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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2003.12.15
    지정일
    백광훈은 누대에 걸쳐 영덕 지방 옹기제조법을 전수하였고, 전통적인 옹기제조방법을 비교적 잘 고수하고 있으며, 옹기의 품질이 아주 우수할 뿐만 아니라 40여년간 외길로 옹기를 만들고 있다. 더구나 경북에서 옹기업이 가장 성행한 영덕지방 옹기일의 마지막 보루이다.
  • 2016.12.15
    지정일
    상여 디딜방아액막이소리는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왕조시대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인명의 손실이 많았을 때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민간신앙」의 한 방법이었습니다. 의술이 발달한 현대인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짓일는지 모르나 옛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질병을 예방하고 또 치유할 수 있다고 믿어 왔음.

    이러한 민간신앙의 의식을 행할 때는 「소리」를 동반했는데 이를 일러 「거창상여 디딜방아액막이소리」 또는 「거창 디딜방아액막이소리」라 하여 왔음.
  • 2016.12.15
    지정일
    한국의 전통적인 제의식에는 상주권공재, 생전예수재, 시왕각배제, 영산재, 수륙재의 다섯 종류가 있다.

    상주권공재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천도하는 가장 규모가 작은 재, 생전예수재는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을 천도해 주기를 바라며 미리 행하는 재이며, 시왕각배재는 명부의 十王에게 천도를 위해 재를 올리는 의식으로 중간 규모의 재이고, 영산재는 규모가 가장 큰 재로 국가나 기관 등의 주재로 국가나 기관 등에 중요한 인물들의 천도를 기리기 위해 치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재이며, 수륙재는 본래 물과 육지에 떠도는 孤魂을 위해 베푸는 재로 불교의 종교적 의미가 가장 많이 깃든 재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그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위해 설치하는 齋壇의 종류가 달라지며, 그에 따라 재를 거행하는 순서나 내용도 달라진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7호 ‘아랫녘수륙재’와 ‘영남영산재’는 그 목적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별도 지정한 바 있다.

    영남영산재의 범패는 신라시대부터 연행되어 오던 불교의식과 그에 불리던 의식 노래로서의 梵唄, 또 이를 반주하는 징, 북, 꽹과리 등의 기악반주, 그리고 각종 齊壇을 꾸미는 莊嚴 등이 그 예술성과 함께 종교성, 역사성, 문화성, 지역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영남영산재의 美는 그 예술적 가치와 함께 종교적 가치, 역사적 가치, 문화적 가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영산재를 지속적인 계보 전승 및 지역 문화유산 보존관리를 위해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 2004.12.16
    지정일
    모필장은 문방사우의 하나인 붓을 만드는 사람과 그 기술을 말한다.

    붓은 먹을 함유하되 균일하게 발산할 수 있어야 하고, 마모에 오래 견딜 수 있는 내구력과 붓끝인 호의 갈라짐이 없어야 하고, 탄력과 유연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재료로 양의 겨드랑이 털, 족제비 꼬리털, 산토끼털 등 여러 동물들의 털이 사용되는데, 추운 내륙지방의 짐승일수록 품질이 좋다.

    붓의 구성은 촉과 붓대롱, 그리고 큰붓의 경우 붓촉과 붓대롱을 연결하는 각통으로 되어있는데, 붓대롱은 주로 대나무를 사용하고, 각통은 참죽나무를 많이 쓴다.

    붓의 제작과정은 선별-탈지-정모-혼모-분모-의체와 작촉-필촉 삽입의 복잡하고 섬세한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기능보유자인 김종춘씨는 10대 때부터 붓제작에 입문하여 전통공예의 맥을 잇고 있는데, 특히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황모붓과 암노루 겨드랑이털을 사용한 장액붓의 제작에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다.
  • 2008.12.16
    지정일
    불화는 불교 교리를 알기 쉽게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예배용·교화용 탱화 제작을 주로 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15호 불화장 권영관은 불화장으로서 전승 관계가 뚜렷하게 증명되는 자이다. 그의 부친 권정두는 20세기 초반 대불모이자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에 많은 불화를 남긴 양완호로부터 전수를 받아 전국적으로 뛰어난 불화, 불상 조각 등을 제작하였으며, 권영관은 다시 부친에게서 전수를 받았다.

    1962년에 입문하여 현재까지 부산에서 46년간 오로지 탱화 제작에만 종사해 왔다. 1972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주최 제3회 불교 미술 전람회 불화 부문에 후불탱화를 출품하여 우수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1973년 제4회 때에는 최고상을 수상하였고, 다음 해인 1974년 제5회 때에는 특상을 수상하는 등 수상 경력이 매우 뛰어나다.

