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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1991.11.23
    지정일
    가야금병창은 직접 가야금을 타면서 노래부르는 것을 가리킨다.

    단가나 판소리 중 한 대목을 따다가 가야금 반주를 얹어 부르며, 판소리에서는 석화제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에 가야금산조의 명인 김창조가 부르기 시작하였다는 설이 있다.

    장단에는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등이 쓰이고 있다. 가야금과 노래의 선율이 동일한 것이 원칙이나 노래를 가야금에 맞도록 변화시키기도 하고, 노래의 공간을 가야금 선율로 메우기도 하며, 가야금 간주를 가끔 넣어서 흥을 돋우기도 한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녹음방초, 호남가, 청석령지나갈제, 죽장망혜, 춘향가 중 사랑가,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수궁가 중 고고천변 등이 있다.

    가야금병창은 전통음악 중에서 순수한 음악미를 추구하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 2006.11.24
    지정일
    궁시장이란 활과 화살을 만드는 기능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데, 활을 만드는 사람을 궁장(弓匠), 화살을 만드는 사람을 시장(矢匠)이라 한다.

    화살은 목전(木箭), 철전(鐵箭), 편전(片箭), 동개살, 장군전(將軍箭), 세전(細箭) 등이 있었으나, 현재 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조선시대 무과시취와 습사(習射)에 사용되던 유엽전(柳葉箭)이다. 유엽전의 길이는 85cm 가량이며, 무게는 26.25g(7문)이 평균이나 사람과 활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다. 재료는 대나무와 오니를 만드는 데 쓰일 싸리나무 오니를 둘러싸는데 쓰일 화피, 꿩깃촉, 소심줄, 부레풀이 있어야 한다. 도구로는 톱, 줄칼, 송곳, 졸대, 인두, 저울, 자부, 자비, 통풀, 도가니, 귀알잔, 졸잡이, 화로, 나무집게 등을 갖추어야 한다. 위의 재료와 도구로 화살이 완성되면 마지막 손질로 졸대로 졸을 잡고 해어피(海魚皮)로 문질러 광을 내어야 한다. 그런데 화살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바른손잡이에게는 우궁(右弓)깃을, 왼손으로 활을 쏘는 사람을 위해서는 좌궁(左弓)깃을 달아야 하는 구분이 있다.

    양태현은 시장 기능보유자로 조명제(중요무형문화재 시장 보유자)와 조기선의 문하생으로 16세에 입문하여 현재까지 약 40년간 전통적인 죽시(竹矢)제작에 맥을 잇고 있다.
  • 2000.11.24
    지정일
    익산 기세배 놀이는 전북지방의 대표적인 민속놀이 가운데 하나이다. 기세배는 농경문화를 대표하는 놀이로서, 옛 마한과 백제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정월 대보름의 민속놀이이다.

    금마 12개 마을이 한자리에 모여 농사의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고, 마을끼리의 협동심과 연대감을 조성시켜 주는데 이 놀이의 목적이 있다.

    놀이의 구성 내용은 기제사· 영행 인솔· 당산굿· 기세배· 기놀이· 군무 등으로 되어 있다. 1995년부터는 익산기세배 보존회를 설립하여 이 놀이를 계승 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 2002.11.25
    지정일
    목재를 다루는 장인인 목수는 궁궐이나 사찰 또는 가옥을 짓는 대목장과 장롱, 문갑, 탁자, 소반 등 실내에서 사용되는 가구들과 그 외의 목공예품을 만드는 소목장으로 구분된다. 건축상 소목은 창호와 난간, 닫집 등 건물에 부착되는 작은 시설물의 제작을 말한다.

    현재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김순기는 전통 창호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소목장이다. 그는 가래나무 과인 추목 또는 춘향목을 으뜸으로 치나 구하기 힘들때는 적송이나 육송 등을 사용한다. 그가 제작한 창호는 문양별로 완자창卍字窓, 세살문, 빗살문, 꽃살문 등이다.

    창호 중 최고로 치는 꽃살문으로 완성된 꽃무늬 하나를 만들려면 여러 조각을 깎아 결합해야 한다. 모양대로 깎아 간단하게 붙이는 게 아니라 사개물림과 엇갈리게 물리는 방법으로 문살을 만들어 결합한다.

