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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1980.11.17
    지정일
    양주소놀이굿은 설과 입춘을 맞아 가족의 번창과 풍년을 기원하는 굿으로, 소굿·쇠굿·소놀음굿·마부타령굿이라고도 한다.

    양주소놀이굿의 유래는 양주지방에서 산신으로 여기는 감악사(紺岳祠)에서 나왔다는 설과 농경의례의 하나로 풍년을 비는데서 나왔다는 설, 소장수가 잘 되기를 바라는데서 나왔다는 설, 궁중의례에서 나왔다는 설, 굿의 여흥으로 이루어졌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유래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소와 말, 하늘을 숭배하는 소멕놀이에 기원을 두고 무속의 제석거리와 마마배송굿 등에서 자극을 받아 형성된 놀이로 보고 있으며, 양주지역에서 만이 아니라 서울과 경기·강원·충청·황해·평안남도에서도 행해져 왔다.

    소놀이굿은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석거리에 이어서 놀이를 시작하는데 이것은 소를 위하고 자손번창과 장수를 비는 농경의례적인 성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제석거리가 끝나면 장고 앞 목두(木斗)에 콩을 수북히 담고 북어 한 마리를 꽂아 소고삐를 말뚝으로 삼는다. 악사와 장고를 맡은 조무(助巫)가 마당을 향해 앉고, 굿거리장단이 울리면 흰고깔에 흰장삼을 차린 주무(主巫)가 오른손에 제석부채를 들고 마루 끝에 선다.

    송아지가 먼저 들어와 놀다가 대문으로 가서는 마부와 소를 인도해 들인다. 고무래를 짚으로 싸서 머리를 만들고 멍석을 반으로 접은 속에 5∼6명이 들어가 소로 가장한다. 송아지는 한 사람이 짚멍석을 뒤집어 쓰고 논다. 말을 부리는 원마부는 검은 전립에 남색 전복을 입고, 오른손에 삼신부채, 왼손에 고삐를 쥔다.

    굿의 무대가 마루에서 마당으로 옮겨지고 주인공도 무당에서 마부로 바뀐다. 굿은 무당과 마부와의 대화와 마부의 타령과 덕담, 마부의 춤과 동작, 소의 동작으로 이루어지는데 마부의 타령은 가사의 내용은 길지만 세련된 평민 가사체로 문학적인 가치가 높다.

    소놀이굿의 소리대목은 (누가 나를 찾나)로 시작해서 (마부 노정기) (보물타령) (마부 대령인사) (소의 머리치례) (절타령) (소뿔치레) (소귀 치레) (소모색 치레) (소 글 가르치기) (마부 복식 치레) (소의 굴레 치레) (잡곡 타령) (소 흥정 타령) (말뚝타령) (소장수 마누라 타령) (성주풀이) (축원과 덕담) (살풀이) 순서로 불려진다.

    양주소놀이굿은, 굿의 가사가 세련된 평민 가사체로 되어 있고, 다른 굿에 딸려 노는 굿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놀이이다.
  • 1980.11.17
    지정일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시 건입동의 본향당(本鄕堂)인 칠머리당에서 하는 굿이다.

    건입동은 제주도의 작은 어촌으로 주민들은 물고기와 조개를 잡거나 해녀작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마을 수호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都元帥監察地方官)과 요왕해신부인(龍王海神夫人) 두 부부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비는 굿을 했다.

    부부수호신과 함께 영등신을 맞이하여 소중히 위하는 굿을 했는데, 영등신은 외눈백이섬 또는 강남천자국에서 2월 1일에 제주도에 들어와서 어부와 해녀들에게 풍요를 주고 2월 15일에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내방신(來訪神)이다.

    당굿은 매년 음력 2월 1일과 2월 14일 하는데, 영등신이 들어오는 음력 2월 1일에는 영등환영제를, 영등신을 떠나보내기 전날인 2월 14일에는 영등송별제를 지낸다.

    주민들은 영등신이 환영제보다 성대한 송별제를 받고 이튿날인 15일에 구좌읍 우도(牛島)에서 다시 송별제를 받은 뒤 떠난다고 믿는다. 따라서 환영제 때는 배의 주인이나 신앙심이 깊은 이들만 모여서 간소하게 굿을 하고, 송별제는 어업관계자와 해녀, 그밖의 신앙민들이 많이 모인 가운데 하루종일 큰굿을 한다.