    범어사와 삼광사 등 부산의 사찰뿐만 아니라 전국 사찰에 봉안되어 있는 그의 주요 작품 또한 50여 점에 이르고 있다. 그의 문하에는 현재 8명의 전수자가 불화 제작 기능 전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불화 제작에 있어 불교 경전 내용을 도상화할 수 있는 기량과 함께 안료와 배접 방법에서도 전통적인 제작 방법을 충실히 지켜가고 있다. 2008년 12월 16일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15호 불화장으로 지정되었다.
  • 2003.12.19
    지정일
    죽력고는 청죽을 잘개 쪼개 불에 넣어 구워 스며 나오는 진액[죽력]을 소주에 넣고, 꿀과 생강즙을 넣어 끓는 물에다 중탕하여 제조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중기 이후에 제조되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죽력고는 대나무가 많은 전라도 지방에서 빚은 약용주로서, 한방에서는 어린이가 풍으로 갑자기 말을 못할 때 구급약으로 사용되었는데, 생지황·계심·석장포를 넣어 제조하기도 하였다.

    최남선은 평양의 감흥로와 전주의 이강주 및 죽력고를 조선의 유명한 술로 기록한 바 있다.

    기능보유자 송명섭은 30여년간 전통적인 방법에 의하여 술 담그는 법을 전수해 오고 있으며, 국순당의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는가 하면, 전통주의 맥을 잇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 2013.12.19
    지정일
    300년동안 9대째 이어 내려온 '미력옹기'는 전통옹기의 제조법을 고집스레 지켜 일일이 손으로 직접 만들고 특히, 천연유약을 입힌다.

    옹기 제조상 가장 중요한 질 좋은 점토, 천연유약 일명 잿물은 철분이 함유된 약토에 소나무를 태워 물내린 잿물을 섞어 만든다. 옹기 표면에 공기가 통할 수 있는 미세한 구멍을 만들어 주어 고추장이나 간장을 담가 해를 거듭해 저장해도 변질되거나 썩지 않으며 음식물의 맛과 신선도를 오래 유지시켜 주고, 오염물질을 없애주는 자연자정역할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지방 특유의 채바퀴 타래기법을 사용, 때려서 만들고 잿물에 담가 구워내니까 인체에 무해함은 물론이고 살아 숨쉬는 바이오효과를 내는등 옹기의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또한 전통 옹기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에 주력하여 소박하고 정겨운 남도지방 특유의 옹기를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 2013.12.19
    지정일
    초고장은 짚과 풀로 전통 생활용구와 농업 도구, 민속신앙 도구 등을 만드는 기술이다.

    재료의 변화로 잊혀져가는 기술이 돼가고 있다. 곡성 임채지 장인이 전통 짚풀공예 기술을 원형으로 체득해 전승해 오고 있다.
  • 2013.12.19
    지정일
    떡살, 다식판을 만드는 문양각 기능으로서 불상조각기법과 다른 우리생활에 필요한 전통 민속 조각기법으로 생활이나 풍습에 관계가 있고, 문화적인 측면이나 미술사적으로 우리 생활에 필요한 매우 중요한 전통조각기술이다.

    김규석은 이주철선생에게 목조각, 문양각을 배우고 이연채선생에게 떡살, 다식판 기술을 배워 기술 구사능력과 학술적 뒷받침이 탁월하여 체계적으로 전승하고 있다.
  • 2013.12.19
    지정일
    광양 진월 전어잡이 소리는 광양만을 중심으로 전승돼온 어로 노동요로 광양만 사람들이 섬진강 하구와 남해안지역의 생태환경에 깃들어 살면서 펼쳐온 삶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무형민속유산이다.

    공연형태로 전하며 소리의 구성은 노젓는소리, 그물내리는소리, 그물올리는소리, 가래질소리, 늦은소리, 도부꾼 전어 퍼주는 가래질소리, 난장굿으로 되어 있다. 남해안의 대표 어종과 연관된 광양만 특유의 어업문화적 특징을 담고 있다.
  • 1990.12.20
    지정일
    숭선전은 가락국 시조왕과 왕비 허씨의 신위를 봉안하고 향화를 받드는 전각이다. 이 전각은 국조단군과 고구려 시조 동명왕을 모신숭영전, 기자의 숭인전, 신라 시조 혁거세왕의 숭덕전, 탈해왕의 숭신전, 알지왕·문무왕·경순왕의 숭혜전, 백제 시조 온조왕의 숭열전, 고려 시조왕의 숭의전과 함께 팔전의 하나이다.

    숭선전 대제는 춘추향 2회로 춘향은 음력 3월 15일, 추향은 음력 9월 15일이며 시간은 상오 10시부터 약 1시간 거행된다. 당초에는 정월 3일과, 7일, 5월5일, 8월5·15일에 년중 5회의 묘향을 받들기 시작하여 제10대 구형왕(구해 또는 구충왕) 12년(532)까지 334년 동안 모시고 있었다고 한다.