    그는 경복궁을 비롯하여 수원향교, 홍천향교 등의 향교와 사찰, 사당 등 고건축 복원에 참여하였으며 화성복원 사업에서 서장대와 화홍문 등의 창호을 제작하였다.
  • 2002.11.25
    지정일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에 대한 총칭으로 질그릇은 유약을 시유하지 않은 도기이고, 오지그릇은 잿물 유약을 시유한 도기로 좁은 의미에서의 옹기에 해당한다.

    고려시대까지는 유약을 바르지 않은 도기가 위주가 되었으나 조선시대 중기부터 옹기에 해당하는 약토를 바른 흑갈색의 도기가 제작되면서 조선후기에는 유약을 입힌 시유도기가 일반화된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 이전부터 ‘옹’으로 지칭되는 대형의 도기 항아리가 술·물·장·젓갈 등 액체나 음식을 담거나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 태안 마도해역에서 출토된 다량의 고려시대 도기 항아리들이 물을 저장하거나 젓갈 등을 운반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조선시대에는 도기를 만드는 장인은 옹장으로 지칭되었는데,『경국대전』 공전 공장조에 의하면 104명의 옹장이 중앙관청 14곳에 소속되어 왕실과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도기를 제작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옹기를 포함한 도기는 일상용 그릇으로 왕실에서부터 민간까지 폭넓은 계층에서 사용되었고, 기후나 쓰임과 관련하여 지역적 특색을 나타내며 발달하였다.

    2002년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김일만은 6대에 걸쳐 옹기를 만들어 온 집안 출신으로 조선후기부터 내려온 3기의 전통 가마를 이용하여 경기도의 전통적인 옹기의 제작에 전념해 왔다.

    2010년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 옹기장으로 승격이 되면서 현재는 그의 아들 김성호와 김용호가 전수자로 지정되어 경기도 옹기 제작의 전통을 잇고 있다.
  • 2012.11.26
    지정일
    송광무(승명 현담, 대한불교 법륜종)는 1954년 광주 광산구 운수동에서 출생하여 12세 때인 1966년 부친인 구봉 송복동(1911∼1998)으로부터 불화 공부를 시작하였다. 탱화장으로 지정되던 해에 광산구에서 북구 화암동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불사 전반의 기능을 사사 받아 전통의 명맥을 이어오면서 오대산, 백양사, 선운사 등 전국 100여 개 사찰에서 탱화, 단청, 조상(불상), 개금(불상에 금칠을 다시 함)을 하였고, 최근에는 제작기법이 전승되지 못한 천연석채의 복원을 위해 재료의 발굴과 재현 작품을 통해 전통 불화의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불화의 주요특징은 필선은 주로 18개 필선법 중 철선법을 구사하며, 전통불화에 사용되었던 천연채색인 쪽의 사용과 전통 천연석채의 사용이다. 또한 구봉과 송광무의 불화의 다른 점은 구봉화상의 탱화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구름’의 표현이다. 화맥은 박석초→송복동→송광무로 이어진다.

    송광무 불화장(탱화장) 조사보고(2012)
  • 1998.11.27
    지정일
    전라도 지방은 전역에 옻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일찍부터 좋은 옻칠이 많이 생상되었으며, 남원, 전주를 중심으로 목가구, 목공품이 발달함에 따라 칠작업 또한 성행하였다. 1954년에 태어난 이의식은 최규한 최환희 등으로부터 옻칠을 배웠다. 이의식의 옻칠 작품은 칠의 정제 수준을 알 수 있는 광택과 강도 그리고 뛰어난 붓 작업으로 유명하다. 전승공예대전, 전국공예품경진대회 등에서 다수 입상했으며, 1993년 일본 국제 디자인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 1969.11.29
    지정일
    낙죽장이란 불에 달군 인두를 대나무에 지져가면서 장식적인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는 기능 또는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낙죽이 물건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고대 중국에서부터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문 기술이었으나 조선 순조(재위 1800∼1834)때 박창규에 의해 일제강점기까지 전승되었다.

    낙죽은 온도를 맞추어 그려야 하고 인두가 식기 전에 한 무늬나 글씨를 마무리지어야 하기 때문에 작업 경험과 속력을 필요로 하는데, 주로 화살대·침통·칼자루·병풍·담뱃대·부채·대나무필통 등에 쓰인다.