    굿날이 되면 건입동 주민 뿐 아니라 제주시내의 어부와 해녀들도 참가한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 제사에 쓰일 음식을 차려서 당으로 가져온다. 매인심방이 징과 북, 설쇠 등의 악기 장단에 맞추어 노래와 춤으로 굿을 진행한다.

    굿의 순서는 모든 신을 불러 굿에 참가한 집안의 행운을 비는 초감제, 본향당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과 요왕해신부인을 불러 마을의 평안을 비는 본향듦, 용왕신과 영등신이 오시는 길을 닦아 맞이하고 어부와 해녀의 안전을 비는 요왕맞이, 마을전체의 액을 막는 도액막음, 해녀가 바다에서 잡은 것들의 씨를 다시 바다에 뿌리는 씨드림, 영등신을 배에 태워 본국으로 보내는 배방송, 처음 불러들인 모든 신들을 돌려보내는 도진으로 끝이 난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영등신에 대한 제주도 특유의 해녀신앙과 민속신앙이 담겨져 있는 굿이며, 우리나라 유일의 해녀의 굿이라는 점에서 그 특이성과 학술적 가치가 있다.

    ※ 명칭변경 : 제주칠머리당굿 →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변경일 : 2006.6.19.)
  • 1980.11.17
    지정일
    진도씻김굿은 죽은 이의 영혼이 이승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풀고서 즐겁고 편안한 세계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진도지역의 굿으로, 원한을 씻어준다해서 씻김굿이라 한다.

    씻김굿은 불교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시간과 장소에 따라 굿의 내용이 다르다.

    초상이 났을 때 시체 옆에서 직접하는 곽머리씻김굿과 죽은지 1년 되는 날 밤에 하는 '소상씻김굿', 죽은지 2년 되는 날 밤에 하는 '대상씻김굿', 집안에 병자가 있거나 좋지 않은 일들이 자주 일어날 때 벌이는 '날받이씻김굿', 임시로 무덤을 만든 후 묘를 만들 때(초분이장 때) 하는 씻김굿, 집안의 경사에 대해 조상의 은혜를 기리며 하는 '영화씻김굿',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한을 풀어주는 '넋건지기굿', 총각이나 처녀로 죽은 사람들끼리 혼인을 시켜주는 '저승혼사굿' 등이 있다.

    씻김굿의 순서는 조왕의 하강일(下降日)이거나 도회(都會)일 때 하는 조왕반과 조상께 굿하는 것을 알리는 안땅, 길에서 죽어 떠도는 혼을 불러들이는 '혼맞이',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들이는 '초가망석', 불러들인 영혼을 즐겁게 해주는 '처올리기', 천연두신인 마마신을 불러 대접하는 경우와 죽은 사람의 이승 친구들의 영혼을 불러 즐겁게 해주는 '손님굿', 불교적인 '제석굿', 원한을 상징하는 고를 풀어가며 영혼을 달래주는 '고풀이', 시신으로서의 영돈을 마는 '영돈놀이', 맑은 물로 깨끗이 씻어 즐겁고 편안한 세계로 가도록 기원하는 '이슬털기', 영돈 위의 넋을 끄집어내어 손에 들고 십왕풀이를 하는 '왕풀이', 이승에서 맺힌 원한을 모두 풀어주는 '넋풀이', 억울한 원한의 넋두리를 풀어주는 '동갑풀이', 약을 구하지 못해 죽은 한을 풀어주는 '약풀이', 죽은 사람의 한이 풀어졌는가를 보는 '넋올리기', 가족이나 친척들이 손대를 잡으면 죽은 사람의 혼이 내려와 원한을 말하는 '손대잡이', 저승의 육갑을 풀어주는 '희설', 좋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깨끗이 닦아주는 '길닦음', 죽은 사람의 혼을 공손히 보내는 '종촌'으로 되어 있다.

