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유산 5 페이지 > Little Korea

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1971.2.24
    지정일
    악기장이란 전통음악에 쓰이는 악기를 만드는 기능 또는 그러한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고구려의 벽화 등을 통해 악기를 만드는 장인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조선시대에는 궁중에 악기조성청이라는 독립된 기관을 설치하여 국가에서 필요한 악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국악기는 약 60∼70종으로 가야금과 거문고가 가장 대표적이다. 현악기는 울림통을 오동나무로 하고 밑판을 밤나무와 소나무 등으로 제작 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장식품의 조각은 대추나무나 흑단, 향나무 등을 많이 이용한다. 현악기 이외에도 아쟁·대쟁·호금 등이 주류를 이루고 와공후·수공후·당비파·향비파·양금·금과술 등이 제작되고 있으나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 1995년 3월 16일 북 만드는 공예기술인 북메우기 종목을 악기장에 통합하였으며, 2012년 7월 23일 궁중의례 시 아악연주에 사용하는 편종·편경 제작 기능을 추가 지정하였다.
  • 1971.2.24
    지정일
    야류(들놀음)는 경상남도 내륙지방에서 행해지던 오광대가 바닷길을 따라 수영·동래·부산진 등에 전래된 것으로, 야류란 이름은 넓은 들판같은 곳에서 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오광대가 전문연예인에 의해 행해진 도시가면극이라면 야류는 비직업적인 연희자들, 즉 마을사람들에 의해 토착화된 놀이이다.

    수영야류는 정월 대보름에 산신령과 샘물, 그리고 최영 장군 묘에 제사를 지낸 후 달이 뜨기를 기다려 행해진다. 약 200년전 좌수영 수사의 직책을 맡았던 관리가 초계 밤마리(현재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의 대광대패들을 불러다가 놀게 하였는데 부하들이 이를 보고 배운데서 시작된 것이라 전해진다. 놀이는 양반춤·영노춤·할미와 영감춤·사자춤의 4과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놀이에 앞서 가면과 의상을 갖추고 음악을 울리면서 공연장소까지 행렬하는 길놀이를 한다. 놀이가 끝나면 가면을 한 곳에 모아 제사를 지내고 불태우면서 행운을 빈다. 등장인물은 수양반·둘째양반·셋째양반·넷째양반·종가도령·말뚝이·영노·할미·제대각시·사자·호랑이의 11명으로 다른 지방에 비해 적다. 양반에 대한 풍자와 처·첩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민중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다른 야류하고는 달리 문둥이춤이 없는 대신 사자춤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영야류는 약 200년의 역사를 가진 탈놀음으로 제례의식적인 성격과 함께 사회성 및 예술성을 지니고 있는 전통적인 마당놀이이다.
  • 1990.2.24
    지정일
    발이란 갈대 또는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실로 엮어서 만든 가리개로 여름날 창문이나 대청에 쳐서 햇볕을 가리거나 실내장식 등에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죽렴은 대나무를 삼끈이나 실로 엮어 만든 대발을 말하는 것이다.

    대발은 보통 길이가 6척인데 외창은 3척, 쌍창은 4척 5촌의 너비이다. 종류는 쪽발, 가마발, 겉세렴(죽피렴), 속세렴(내죽렴), 귀문렴, 보통조각렴, 장조각렴, 족자발, 김발, 붓발, 병풍발 등이 있다.

    제작과정은 채취한 2∼3년 생 대를 저장하여 순색이 되도록 그늘에서 말린 뒤 절단, 쪽살내기, 마디훑음질, 잔살내기, 조름질, 엮음질의 순서로 제작한다.

    대의 마디에 무늬를 넣어 엮기도 하는데 한 복판에 쌍희 자 무늬나 목숨 수 자 또는 복 자 무늬를 놓고, 주위에 만(卍)자를 놓으며 만자 바깥쪽에는 다시 남색선을 두르기도 한다.

    죽렴의 원래 제작지는 담양이었다고 한다. 현재 죽렴장 기능보유자 박성춘씨는 전통적인 담양죽렴을 만드는 공예기술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 1993.2.25
    지정일
    안동송화주는 전주 유씨 가문에서 대대로 빚어온 술로, 제사 때 조상에게 바치는 제사술로 사용되었고, 귀한 손님을 접대할 때도 쓰였다. 언제부터 빚기 시작했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정재 선생(1777∼1861) 때에 이미 제사술로 써왔다고 하니 그 역사가 200년 이상임을 알 수 있다.