    낙죽은 접는 부채의 맨 처음과 마지막에 쓰이는 두꺼운 대나무(합죽선)살에 가장 많이 쓰인다. 합죽선에는 나비무늬를 많이 사용하지만 간혹 박쥐무늬도 보인다.
  • 1996.11.30
    지정일
    농요는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하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들노래 또는 농사짓기 소리라고도 한다. 토속민요의 하나로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부르며 지방에 따라서 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결성농요는 금곡천 유역에 인류가 정착하여 농경문화가 발달하면서 크게 발달하였다. 내용은 용신제·모내기·건젱이·뚝매기·아시매기(논매기)·쉴참·만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내기소리인 ‘어럴럴럴상사리’와 논매기소리인 ‘얼카덩어리’또는 두레소리 등은 이 지방에서 자생한 소리이다.

    결성농요는 순수 우리 가락이며, 근래에 들어와 예전의 농요와 두레(공동작업을 하기위한 조직)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홍성에 살고 있는 예능보유자 최양섭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2012.11.30
    지정일
    1944년에 태어난 임순옥은 이모이자 스승인 서정순으로부터 바느질을 배웠다.

    임순옥은 조선왕조 궁중의상 복식 등 전통복식 제작에 종사해 왔고, 공방을 통해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대한민국 한복, 침선 문화상품 공모대전, 전라북도 기능경기대회, 대한민국 미대회 등의 다수 수상 경력이 있다.
  • 1985.12.1
    지정일
    평택은 소샛들이라는 넓은 들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농산물이 풍부하였고, 이는 평택농악을 이루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또한 평택 근처의 청룡사는 일찍부터 사당패들의 근거지가 되어 조선 말기에는 그들의 농악이 크게 발달하였다. 그래서 평택농악은 두레농악인 동시에 걸립패농악(중들이 꽹과리치면서 염불하고 동냥하는 일)의 성격을 갖는다.

    농악에 사용되는 악기로는 꽹과리, 징, 북, 버꾸, 호적, 나팔이 있다. 편성은 영기수, 농기수, 나팔수, 호적수, 상쇠, 부쇠, 종쇠, 징수 1, 징수 2, 설장구, 부장구, 상장구, 북, 상버꾸, 부버꾸, 종버꾸, 꼬리버꾸, 상무동, 종무동, 삼무동, 칠무동, 중애(사미), 양반으로 되어있다.

    농악수들은 옛날 군졸들이 입었던 의상을 입고 그 위에 색띠를 걸쳐 매며 머리에는 벙거지나 고깔을 쓴다. 악기에 있어서 징과 북이 타지역에 비하여 적으며 소고와 법고의 구별이 없다.

    가락의 가림새가 분명하며 노래굿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또한 길군악칠채는 경기농악에만 보이는 장단으로 평택농악의 길군악칠채는 다른 지역과 구분된다.

    평택농악은 두레농악의 소박한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공연성이 뛰어난 남사당패 예인들의 전문적인 연희를 받아들여 복합적으로 구성한 수준높은 농악이며, 무동놀이(어른의 목말을 타고 아이가 춤추는 놀이)가 특히 발달하였다.
  • 1985.12.1
    지정일
    이리농악은 익산(옛 이리)지방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호남우도농악에 속한다. 익산시 새실마을은 예로부터 마을농악이 왕성했고, 김제·정읍 등지에서 전문적인 농악을 배워온 사람들을 받아들여 오늘과 같은 높은 수준의 농악단을 배출할 수 있었다.

    이리농악은 용기, 농기, 쇄납, 나팔, 사물(쇠4, 징2, 북2, 장고4), 법고(불교의식에서 쓰는 작은 북), 잡색(양반, 대포수, 조리중, 창부, 각시, 무동)으로 편성된다.

    농악수들은 치배 또는 군총이라고도 하는데 흰 바지 저고리에 색동달린 반소매의 검은색 쇠옷이나 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르며 머리에는 상모와 고깔을 쓴다.

    쇠가락에는 일체, 이채, 삼채, 외마치질굿, 풍류굿, 오채질굿, 좌질굿, 양산도가락, 호호굿, 오방진가락 등이 있다.

    판굿의 절차는 인사굿, 오체질굿(오른쪽으로 돈다 하여 우질굿), 좌질굿, 풍류굿, 양산도, 긴매도지(미지기 : 쇠와 장구가 마주보고 전진후퇴), 삼방진굿, 방울진굿, 호호굿, 달라치기, 짧은매도지, 짝드름, 일광놀이, 구정놀이(개인놀이), 기(旗)쓸기 순서이다.

