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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2011.9.30
    지정일
    김무철은 부친인 김조균으로부터 한량춤을 사사받았다.

    한량무 명칭은 당시 전통춤을 고수했던 전라도 지역의 특성상“남무”라 칭하였고 조선조말 남사당패 무동등이 여흥으로 추었던 춤이 남사당패가 흩어지자 기방에서 추어졌다. 한량의 한과 흥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나타낸 춤으로 갓아래로 가려진 홍안이 부채로 가리워져서 그 멋을 더하며 한량의 학식과 인격을 엿볼수 있는 춤이며, 특히 발 디딤새의 독특한 매력은 춤의 맛을 더한다.
  • 2011.9.30
    지정일
    2008년 제33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입선

    2009년 제14회 전주전통공예전국대전 입선

    2010년 제35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특선
  • 2011.9.30
    지정일
    전라삼현육각에 쓰이는 악기는 대금, 피리, 해금, 장구, 북으로 편성되며 단소를 곁들이기도 한다. 대금은 삼현대금을 쓰며, 피리는 향피리를 쓴다. 삼현육각은 향교의 제향, 사가의 회갑 및 혼인, 절에서 제사 지낼 때, 혹은 상량 올릴 때, 춤을 출 때, 활을 쏠 때 등 다양한 행사에 연주되었다.

    전라의 삼현육각에는 전국 유일하게 농삼현과 민삼현이 있다. 농삼현은 무용 반주용으로 연주하기 위해 세련되게 정비한 삼현이며, 민삼현은 본래부터 민가에서 쓰던 삼현이다.

    전라삼현육각에 쓰이는 악곡에는 본영산, 중영산, 잔영산, 허두, 꺽두리, 돌가락, 삼현, 염불, 삼현돌장, 타령, 굿거리, 행락, 군악, 당악 등이 있다. 전라의 삼현육각은 행사의 내용에 따라 연주되는 음악의 순서가 적절하게 바뀌어 연주되는게 특징이다.

    전라 농삼현은 대풍류 48장의 가곡, 편락까지 배웠으나 지금은 본영산, 염불, 굿거리, 늦은 타령, 자즌타령, 승전곡만 남아 있다. 의례의식 음악 뿐만 아니라 행악, 사찰음악, 좌속음악 등 궁중음악이 지방관라에 까지 보급되지 않아 탄생한 삼현육각은 향토음악으로 자리 잡아 국악 진흥에 크게 이바지 해왔다.
  • 2016.9.30
    지정일
    금산농악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발달된 산악분지 형 민속 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농악으로 좌도농악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금산농악은 마을농악의 단계에서 벗어나 좀 더 발전하여 걸립농악의 단계를 거쳐 포장걸립농악으로 발전한 매우 전문적인 농악의 형태로 구축된 농악이다. 금산농악은 해방이후 전국에서 열린 각종 경연대회에 도 대표로 참여하여 수차례 수상하였으며 전국을 순회하며 활동한 금산농악단 최상근 일행의 판굿이 발전하여 오늘날 금산농악에 뿌리를 두고 전승되고 있다.

    금산농악은 마을굿, 송계대방놀이, 두레풍장, 천내배걸립굿 등 금산의 기층문화에 다양한 발전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영기, 나팔, 태평소, 대포수, 창부, 조리중, 양반, 농군, 각시, 할미, 걸농, 꽃나비, 중나비, 쇠, 징, 장구, 북, 법고 등으로 구성되어 치배의 구성이 고루 갖춰지는 특징을 가졌다. 특히 금산농악은 치배들의 윗놀음이 좌도농악 중에서 가장 수준 높은 단계에까지 발달되어 있다.

    금산농악의 전승계보는 김수동, 최상근, 주기환, 김병화, 박희중 현재 전인근으로 전승되고 있다.



    금산농악은 공연 목적과 연행시기, 장소에 따라 형식과 진행절차가 다르며 종류를 나누어 보면 섣달그믐에 〈매굿〉, 정월 초사흗날이나 정월 열나흗날에 〈마당밟이〉, 정월보름날에 〈당산제〉, 초 3일부터 대보름까지는 〈걸립굿〉, 모내기를 하기 전에 〈기우제굿〉, 여름철 김매기 철에는 〈두레풍장굿〉, 추석이나 단오날, 칠석날이 되면 〈명절굿〉, 백중이 지나면 〈송계대방놀이〉, 짐승을 몰기위해 〈몰이굿〉, 다양한 진법을 구사하는 〈판굿〉 등이 있다.