    밑술을 바탕으로 덧술을 빚고 용수를 받아 걸러내는 송화주는 알콜도수가 15°∼ 18°내외의 맑은 술이다. 솔잎과 누른국화, 금은화(金銀花) 등의 첨가 재료가 풍기는 향이 매우 독특한 것으로 평가된다.
  • 1996.2.27
    지정일
    소목장이란 건물의 문, 창문이라든가 장롱, 궤, 경대, 책상, 문갑 등 목가구를 제작하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목수를 말하는 것으로 건축을 주로 하는 대목장에 대칭되는 말이다.

    기록상으로 보면 목수는 신라시대부터 있었고, 소목장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부터 불리웠다. 조선 전기까지는 목가구가 주로 왕실과 상류계층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 널리 보급되어 자급자족에 따른 지역적 특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소목장 기능보유자 조찬영씨는 안건사 가구공장에 발을 들여놓은 후 크고 작은 30여 건의 공사를 맡으면서 10여 년에 걸쳐 솜씨를 다듬었다. 전통적인 도구를 이용하고 적절한 재료를 선발하여 전통기법을 계승하는데 노력한 흔적이 뚜렷하다.
  • 1996.2.27
    지정일
    금산 인삼백주는 금산 김녕김씨 집안에 전해오는 전통적인 술 제조법으로 술을 만드는 방법은 김씨 문중에 내려오는 『잡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잘게 부순 통밀과 인삼을 섞어 3개월간 발효시켜 누룩을 만든다. 쌀로 고두밥을 짓고 준비해 두었던 누룩과 인삼을 섞어 밑술을 만든다. 여기에 다시 약쑥·솔잎·인삼·고두밥을 섞어 40~60일간 숙성시킨다. 술이 다 익으면 거르고 고리를 써서 증류한다. 알콜 농도는 43% 정도이며, 인삼향기가 나며 빛깔이 부드럽다. 기능보유자인 김창수씨는 김문기의 18대손으로 조모와 모친으로부터 그 기술을 전수받아 계승해오고 있다.
  • 2007.2.28
    지정일
    애월읍의 상귀리와 하귀리 지역에서는 겉보리(보리의 일종) 농사를 지을 때 주로 「모쉬 모는 소리」, 「돗거름 밟는 소리」, 「모쉬 짐 싣고 가는 소리」, 「밭 가는 소리」 등의 민요를 부른다. 이들 민요를 묶어서 「귀리겉보리 농사일 소리」라고 부르며, 연희로서 즐기기도 한다.

    민요놀이극으로 꾸민 「귀리겉보리 농사일 소리」는 제45회 전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2007년 2월 28일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 2018.2.28
    지정일
    동장각은 국새, 옥새 등 도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금속에 인문을 새기는 기술을 말한다. 동장각장의 전승 계보는 황소산, 석불 정기호, 목불 정민조로 이어진다.

    목불 정민조는 1944년생으로, 호(號)를 목불(木佛)목인(木人), 고죽산인(古竹山人), 올좌실(兀坐室), 태고암(太古庵) 등을 사용하고 있으나 도필계(刀筆界)에서는 통칭 목불로 많이 알려져 있다.

    정민조는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분위기로 일찍이 전각과 서예를 자연스레 받아들여 한학과 서예를 10대 때부터 익혔다. 중학 시절부터 서예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부친의 말씀에 따라 구양순체과 안진경체를 병행하였다고 한다.

    그는 50여년 각고의 노력으로 독특한 재료와 혁신적인 표현 방식을 얻었고, 아버지의 세계와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 이리하여 서예적 기교, 회화적 감각, 섬세한 새김질이 어우러진 이른바 목불만의 동장각의 세계를 이루게 되었다.

    1968년 27살에 광복동 「희」다방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1985년 4월에는 부산호텔 전시관에서 부친 석불과 함께 제2회 개인전 '석불(石佛)목불(木佛) 부자전(父子展)'[부산호텔 전시관, 후원 부산일보사]을 개최하였다. 제3회 개인전은 1996년 경기도 용인의 한국미술관(韓國美術館)에서 초대 전시되었으며, 이후 2002년 11월 서울 갤러리 삼경에서 제4회 개인전 [2002년 11월 7일∼13일 '목불정민조전']을 개최하였다. 2007년 3월에는 제5회 개인전 '고목에 꽃이 피니 파도가 일어서다'를 부산의 갤러리 몽마르트 초대전으로 개최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장각장 [銅章刻匠]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2008.2.29
    지정일
    방춘웅은 증조부 방연하의 뒤를 이어 옹기점을 하시던 부친 방순복의 뒤를 따라 옹기작업을 주 생업으로 해왔다.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옹기작업(1954~)은 1901년 6월 10일생 이영준(1973년 6월 12일작고)옹의 가르침으로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여 옹기수품대장이 되었다. 작업내용은 가마짓기, 충청도정통옹기만들기(큰독, 작은독, 각종 오짓그릇 및 질그릇, 푸레독 ), 불떼기등 이다.