    진도씻김굿의 음악은 육자배기목(시나위목)을 중심으로 피리와 대금, 해금, 장고, 징으로 구성된 삼현육각반주로 진행된다. 무당은 흰색 옷에 다홍색 띠를 걸치는 정도의 소박한 옷차림으로 불교적 성격이 짙은 승복과 비슷하며 죽은 사람의 한을 풀어주는 지전(紙錢)춤을 춘다. 노래는 홀로 부르는 통절(通節)형식과 선소리를 메기고 뒷소리로 받는 장절(章節)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선율의 부침새와 여러 가지 세련된 목구성을 구사해 매우 흥겹고 아름답다.

    진도씻김굿은 죽은 사람 뿐 아니라 산 사람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불교적 성격을 띠고 있는 굿으로 춤이나 음악에서 예술적 요소가 뛰어나고 자료가치가 또한 크다.
  • 1980.11.17
    지정일
    오광대는 남부지역의 탈춤을 가리키는 말로, 오광대란 이름은 오행설(五行說)에서 유래된 오(五)에서 온 것이라는 의견이 유력하다. 이 놀이는 정월 초하룻날 천룡제를 지낸 다음 지신밟기를 하다가 대보름날 밤에 행해진다.

    가산오광대의 유래는 100년 전 어느 봄에 가산의 바닷가에 궤짝이 표류해 와 주민들이 열어보니 탈과 놀이의 대사가 적혀 있는 문서가 들어 있었으며 탈은 궤에 보관하다가 놀이 때에만 썼다고 한다.

    가산오광대 놀이는 오방신장무·영노춤·문둥이춤·양반춤·중춤·할미와 영감춤의 6마당으로 구성되어 있고, 민중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으며 양반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처와 첩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은 오방신장군·영노·양반·작은 양반·말뚝이·문둥이·노장·상좌·서울애기·소무·할미·마당쇠·영감·옹생원·무당 등 총 3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가산오광대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오방신장무의 춤사위가 남아 있으며 할미가 아닌 영감이 죽는 유일한 오광대이다.

    또한 다른 오광대는 한 두명의 문둥이가 등장하지만 가산오광대에서는 다섯 명이 나와서 각자 춤을 추고 장타령, 투전놀이를 하는 것이 특이하다.
  • 2006.11.17
    지정일
    전라북도 남원과 전주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우수한 옻칠기가 생산되었다.

    지역의 풍부한 목제로 만든 목기에 옻칠을 하여 옻칠기를 제작하는 옻칠장의 전통을 이어 가기 위해 전라북도에서는 옻칠장을 도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하여 보호·육성하고 있다.

    옻칠장의 기능을 세분하여 2006년에는 안곤(1962~ )을 제13-3호 옻칠 분야 기능 보유자로 인정하였다.

    그는 은행나무, 노각나무 등으로 바릿대, 제기, 불기 등의 백골을 만들어 그 위에 생옻칠을 도장하는 목심 부문 칠기 제작 기법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 2017.11.17
    지정일
    망상지역에서는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에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날 고청제사를 드리고 서낭당에서 서낭굿을 치기 전까지는 일체의 악기를 치지 않는 금기가 이어져오고 있다.

    서낭신을 모시고 서낭쇠를 치고 나서 고청제농악으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한바탕 축제의 놀이를 펼친 후부터 각 마을에서는 자유로이 쇳소리를 울리며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지신을 밟아주며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데 이 때 각 가정에서는 술과 안주를 내고 쌀이나 돈을 내놓는데 이러한 금품은 모두 모아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사용한다.

    망상농악은 이렇듯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되는 정월대보름날 아침에 서낭당에 인사하고 서낭당 근처에 있는 우물에 가서 “뚫으세 뚫으세 물구멍을 뚫으세”하고 사설을 하는 우물굿을 하고 두암마을 향해가는 곳에 있는 다리위에서 “앗다 그다리 잘놨다 출렁출렁 건너가세”하며 다리굿을 한 후에 다시 서낭당 앞의 큰 공터로 돌아와서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신명내어 놀음놀이를 하는데 이 농악을 고청제 농악이라 칭하며 그 과장과 구성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첫째과장 : 서낭굿

    2) 둘째과장 : 지신밟기

    3) 셋째과장 : 놀음놀이

    4) 넷째과장 : 오방놀이

    5) 다섯째과장 : 열두발놀이와 동고리받기

    6) 여섯째과장 : 똘똘말이와 황덕굿놀이
  • 2017.11.17
    지정일
    김순덕은 1973년 이래 강릉지역의 전통자수문화의 전통을 유지하고 전통자수의 기본수법을 충실하게 전승함.