    금산농악 마을굿의 연행절차는 들당산, 날당산, 샘굿 탑제(당산굿), 문굿, 마당굿, 성주굿, 정지굿, 철용굿(장광굿), 시암굿(샘굿), 곳간굿(광굿)으로 전승ㅎ되고 있고, 판굿의 연행절차는 앞굿과 뒷굿으로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으며 각 과정은 독립적이고 세분화되어 독자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굿은 기악적인 요소와 무용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뒷굿의 경우 성악, 연희, 놀이적 요소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금산의 지역적 특성이 나타나는 가락으로는 외마치질굿, 갖은열두마치, 느진마치, 자진마치, 영상, 춤굿, 풍년굿, 밧삭굿 등의 가락은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기법과 느린 가락으로 시작하여 점점 빠르게 연주하여 아주 빠르게 맺는 형식은 수준 높은 음악성을 갖추고 있으며 삼진굿, 고사리꺽기, 몰이굿, 흥억이타령 등은 좌도농악 중 금산농악만이 독자적으로 구성 되어 있다.



    금산농악의 치배구성은 기수, 앞치배, 뒤치배로 되어있다.

    1) 기 수

    설명기(숫기)1명, 용기(암기)1명, 농기1명, 영기2명, 오방기5명

    2) 앞치배

    나발, 새납3명, 꽹과리6명, 징4명, 장구8명, 북6명, 소고12명

    3) 뒤치배

    대포수 - 1명, 양반 - 1명, 걸농 - 1명, 조리중 - 1명, 각시 - 1명, 할미 – 1명, 무동 (꽃나비1명, 중나비1명, 창부2명, 농구4명)



    금산농악의 복색은 기수, 앞치배, 뒤치배로 구분되며 기수는 용기와 농기의 복장이 같고 영기와 오방기수의 복장이 같다.

    앞치배의 경우 꽹과리는 자색 더거리를 입고 징, 장구, 북은 자색조끼, 소고는 남색으로 된 조끼를 입는다. 뒤치배의 경우 잡색과 무동으로 나누어져 모두 복장이 다르게 구별되어 있다. 전립의 경우 금산에서는 삼냄이(싸리나무를 갓처럼 엮는 것)를 만들어 그 위에 꽃 장식을 하여 동네에서 솜씨 있는 사람이 손수 꽃을 만들고 보기 좋게 오방색을 칠했다고 하며 현재도 나이 드신 어른들은 전립을 삼냄이와 돌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 2004.10.4
    지정일
    주성장이란 쇠를 녹여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원하는 물품을 만드는 주물기술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조선시대 주성장은 군기감이나 주자소에서 무기나 금속활자를 만드는 경공장이 중심이었다. 영·정조시대 이후 공장안이 폐지되자 17세기부터 개인적인 경영을 하는 사장(私匠)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18세기에 들어 사찰의 범종, 금고, 향로, 시루 ,주자 등의 수요를 담당하였고, 19세기부터는 점차 쇠퇴하였다. 이후 대한제국 시절에는 주성장의 맥이 거의 단절되다시피 하였으나 오히려 일제강점기에는 군수물자 제작으로 인해 주물의 수요가 늘어나 점차 부활하였다.

    주성장 기능보유자 박한종은 16세에 주성장계에 입문하여 약 50년간의 오랜 경력을 가진 범종주성장이다. 부산지방의 주성장으로는 일제강점기에 부산을 본거지로 범종사를 세워 활동한 주성장 김석곤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석곤의 주종기술은 20세기 초 활동한 김쾌재와 청종사를 운영한 김석정에게로 이어졌으며, 박한종은 이 두 사람으로부터 주종기술을 전수받았다. 1987년부터는 스승 김석정의 주종공방을 물려받아 홍종사(弘鍾社)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하고 있다.

    그 동안 1천관 미만의 동종 200여구와 2천관 이상의 대종 10여구를 주성하였다. 2천관 이상의 대표작으로는 청도 대국사 대범종(1991), 부산시민의 종(1996), 김천시민대종(1999), 김해 은하사 신어범종(2001), 수원 봉녕사 대범종(2002) 등이 있다.