    신라에 합병된 이후에도 제향은 계속되었는데 신라 30대, 문무왕 즉위년(661)에는 제금을 내려 종묘제례로 계속 시키는 한편 수로왕묘 근처의 왕위전 30규를 바치고 가야군에 소속시켜 관리하게 하였다.

    1792년(정조 16년)에 가락국 시조 수로왕능 춘추시향의 전교가 내려져 이로부터 매년 춘추대제 축문은 조선국왕의 명의로 고하여 향폐등 육품은 예조에서, 의성 등 53품은 김해부에서 마련하고 능감을 설치하여 수호하게 할 바 있으며 이밖에 설, 단오, 추석, 동지 등 명절에도 제례를 올리고 있다.
  • 1995.12.20
    지정일
    옻칠은 옻나무 진에 착색제·건조제 등을 넣어 나무그릇 등에 발라, 썩지않게하고 윤기나게 하는 것으로, 옻칠을 하는 기술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옻칠장이라 한다.

    남원시에서 전승되고 있는 옻칠은 지리산 실상사 창건으로 부처의 공양미를 담는 그릇과 제기 등의 목기제작을 함으로써 그 기원을 이룬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후 일제시대에 한국 최초로 전라북도 목기기술학교 칠공과(漆工科)가 생기면서, 연구 및 기술개발이 이루어졌으며, 자연산 옻칠대가인 양기수씨에 의하여 전통적인 옻칠비법 등이 개발되었다.

    옻칠은 수액을 채취하는 방법에 따라 생칠, 화칠 등 다양한 색상으로 만들어지는데, 생칠은 자연 그대로의 옻나무 진으로, 생칠을 한 공예품은 오래될수록 은은한 갈색을 띤다. 또한 67회까지의 재벌칠을 통하여 완성된 제품은 방습·방수·방충 및 광택의 효과가 매우 좋다.

    옻칠장은 전통적인 공예기술로서 3대를 경영해온 남원의 김을생씨와 전주의 이의식씨가 목칠가업을 전수하여 전통적인 옻칠기법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 2001.12.20
    지정일
    다례란 사람 또는 신불에게 차를 달여 바치는 예의 범절로서,궁중다례를 비록하여 유가,불가,도가의 다례가 있다.

    명 또는 천이라고도 쓴 차는 언제부터 음료로 마시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삼국사기>에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다.'라고 한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7세기에는 차를 마셨음을 알 수 있다.

    또 흥덕왕 3년(828)에 "중국 종의 차나무 씨를 들여와 지리산에 심어 늘어나는 수요에 충당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삼국유사>가라국기조에서 "661년 신라 문무왕 때 가야의 종묘에 시절제사인 다례를 지내는 음식으로서 떡,과일 등과 함께 차가 놓여졌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기호음료로 마셨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왕실의 다례는 태후나 태자의 책봉,원자의 탄생 축하, 태자의 생일 축하 의례 때에 차를 올렸으며,공주가 시집갈 때도 차를 베푼 기록이<고려사>에 보인다.

    조선시대 조정과 왕실의 다례는 ,사신맞이 다례,왕실의 다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화강이란 왕세자가 스승과 시강원의 정 1품 관리와 빈객을 모아 놓고 경서와 사기를 강론하던 일로서,이때 다례를 행한 기록이 <세종실록>에 보인다. 사신맞이다례는 태평관,사정전,인정전,명륜당 등에서 왕이나 왕자가 중국 사신에게 차를 대접하는 의례를 행한 것으로서 고종 때까지 번번히 행해졌다.

    보유자 김의정의 사신 접빈다례 절차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임금의 의자는 서벽에 동향하여 설치하고,사신의 의자는 동벽에 서향하여 설치하며,향안은 북벽에 설치한다.임금과 사신이 읍을 한 다음 자리에 앉는다.사준제거 1인은 다병을 받들고,1인은 다종,찻잔의 쟁반을 받들고 들어와 서쪽에 선다.사옹제거 2인은 과실 쟁반을 받드는데 1인은 정사 오른쪽에 남향하여 서고,1인은 부사 왼쪽에 북향하여 선다.

    제조가 과실 쟁반을 받들고 임금의 오른쪽에 북향으로 서고,사준제거가 찻잔으로 차를 받아 제거가 차를 따른 후 꿇어앉아 임금에게 올리면,임금은 의자에서 일어나 조금 앞으로 나와서 서고,사신도 의자에서 일어나 조금 앞으로 나와서 서고, 사신도 의자에서 일어나 조금 앞으로 나와 선다. 임금이 찻잔을 받아 정사 앞으로 나아가서 차를 건넨다. 정사가 종을 받아 임시로 통사에게 준다. 제조가 또 찻잔으로 차를 받아 부사 앞에 나아가 차를 건넨다.부사가 찻잔을 받으면 조금 물러나고 제조가 도 찻잔으로 차를 받아 정사에게 올리면 정사가 찻잔을 쥐고 임금에게 나아가 차를 올린다. 이때 제조가 서쪽으로 물러나 북향하여 꿇어앉는다.