    푼사, 반푼사, 꼰사를 활용하여 전통수보를 제작하고 다양한 전통자수 원본자료를 복원하는 등 강릉의 전통 자수 기법을 전형대로 체득·실현할 수 있는 기량과 전승기반을 갖추고 있어 보유자로 인정함
  • 1999.11.19
    지정일
    배첩이란 글씨나 그림에 종이·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들어서 아름다움은 물론 실용성 및 보존성을 높여주는 전통적인 서화처리기법을 가리킨다. 일제 때 들어온 말로 오늘날에는 ‘표구’라고도 한다. 배첩장은 조선 초기에 도화서소속으로 궁중의 서화처리를 전담하던 사람을 말한다.

    중국 한나라 때가 기원으로 알려진 배첩은 중국 당나라 때에 한층 발전하여 정립단계에 이른다. 우리나라에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모르지만 고구려 고분벽화의 병풍그림으로 보아 삼국시대 때 전해져서 한국 배첩의 기초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배첩은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꾸준히 발전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배첩장이라는 전문가가 등장할 만큼 성황을 이루었다.

    배첩의 제작기법 내지 형태는 액자·병풍·족자·장정 및 고서화처리의 다섯 가지이다. 액자는 비단재단 - 그림 초배 재배 - 건조·액자틀 준비 - 조립의 작업과정을 거친다. 병풍의 한 폭 처리도 액자와 같다.

    족자의 작업과정은 재단 - 초배 - 겹배 - 건조 - 삼배 - 건조 - 축목·반달부착으로 이루어진다. 장정은 표지나 속지에 손상을 입은 고서의 처리를 말한다. 고서화처리는 손상된 고서화를 되살려 내는 작업이기에 높은 안목과 세밀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배첩장은 전통공예기술로 문화재적 차원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충청북도 청주시에 살고 있는 기능보유자 홍종진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2014.11.20
    지정일
    흥보가는 판소리 전승5가 중의 하나로 ‘박타령’이라고도 불려집니다.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아우 흥보는 제비 다리를 고쳐주어 복을 받고, 마음씨 고약한 형 놀보는 부자로서 더 부자가 되려고 동생 흥보를 흉내 내어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벌을 받는다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교훈을 담고 있고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 2015.11.20
    지정일
    고깔을 쓰고 소고를 놀리면서 추는 경기고깔소고춤은 경기도 농악에 삽입된 소고가락을 양식화한 민속춤으로 경쾌한 농악의 일부였다.

    그러나 농악이 가지는 거칠거나 흥에 겹다는 느낌보다는 동작이 부드러워 손에 든 소고마저도 마치 손의 일부인 양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발동작과 손동작이 정제되고 조용하여 남성의 춤이지만 한 폭의 춤사위를 보는 즐거움이 크다.

    다른 지역과 달리 재인들이 춰서 체계화돼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춤에만 있는 동작도 있다. 거울을 보는 동작인 ‘색경북’, 다리 동작인 ‘제기북’, 실을 감는 것 같은 동작인 ‘꾸리북’ 등이다. 춤을 출 때는 전립 위에 꽃을 얹고 췄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궁궐에서는 화려한 고깔을 쓰고 췄다.

    경기고깔소고춤의 계보는 화성 재인청의 춤꾼 김인호 선생으로 올라가는데, 한성순보에는 ‘줄도 잘 타고 판소리에 재담까지 능하며 특히 버꾸춤도 잘춘다’는 한 줄 기록이 남아 있다.

    뒤를 이은 발탈 예능 보유자 이동안은 김인호에게 30여 가지 전통춤과 장단을 전수받았고, 그 전통이 경기고깔소고춤 보유자 정인삼으로 이어졌다. 정인삼의 소고춤은 춤동작이 명확하고 구성이 정확한 특징이 있다.
  • 2015.11.20
    지정일
    ‘불화’는 불교의 종교적 이념을 표현한 그림이다. 불화의 제작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문가들은 원시 불교 사찰의 하나인 ‘기원정사’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는 기록을 토대로 불교 도입 초기부터 제작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불화는 불교의 교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불화를 제작하는 장인을 특별히 ‘금어’, ‘화승’, ‘화사’, ‘화원’으로 높여 부르기도 했다.