    박한종이 동종을 주성하는 방식은, 종신 단면의 절반을 모형으로 제작하여 거대한 회전축을 이용하여 내형과 외형의 주형틀을 각기 따로 제작 조립하여 주조하는 우리나라 종의 전통기법인 사형주조공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더욱이 제조기법이 명확하지 않았던 상원사종의 정밀주조기법을 전통적인 사형주조방식으로 재현하여 우수한 소리와 문양의 아름다움으로 극찬 받는 한국종의 신비로움을 계승할 수 있게 되었다.
  • 2005.10.5
    지정일
    제주도는 26일 제주도문화재위원회 심사를 거쳐북제주군 애월읍의 '진사대소리' 를 지방문화재로 지정예고했다.

    예능인 진선자(여 60)씨에 의해 보전 전승되고 있는 '진사대 소리'는 제주의 여성들이 밭에 나가 김을 메며 불렀던 노동요로 다른 노동요에 비해 아름다운 선율과 우아한 특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2008.10.6
    지정일
    1938년 태어난 김년임은 어머니 문명식과 장형욱에게 사사받았다.

    전주비빔밥의 맛은 천혜의 지리적 조건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재료, 장맛, 뛰어난 요리솜씨, 움식에 드리는 정성이 잘 조화된 결과라 하겠으며, 특히 음식재료의 질적인 우수성과 음식재료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요리법의 활용이다.

    김년임은 원형을 체득 보전하고 있으며, 칼 다루는 법, 불 조절법, 맛내는 법, 은행 볶는 법 등 자신만의 조리기술을 잘 갖추고 있다.
  • 1999.10.8
    지정일
    죽염은 대나무 속에 천일염(소금)을 넣고 황토로 입구를 막은 뒤 소나무 장작불로 아홉 번을 구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소금 속에 들어있는 독소 및 불순물 등이 모두 없어지고 대나무와 황토의 유효성분이 조화되는 건강염이 된다.

    이러한 죽염제조기법은 개암사 주지 스님에게 전수되어 오고 있다. 현재 죽염제조 기능보유자인 효산 스님(허재근)도 개암사 주지를 지내면서, 죽염제조 기술을 전수받아 이를 더욱 연구·개발하여 효능이 뛰어난 양질의 완벽한 죽염을 제조하고 있다.

    죽염은 우리 민족 고유의 민간신약으로서 역사적 전통과 독창성에 있어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 1997.10.9
    지정일
    장도는 몸에 지니는 자그마한 칼을 말하는데 일상생활에 사용하기도 하고, 몸을 보호하기 위한 호신용으로 또는 장신구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장도를 만드는 기능과 만드는 사람을 ‘장도장’이라 한다. 특히 은을 재료로 하여 만든 것을 ‘은장도’라 부르는데, 이것은 부녀자의 정절의 표상으로 시집가는 딸에게 마련해 주는 혼수품이기도 했다.

    울산은 조선시대 주요 철산지이자, 470여 년 간 경상좌병영이 있어 무기 등 군수품 생산지였기 때문에 우수한 장인이 많았다. 울산의 은장도는 섬세한 세공술과 강한 담금질로 서울에까지 알려질 정도였다.