    임금이 찻잔을 쥐면 통사가 찻잔을 정사에게 올리고 임금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신다. 제조느 임금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어앉아 차잔을 받아 차쟁반에 두고 나간다. 사옹제거는 서서 사신에게 과일을 올리고,제조는 꿇어앉아 임금에게 과실을 올린다. 마치면 쟁반을 가지고 나간다.

    궁중다례에 사용하는 도구는 湯罐(찻물 끓이는 주전자),茶罐(찻주전자),찻잔,잔받침,熟盂(물을 식힐 때 쓰는 그릇),찻숟가락,차항아리,차수건,차병,퇴수기(찻주전자나 찻잔을 쓴 물을 버리는 그릇)등이 있다.

    2001년 12월 20일에 김의정이 보유자로 인정받아 활동해 오고 있다.

    ※위 문화재에 대한 상세문의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02-2133-2616)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 1967.12.21
    지정일
    야류(들놀음)는 경상남도 내륙지방에서 행해지던 오광대가 바닷길을 따라 수영·동래·부산진 등에 전래된 것으로, 야류란 이름은 넓은 들판같은 곳에서 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오광대가 전문연예인에 의해 행해진 도시가면극이라면 야류는 비직업적인 연희자들, 즉 마을사람들에 의해 토착화된 놀이이다.

    동래야류는 정월 대보름 저녁에 벌어졌는데, 그 해 농사를 점치거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행해졌다고 한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약 100년전 인근 수영야류를 보고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며, 근래에는 대중오락적인 놀이로 공연되고 있다.

    놀이는 문둥이춤·양반과 말뚝이의 재담·영노춤·할미와 영감춤의 4과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놀이에 앞서 가면과 의상을 갖추고 음악을 울리면서 공연장소까지 행렬하는 길놀이를 한다.

    등장인물로는 원양반·둘째양반·모양반·영감·할미·제대각시·봉사·의원·무당·상도꾼 등이 있다. 줄거리는 양반에 대한 조롱과 모욕이 주를 이룬다.

    탈은 대부분 바가지로 만드는데, 양반들 탈의 턱 부분을 움직이게 하여 재담을 할 때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처럼 턱이 움직이는 것이 특색이다.

    반주악기는 대체로 타악기를 사용하며, 굿거리장단에 맞춰 추는 덧뵈기(탈놀이)춤이 주를 이루는데, 특히 말뚝이춤과 양반춤이 대표적이다.

    동래야류는 같은 계통의 오광대 탈놀음과 달리 오방신장춤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사자춤 등이 빠져 있다.
  • 1968.12.21
    지정일
    정악이란 궁정이나 관아 및 풍류방(각 지방의 풍류객들이 모여서 음악을 즐기던 장소)에서 연주하던 음악으로, 우아하고 바른 음악이란 뜻이다. 대금정악은 정악을 대금으로 연주하는 것을 가리킨다.

    대금은 신라 삼죽의 하나로, 삼죽이란 대금, 중금, 소금을 말하며, 이름 그대로 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 중에서 가장 긴 것으로 ‘저’ 또는 ‘젓대’라고도 한다.

    쌍골죽이라는 속이 찬 대나무 밑둥으로 만드는데, 왼쪽은 막혀 있고, 위 첫마디에 입김을 불어넣는 구멍이 있다. 그 조금 아래에는 갈대 속으로 만든 얇은 청을 대는 청구멍이 있고 다시 그 아래로 구멍이 여섯 개 뚫려 있다.

    주법을 보면 은은한 소리가 나게 낮게 부는 저취와 청아한 소리가 나게 세게 부는 역취가 있다.

    다른 악기에 비해 음량이 풍부하고 음높이를 조절할 수 있어서 국악기 중에서 대표적인 독주악기로 자주 쓰인다.

    대금정악은 궁정음악 계통인 아악곡(나라의 의식 등에서 정식으로 쓰던 음악)의 전부를 다루고 있지만 모두 합주음악에 속하며, 본래부터 독주로 연주되는 음악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제부터 독주로 연주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곡목으로는 청성자진한잎, 평조회상, 자진한잎 등이 있다.

    대금정악은 영롱하나 가볍지 않고 부드러우나 유약하지 않으며, 섬세하나 천박하지 않은 오묘한 맛의 가락을 지닌 전통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