    불화 제작기능은 1972년 단청장이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된 이래, 줄곧 단청장 보유자에 의해 전승되었으나, 2006년부터 국가무형문화재로 분리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무형문화재 제57호 불화장 이연욱의 불화는 1977년에는 대구무형문화재 제14호 단청장인 고 조정우에게 배우면서 시작했다. 그 후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고 덕문 스님 문하에 입문했다.

    불화장 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술적 감각과 미술적 기예를 갖추어야 하지만,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대부분의 불화는 천장이나 벽 등에 그려지며, 크기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석가모니 부처가 영축산에서 『묘법연화경』을 설하는 장면을 경전에 의거해 그린 ‘영산회상도’, 석가모니의 생애를 여덟 가지 중요 장면으로 표현한 ‘석가팔상도’ 등 종류도 실로 다양하다는 점이다.

    아울러 불화 속에 그려야 하는 시왕초, 보살초, 사천왕, 금강역사, 신중초, 부처님초는 물론 용, 봉,학, 호랑이, 비천상, 사신도 등 불화에 들어가는 전통문양을 모두 익혀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보유자 이연욱은 불화장으로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국내에서 유일하게 황금탱화를 그린다. 15년의 연구를 통해 독창적으로 고안한 것으로, 검은 바탕에 금선으로 그리는 ‘먹탱화’, 붉은 바탕에 금선으로 그리는 ‘홍탱화’ 등 전통탱화가 아닌, 그림에 옻칠하고 순금 위에 채색을 하는 황금탱화를 시도 했다.

    특히 장신구나 문양 등 주요 부분을 볼록하게 처리해 금을 붙이는 ‘고분 살붙임’ 방식은 2005년 특허 받은 기법이다. 그는 자신만의 기법으로 전세계에 대한민국의 불화를 알리고 있으며, 미국 LA카운티박물관에는 그의 작품 ‘지장십왕도 모사도’ 등이 소장돼 있다.
  • 2015.11.20
    지정일
    잿머리 성황제는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 잿머리에서 전해 내려오고있는 마을의 공동 제사이다. 이 마을제의는 성황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성곡동 잿머리 성황제는 잿머리마을 주민들이 마을 수호신에게 안녕과 무병·풍년을 빌기 위하여 올리는 마을 제사이다. 고려 성종 때부터 내려오는 마을신앙으로 제당에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비妃 홍씨와 장모인 안씨를 모시고 있다.

    마을굿 형태로 전승되고 있으며, 성곡동 잿머리 성황제는 매년 10월 초순에 길일을 잡아 안말·도란말·벌말 등 인근의 10여 개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삼현육각을 대동하고 장군놀이·신장놀이·대감놀이·대신놀이·줄타기 등을 펼친다.

    고려 성종(982~997) 때 내부시랑 서희가 송나라 사신으로 가는 길에 폭풍우를 만났는데 꿈에 나타난 혼령(경순왕인 김부대왕의 비 홍씨와 친정어머니 안씨)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사당을 짓고 제를 지내준 후 무사히 임무를 수행했다는 전설이 있다.

    성곡동 잿머리 성황제는 원래 1년에 두 번, 봄 성황제와 가을의 신곡맞이 성황제를 지내 왔다. 봄 성황제는 오히려 가을의 신곡맞이 성황제보다 그 규모가 훨씬 컸으며, 그 기간 또한 몇 달씩 걸리는 방대한 규모였다고 한다.

    성황제의 형식으로 된 마을 농악대와 무녀가 함께 하는 공동제의라고 하는 점에서 잿머리 성황제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 2015.11.20
    지정일
    시흥 군자봉 성황제는 시흥시와 안산시의 경계에 위치한 군자봉 성황단에서 김부대왕을 주신으로 모시고 행하는 굿이다.

    음력 10월 3일에 본격적인 의례를 거행하며, 안산 잿머리 성황제와 성격이 유사하다.

    군자봉(198.4m)은 시흥시 군자동과 안산시 선부동의 경계에 위치한산이며,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현재 경기도 남부 서해안 지역에서 무속인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산으로 주위에는 여러 개의 굿당들이 들어서 있다.