    은장도에는 용, 학, 사군자, 파초 등의 무늬를 새겨 넣는데, 을자(乙字)모양의 칼인 을자도(乙字刀)와, 음식물의 독을 검사하는 한 쌍의 젓가락이 붙어 있는 첨자도(籤子刀)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은장도 1개를 만드는 데는 15〜8시간이 걸린다. 은장도를 만드는 작업 중에서 금과 구리의 합금인 오동(烏銅)에 순은(純銀)으로 무늬를 넣는 일이 가장 어려운데, 임원중 (2004년 사망) 선생은 바로 이 분야에서 뛰어난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 1990.10.10
    지정일
    살풀이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해의 나쁜 운을 풀기 위해 벌였던 굿판에서 무당이 나뿐 기운을 풀기 위해 추는 즉흥적인 춤을 말하며, ‘도살풀이춤’ 또는 ‘허튼춤’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수건춤, 산조춤, 즉흥춤 이라는 이름의 수건춤이었으나 춤꾼 한성준이 1903년에 극장공연에서 살풀이란 말을 쓴 데서부터 살풀이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br /><br /> 춤꾼은 고운 쪽머리에 비녀를 꽂고 백색의 치마 저고리를 입으며, 멋스러움과 감정을 한껏 나타내기 위해 하얀 수건을 들고 살풀이 곡에 맞추어 춤을 춘다. 지금의 살풀이춤은 경기지방과 호남지방에서 계승된 춤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중기 이후 나라가 안정되고 서민문화가 활발히 전개되면서부터 광대들의 춤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굿이 금지되자, 무당들 중 일부가 집단을 만들어 춤을 다듬으면서 점차 예술적 형태를 갖추게 되어 오늘날 한국춤의 대표로 정착하였다.<br /><br /> 살풀이춤은 살풀이 가락에 맞춰 슬픔을 환희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인간의 감정을 아름다운 춤사위로 표현하는 춤으로서 예술적 가치가 큰 고전무용이다.
  • 1990.10.10
    지정일
    도당굿은 서울을 비롯한 한강 이북지방과 수원·인천 등지에서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목적으로 매년 또는 2년이나 그 이상의 해를 걸러 정월초나 봄·가을에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굿을 말한다. 경기도 도당굿은 경기도 일대의 한강 이남지역에 전해져 오는 마을굿으로, 지금은 부천의 장말에서만 완전한 형태의 경기도 도당굿을 볼 수 있다. 경기도 도당굿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마을 동산의 소나무 숲속에 300년이 넘은 도당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신 당가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를 통해 대대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br /><br />굿은 오전에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에 끝나며, 집안의 대를 이어 기능을 연마하고 음악과 무용에 뛰어난 세습무당이 진행한다. 세습무당인 화랭이들은 남자무당으로 줄을 타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재주놀이를 하면서 굿을 축제분위기로 이끈다. 예전에는 기생들의 소리와 춤이 곁들여졌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도당굿은 굿을 하기 전날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1106)' onmouseout='dn2()'>당주(堂主)</span>의 집에서 벌이는 ‘당주굿’으로 시작한다. 다음에는 당주집에서 굿당까지 올라가는 중간에 길거리에서 부정을 가시는 ‘거리부정’을 하고 굿당에 도착해 주변의 잡귀잡신에게 시루를 먹이는 ‘안반고수레’, 굿을 벌일 장소를 정화하는 ‘부정굿’, 신대를 꺾어 든 마을의 대잡이에게 신이 내리면 당가리 앞으로 가 도당신을 모시고 굿청으로 되돌아 오는 ‘도당모시기’, 마을의 장승과 공동우물, 원하는 집을 돌며 마을과 집안의 평안을 비는 ‘돌돌이’, 굿당에서 군응마나님께 대취타연주를 올리는 ‘장문잡기’, 도당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굿을 잘 받으셨는지를 시루가 쉽게 들어 올려지는지로 확인하는 ‘시루말’, 제석청배와 바라춤을 추는 ‘제석굿’, 군웅조상과 도당조상, 본향조상을 모셔서 집안의 평안과 자손번창을 축원하는 ‘본향굿’, 화랭이들이 한 사람씩 나와 춤과 묘기를 보이는 ‘터벌림’, 손님인 마마신을 위한 ‘손굿’, 굿꾼과 무녀의 쌍군웅춤인 ‘군웅굿’, 날이 밝아 도당신을 당가리로 다시 좌정시키고 돌아오는 ‘도당보내기’, 고깔과 장삼 차림의 굿꾼이 놀며 동네축원과 중수비를 풀어주는 ‘중굿’, 굿에 따라든 잡귀들을 풀어 먹여 보내는 ‘뒷전’으로 굿은 끝난다.<br /><br /> 경기도 도당굿은 다른 지방의 도당굿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남자무당인 화랭이들이 굿을 하며, 음악과 장단도 판소리기법을 따르고 있어 예술성이 뛰어나고 전통문화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2008.10.10
    지정일
    벼루란 먹을 가는 돌을 말하는데 동양의 독특한 문화인 서예에 필요한 도구로 주로 4가지가 있는데 이는 문방사우 또는 문방사보(지·필·묵·연)로 불려 지며, 그 중 벼루는 먹을 갈아 먹물을 만드는 도구이다.

