전승·보존에 힘쓰고 있다.
  • 2000.7.7
    지정일
    고창농악은 예로부터 고창, 무장, 영광 등지의 해변을 끼고 형성된 농악이다. 호남 우도 농악의 일반적인 성격을 지니면서도 잡색놀음이 다양하게 발달한 점과 고깔소고놀음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고깔소고놀이는 머리에 고깔을 쓰고 삼채가락에 맞추어 춤을 흥겹게 추는 것으로서 가락의 진행과 상황전개에 따라 즉흥적인 동작을 유연하게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강모질의 제자인 정창환 씨는 소고 부문에서 보유자로 인정되어 현재는 고창동리국악당 및 고창농악전수관에서 후진양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 2000.7.7
    지정일
    거문고는 가야금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전통 국악기이다. 거문고의 앞판은 오동나무를 뒷판은 밤나무를 괘는 회양목을 이용하여 만든다. 거문고는 연주자 또는 애호가의 주문에 의해 제작되며, 그 제작기법도 구전으로 전승되었다. 최동식은 1940년에 전주에서 태어나 조정환, 조정상 등에게 거문고 등 국악기 제작기법을 배웠다. 전라북도 공예품경진대회, 전국 공예품경진대회, 전승공예대전 등에서 여러 차례 입상했다.
  • 2015.7.8
    지정일
    「선자장(扇子匠)」은 전통 부채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부채는 형태상으로 크게 둥근 모양의 부채와 접고 펼 수 있는 접(摺)부채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접부채인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5965)' onmouseout='dn2()'>합죽선(合竹扇)</span>은 현재까지 전승되는 최고 수준의 정교함과 세련미를 갖춘 부채로서, 고려시대부터 나전, 금속, 칠, 옥공예 등과 접목되어 나라를 대표하는 공예품이었다. <br /><br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5964)' onmouseout='dn2()'>합죽(合竹)</span>이란 대나무의 겉대와 겉대를 붙여서 만든 것으로 고려시대에 대나무의 주산지인 전남 담양에서 처음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합죽선은 조선시대에는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에서 선자청(扇子廳)이라는 관청의 장인들이 주로 제작하였고 외교나 대외무역에도 활용되었다.
  • 1991.7.9
    지정일
    풍어제는 바다가 생활터전인 어촌마을에서 바다에서의 여러가지 사고를 막고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의식을 말한다. 황도에서도 매년 음력 1월이면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풍어와 마을의 평안을 비는 당제를 벌인다.

    황도 붕기풍어제의 유래에 대하여는 옛날 안개 자욱한 밤이면 지금의 황도 당산에서 밝은 불빛이 발하여 항로를 잃고 표류하는 배들이 무사히 귀향할 수 있게 하여 당집을 짓고 제사를 모시며 신성하게 여겼다 한다. 제의식을 주관하는 제주는 1년간 부정하지 않은 사람으로 선출하며 제물로는 동쪽에서 구한 부정하지 않은 소를 잡아 사용하는데, 돼지는 제신으로 모시는 뱀과 상극이라하여 마을에서 기르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

    붕기풍어제는 첫째날에 제물로 소를 잡아 고사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되어, 세경굿으로 마을 각 가정의 재복을 빌고, 본굿에서는 마을전체의 안녕과 풍어를 빈다. 첫째날의 마지막은 항구에 모인 각 선주들이 자기 배에 모실 뱃신의 신내림을 받는 의식을 한다. 둘째날은 각 선주와 선원들이 당제에 쓰인 제물을 빨리 자기 배에 싣는 의식과 뱃기를 배에 먼저 꽂는 뱃기경주를 하고, 각 배에서 고사를 지낸다. 마지막으로 어민들은 붕기의 풍어타령을 농악에 맞추어 부르며 준비한 음식을 먹고 한바탕 논다.

    황도 붕기풍어제는 단순한 축제라기보다는 마을주민 전체가 참여하는 종교의식에 가까운 행사로 그 원형이 잘 남아있으며, 마을의 화목과 협동을 다지는 민속놀이로 전승되고 있다.
  • 1991.7.9
    지정일
    서천 저산팔읍 길쌈놀이는 모시짜기로 유명한 한산지방을 중심으로 발달한 베짜기에 관한 민속놀이로 주로 부녀자들의 가내수공업이었다. 신라 유리왕(재위 24∼57)이 두 왕녀로 하여금 부내의 여자들을 나누어 길쌈을 하게 하고, 추석날에 결과를 심사하여 진 편에서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는 『삼국사기』기록으로 미루어 일찍부터 모시길쌈이 있었으며, 나라에서도 이를 장려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길쌈놀이는 모시를 베어다 모시베끼기, 모시삼기, 모시꾸리감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짜기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노래와 행위로 표현하고 있다. 노래는 민요풍으로 여인네의 애환과 체념, 그리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저산팔읍을 예찬하는 노래에 맞추어 흥겹게 춤추면서 농사의 고달품을 잊고, 이웃과 화합을 꾀하며 협동을 다진다. 발표가 끝나면 모든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장원을 한 마을을 축하해준다.

    서천 저산팔읍 길쌈놀이의 전통은 근래까지 전승되어 농촌 부녀자들이 7월에서 8월까지 일정한 장소에 모여 공동으로 길쌈을 하였으며, ‘두레길쌈’이라고 하여 서로 겨루기보다는 함께 돕는 품앗이 같은 두레의 성격이 짙다.
  • 1991.7.9
    지정일
    백중놀이는 고된 농사일을 해오던 머슴들이 음력 7월 15일 백중날 하루 휴가를 얻어 흥겹게 놀던 것을 말하며 흔히 이 날을 머슴날이라고도 한다.

    연산 백중놀이는 논산 두마면 왕대리를 중심으로 연산면 일대에서 전승되어 왔으며 조선 성종(재위 1469∼1494) 때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백중날 묘에 참배하고 한바탕 놀았던 것이 후에 광산 김씨들이 연산일대로 옮겨오면서 연산장터에 모여 놀이를 벌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연산 백중놀이는 제를 지내고, 효자효부에 대한 상과 불효자에 대한 벌을 논하고, 그해 농사를 잘 지은 머슴을 뽑아 상을 주는 당시의 풍습을 놀이로 재현하고 있다.

    놀이의 진행은 맨 처음 네 곳에서 기를 선두로 하여 놀이마당 중앙으로 모이는 길놀이 진군, 농신제단을 설치하고 액막이 판굿을 하는 농신제, 효자효부와 불효자를 상벌하고, 농사 잘 지은 머슴을 시상하는 상벌마당으로 이어진다. 뒷풀이는 농악으로 흥을 돋우며 양반춤과 광대들의 해학적인 춤이 한바탕 어우러진다.

    연산 백중놀이는 이 지방에서 500여 년이나 전해져 내려온 민속놀이로서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기원하고, 충효사상과 사회 위계질서를 담고 있는 독특한 민속놀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