    현재는 정통충청도옹기작업과 더블어 잊혀져가는 전통옹기를 옹기체험장을 통하여 자라나고 있는 학생들이나 옹기에 관심이 있는 많은 이들에게 우리의 전통옹기문화를 이해시키고, 가르치며 홍보하여 널리 사용케함으로써 옹기의 기능적 및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문화의 성숙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
  • 2008.2.29
    지정일
    옹기장 이지수씨는 카톨릭 신자였던 조부께서 천주교 박해를 피해 옹기 마을에 정착후 4대째 옹기제작을 계승하고 있는데, 도고면 금산리 옹기마을은 50여 전까지만 해도 장항선 일대의 최고 옹기 제작 마을로 옹기공이 300명이 되었으나 현재는 이지수씨만이 옹기를 제작하고 있는 실정임.
  • 2008.2.29
    지정일
    고담 소설 강독사로 2008년 도 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우리 전통 소설을 읽어주는 강독사로 활동하고 있음
  • 2008.2.29
    지정일
    충청남도 예산 법륜사에서 출가하여 한국전통불교 의례의식인 영산대재를 오랜기간 전승발전시키고 있다.

    국내는 물론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폴란드, 중국 등 해외에서 초청받아 공연하는 등 충청남도 만이 독특하게 간직한 소리인 범패 및 무용과 더불어 전통적으로 전승되어지는 불교의식을 널리 전승하고 있는 스님이다.

    이처럼 충청도 예산을 중심으로 지역적인 소리와 무용이 잘 전승되고 있다는 것은 방현(보명)스님의 30년 이상 예산의 문화를 이어가는데 지킴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 2018.3.2
    지정일
    전태준 보유자

    - 단체종목 전라삼현육각의 대금 보유자

    - 1956년 정형인 전라삼현육각 사사

    - 1984년 전라삼현육각 재현공연

    - 1985년 전태준류 대금산조 발표회

    - 전라북도 도립국악원 교수 활동
  • 2018.3.2
    지정일
    배첩이란 글씨나 그림에 종이, 비단 등을 붙여 족자나 액자, 병풍 등을 만들어서 아름다움은 물론 실용성 및 보존성을 높여주는 전통적인 서화처리법을 가리킨다. 일제시대에 들어온 말로 오늘날에는 '표구'라고도 하며, 현재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장황'이라고 한다. 배첩장은 조선 전기에 회화를 담당하던 국가기관인 도화서 소속으로 궁중의 서화처리를 전담하던 사람을 말한다.

    중국 한(漢) 시대에 기원한 것으로 알려진 배첩은 당(唐)대에 한층 발전하여 정립단계에 이르며, 우리나라에 어떻게 유입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고구려 고분 벽화의 병풍 그림으로 보아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변경환

    - 1964년 서재영 배첩 사사

    - 1979~1998 : 원광대학교 출판부 『한국금석문대계』 자료 배첩 및 족자 제작

    - 2005년 대한명인 지정

    - 2010년 전북도립미술관 소장품 병풍 제작

    - (사)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회원

    - 장황문화재연구원 운영
  • 2018.3.2
    지정일
    - 전주 삼천동 계룡리 비아 · 정동 · 용산 · 함대 4개 마을에서 내려오는 전통 대동놀이로, 민속놀이 축제를 통해 각 마을 간에 화합과 대동의 정신을 기리고, 지역공동체의 상생-유대의 전통을 계승

    - 기접놀이는 용이 그려진 용기를 통해 기세배와 기싸움을 진행하며, 풍물패 등이 참여

    - 1999년 전라북도 시군 농악경연대회 장려상

    - 2005년 제46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장관상

    - 2007년 전라북도 민속예술경연대회 최우수상

    - 2016년 제57회 한국민속예술축제 대통령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