    먹이 잘 갈리고 고유의 묵색이 잘 나타나야 하며, 바닥의 표면에는 숫돌과 같은 꺼끌꺼끌한 미세한 鋒網이 있으며 여기에 물을 붓고 먹을 마찰시킴으로써 먹물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기능을 떠나 벼루의 여백에 조각을 하기 때문에 문양을 통해서 그 시대의 정서를 살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벼루라면 검은 돌을 떠올리고 시중에서 흔히 대할 수 있는 남포석 벼루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단양 자석벼루는 원석의 색이 붉은색이기 때문에 자석벼루라 부르게 되었으며 원석 자체의 수분 흡수율이 극히 적어 한번 갈아 놓은 먹물은 오랜 시간을 두고 사용할 수 있고 먹물이 마르지 않고 먹의 색이 변하지 않으며 원석이 부드럽고 단단하여 먹이 곱게 갈리므로 찌꺼기가 생기지 않는다. 먹물이 윤택할 뿐만 아니라 원석의 강도가 높아 먹을 갈은 자리가 쉽게 닳지 않아 오랜 세월을 보존하고 사용할 수 있다.

    벼루로써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원석으로 용과 구름을 표현한 雲龍硯, 해와 달을 표현한 日月硯, 거북을 표현한 神龜硯, 소나무와 학은 松鶴硯, 소나무-대나무-매화를 표현한 三友硯, 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표현한 四君子硯 등 다양한 傳統文樣으로 조각해 하나의 藝術品으로 표현할 수 있다.
  • 2007.10.10
    지정일
    전라북도 무형문화제 제38호법사로 활동하던 부친 하판계씨의 영향으로 무가에 입문하여 20대에 강신을 받아 내림굿을 하고 28세에 군산출신 영양자 만신, 박복선 법사와 고동심 만신에게서 호남 넋풀이 굿을 전수받았다.

    호남 넋풀이 굿은 물에빠져죽은 사람의 넋을 물속에서 건져 저승으로 보내 영생하도록 하는 세습법사와 강신무적 특징을 동시에 가미한 형태의 무속의례로서 독특한 지역성과 예술성을 지니고 전승된 이 지방의 토속문화이다.
  • 2019.10.10
    지정일
    조선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전통과 풍속으로 정착하였고, 서울의 대표적인 윤달 풍속이었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윤달 풍속에 장안의 여인들이 줄지어 사찰에 찾아가 돈을 시주하는데 이 공덕으로 극락왕생한다고 믿는다." 하였다. 동국세시기의 내용은 서울지역 사찰에서 행해진 생전예수재를 직접 목격하고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유교문화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도 도성 주변의 사찰들은 불교의례의 명맥을 계승시켜왔다. 서울지역 사찰들은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토대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생전예수재의 명맥을 유지하며 우리 전통문화의 세시풍속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하였다.

    서울의 예수재는 의범에 맞도록 입재로부터 6재를 마치고 7재 때 본 예수재를 지냄으로써 전통적인 예수재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서울에서 행하던 대표적인 무형유산이라는 점에서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로 보전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서울의 <생전예수재>는 단체를 통해 전승되는 무형유산이라는 점에서 보유자 없는 단체 종목으로 지정하고자 한다.
  • 2017.10.12
    지정일
    고담의 쪽물은 색소용액상태인 액람 발효 쪽물이다. 고담의 쪽물 속에는 색깔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발효미생물이 살아있다. 구비쳐 흘러흘러 쪽물은 신비로운 색깔이 되어 불화를 그리면 예불의 대상이 되고, 혼례하는 양가의 예물이 되고, 성인식 하는 날 집안의 최고 어른이 하사하는 예물이 되며, 대를 이어 살아온 전통 있는 집안에는 부적 같은 신물이다.

    고담의 쪽물에는 색이 없어도 여러 종류의 생명체들이 살아 각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방부, 방충의 기능을 갖는다 이와 같은 기능을 이용해 전통 불교미술 에서는 바탕(베이스)에 쪽물을 드려 천년이상 보존하였다

    쪽물의 비법은 고려불화인 백의관음 등을 통해 유물로 전해지고 있으며, 고담에게 어렵게 전수되어 세계에서도 유일한 발명특허(제10-0420990호)가 되고 경상남도 숙련기술 최고장인을 낳았다

    고담쪽물은 천연염색이나 화학염색과는 달리 순수한 자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