    상쇠의 부포놀이가 매우 다양하고 장구의 가락과 춤이 발달되어 있으며, 소고춤의 기법이나 진풀이가 많은 편이다. 비교적 느린 가락을 자주 쓰며, 가락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변형 연주되어 리듬이 다채롭다. 풍류굿, 덩덕궁이(삼채굿)에서는 악절마다 맺고 푸는 리듬기법을 쓰는 등 가락의 기교가 뛰어나다.<

    이리농악은 마을사회의 역사와 그 명맥을 함께 하는 민속예술로 농사의 고달픔을 잊고 서로의 화합과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1985.12.1
    지정일
    강릉농악은 강원도 태백산맥 동쪽에 전승되어 오는 대표적인 영동농악의 하나로 농경생활을 흉내내어 재현하는 농사풀이가 있기 때문에 농사풀이농악이라고도 한다. 유래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강릉농악은 농기, 쇄납(날라리), 꽹과리, 징, 북, 장구, 소고, 법고(불교의식 때 쓰는 작은북) 및 무동(사내아이)으로 편성된다. 연주자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홍·청·황의 삼색띠를 두르고 무동들은 여러 가지 색깔이 섞인 옷을 입는다.

    강릉농악에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3∼4일간 농악대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농악과 고사를 나는 지신밟기, 마을의 공동 기금을 걷기 위해 걸립패로 꾸며 농악을 하는 걸립농악, 모심기와 김매기 등을 할 때 하는 김매기농악, 김매기가 끝난 후 질 먹을 때 하는 질먹기, 건립굿이나 봄철 화전놀이 때 큰 마당에서 벌이는 마당굿이 있다.

    타지역에 없는 달맞이굿(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 횃불놀이, 놋다리밟기(젊은 여자들이 1명을 뽑아 자신들의 허리 위로 걸어가게 하는 놀이)가 있고, 두레농악이라 할 수 있는 김매기농악과 질먹기, 길놀이농악이 있는 것이 특색이다.

    강릉농악은 단체적인 놀이를 위주로 하여 농사의 고달픔을 잊고 서로의 화합과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1985.12.1
    지정일
    고성농요는 경상남도 고성지역에서 전승되어오고 있는 전통농요이다. 고성농요는 하지무렵부터 시작되는 농사소리가 주축을 이루며 이를 ‘등지’라고도 하는데, 등지는 모내기소리의 경상도 방언이다.

    고성농요는 모판에서 모를 찌면서 부르는 모찌기소리,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모심기소리, 보리타작하며 부르는 도리깨질소리, 김맬 때 부르는 상사소리 및 방아타령 등으로 이밖에 부녀자들이 삼을 삼으면서 부르는 삼삼기소리, 물레질하며 부르는 물레타령 등이 있다.

    고성농요의 노랫말에는 이 고장 농민들의 생활감정이 풍부하게 담겨 있으며 향토적인 정서가 물씬 풍긴다.

    고성농요는 투박하고 억센 경상도 특유의 음악성을 간직한 경상도 노래이지만, 지리적인 영향으로 음악적인 면에서는 전라도의 계면조 선율구조로 되어 있다.
  • 1985.12.1
    지정일
    농요란 농민들이 힘들고 바쁜 일손으로부터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들노래 또는 농사짓기소리라고도 한다.

    예천 통명농요는 경북 예천군 예천읍 통명리의 농민들이 매년 모심기를 할 때 힘겨운 노동으로 인한 고달픔을 해소하기 위하여 부르는 농요로 조선 중기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심기할 때 부르는 <아부레이수나>와 모를 다 심고 논에서 나오면서 부르는 <도움소소리>, 논을 맬 때 부르는 <애벌매기소리>와 <상사듸여>, 논을 다 매고 나오면서 부르는 <방애소리>·<에이용소리>, 논매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봉헤이>로 이루어져있다. 또한 부녀자들이 부르는 <삼삼기노래>·<베틀노래>·<도해따기> 등이 있다.

    모심기소리나 논매기소리가 모두 느리고, 길게 빼는 음을 많이 쓰고, 노래를 메기고 받을 때에 앞소리의 끝과 뒷소리의 앞을 부분적으로 겹치게 불러 이중창적인 효과를 내는 점은 예천 통명농요의 특징이다.

    예천 통명농요는 전원다운 맛과 소박한 멋이 있고 곡과 가사의 내용이 향토적인 농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