    군자봉에는 군자산성터와 함께 성황단이 남아 있다. 성황단은 산성이나 고을 관아의 주위에 나타나는데, 고을이나 성 안의 안녕을 빌기 위해서 수령이 백성들과 더불어 위무했던 곳이다.

    군자봉 성황제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과 부인 안씨 그리고 장모 홍씨를 성황신으로 모신다고 전하는데, 학자들에 따라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시흥 군자봉 성황제는 마을 농악대와 무당일행이 마을굿에 동참한다는 점에서 공동제의적 성격을 지니며, 안산, 수원, 평택 등의 지역까지 걸립을 다니는 판도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이 지역의 성황제 위신을 말해주는 것이고, 널리까지 활약하는 점에서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 2017.11.21
    지정일
    •환도란 칼집이 있어 고리를 달고, 이고리에 끈을 드리우고 그것을 허리에 찬다는 데에서 유래한 명칭임. 요도,패도라고 부르기도 함.

    환도라는 명칭은 고려 말기부터 사용됨. 조선시대 칼자루가 짧은 외날의 칼을 대부분 `환도`라고 부름. 휴대하기 간편하고 비상시에 사용하기 용이하도록 길이가 짧고, 무게도 가벼움. 임진왜란 이후 필요에 의해환도의 길이를 상대적으로 길게 제작함. 환도의 제작은 국가에서 직접 관리함. 군기감에 소속된 환도장들이 만듦.

    • 환도장의 보유기능은 사철 쇠부림기능(제련기능), 대장공예기능(접쇠 단조기능), 도신강화기능(풀림기능,담금질기능,뜨임기능), 성형 및 연마기능(깍질기능, 날갈이 기능, 광택기능) 등 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홍석현은 그러한 모든 기능을 습득하고 있으며 우수한 기량을 갖추고 있음.

    • 홍석현은 사철(여수,홍성/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서 채취)을 제련하여 사철강괴를 만들어 전통의 방식으로 접철하고 단조하여 도신을 제작함. 전통의 방식으로 제작된 도신은 강도가 매우 견고하며 불순물이 거의 없어 녹이 잘 슬지 않음.

    • 패도장식은 도검을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닌 차고 다니는 도검방식으로 홍석현은 환도에서 볼 수 있는 패도장식의 재현으로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음.


    • 홍석현은 1968년 서울로 상경하여 1982년까지 목공예와 금속공예를 습득하였다. 이때의 공예기능습득은 다양한 기술이 필요한 환도장으로써 예술적 아름다움의 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 홍석현은 1983년 경찰청 도검허가 1호였던 도검장 故전용하(도검제작공방/대한검도운영.이순신 장군도를 수리,보수함)로 부터 도검제작, 칼날 연마공정, 전통도검에 대한 지식과 기능을 전수받음.

    • 1992년~1998년까지 7년간 故임명길(도검제작)로 부터 칼날연마기능, 숯돌연마기능, 접철, 담금질, 풀림, 뜨임기능 등 전통도검제작기법을 사사받음.

    • 1992년 故임명길을 공방에 모시고 7년간 전통도검제작기법의 중요한 기예를 사사받았다. 故정응조(도검제작),故유적선(금속공예)에게도 전통공예의 다양한 기능을 전수 받음.

    • 1989년 이후 현재까지 여러 장인에게 전수받은 기능들과 옛 문헌의 연구로 유물, 출토, 발굴 된 도검을 재현하고 있다.
  • 2017.11.21
    지정일
    전통 한지에 전통 안료를 천연 염색하여 전통의례 및 불교의례에 사용하는 의례용『종이꽃(지화)』를 제작하는 기․예능

    - 기능보유중인 지화는 목단, 모란 등을 비롯하여 총 17종이 있으며, 식물에서 채취되는 안료 13종을 서로 혼합하여 염색에 사용.

    염색된 종이를 접고, 자르고, 풀로 붙이고 끈으로 묶는 과정을 반복하여 제작

    - 재료로는 꽃임과 꽃모양을 만드는 한지와 천염색 안료, 꽃대 제작에 필요한 대나무, 싸리나무, 접착을 위한 풀이 필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