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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2010.3.12
    지정일
    지성자는 1945년에 태어나 모친인 성금련에게 가양금산조를 전수받았다. 8세때 발표회를 시작하여 다수공연과 연주회를 통해 입상하였다. 성금련류 가야금산조는 전통을 중시하는 고집스러움과 투철한 예술감각으로 국내 최초 15현 가야금 개량 및 연주곡들을 작곡하여 가야금산조의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 2006.3.13
    지정일
    주물이란 금속을 용해한 뒤 주형에 주입하여 성형한 것을 말한다. 경기도 지정 주물장은 전통방식으로 쇠를 녹이고 형틀을 짜서 가마솥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장인이다. 주물장 김종훈이 가업으로 운영하고 있는 ‘안성주물’은 1910년 중조부 김대선이 가마솥을 때워주는 일을 하면서 시작되었고, 1924년 조부 김순성이 안성시 봉산동 물문거리에 공장을 설립하면서 본격화되었다. 1953년 조부가 병환이 들어 공장 운영이 불가능하게 되자, 현재 주물장 보유자인 김종훈이 가업을 이어받으면서 명맥이 유지되었고, 지금은 그의 아들이자 전수자인 김성태가 운영을 맡으면서 4대째 이어지고 있다.

    가마솥을 만드는 과정은 크게 알틀과 겉틀을 만드는 작업과 쇳물붓는 작업으로 구분된다. 알틀은 다른 말로 ‘중자中子’라고도 하는데 주물 중공부中空部를 만들기 위해 주형主型과는 별도로 제작된다.

    가마솥의 속모양을 담당하는 알틀은 가장 고운 주물사부터 넣는다. 그 후 형틀과 분리하면 동그란 모양의 알틀이 완성된다. 만들어진 알틀은 한 쪽으로 옮겨 말려주다가 거친 표면사이에 공기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표면을 곱게 다듬어 주고, 그 위에 흑연가루와 백연가루를 1시간가량 계속해서 발라 알틀을 다듬는다.

    가마솥의 외형을 담당하는 겉틀은 흙물을 바르고 전통도구인 ‘도레’를 이용하여 모양을 만든다. 완성된 형틀은 수분을 없애기 위해 불로 달구는 과정을 거친다. 형틀에 조금이라도 수분이 남아 있으면, 쇳물과 닿아 폭발할 수 있고, 달구는 과정에서 형틀에 묻는 그을음이 실금들을 매워주는 효과가 있으므로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쇳물로 쓰이는 쇠는 탄소함유량이 1.7% 이상이 되는 선철을 사용하고, 쇠를 녹이는 연료로는 고체연료인 코크스를 사용한다. 연료와 쇠를 넣는 작업은 전통용해로에서 이루어지는데 1층에는 쇳물을 받는 구멍, 2층에는 재료를 넣는 화구가 있다. 코크스를 25kg를 넣고 선철80kg, 나머지 철20kg(4:1비율)을 장입하면 1층에 쇳물이 고이게 된다. 제철 작업시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석회석을 함께 넣어 불순물을 분리해준다.

    완성된 겉틀에 알틀을 끼우고 뚜껑을 덮은 뒤 쇳물을 주입할 준비를 한다. 용광로의 쇳물을 받아 거푸집에 주입하면 알틀과 속틀의 간격 사이로 쇳물이 들어가서 솥이 된다. 쇳물을 부을 때는 쇳물줄기가 주입구를 꽉채우며 들어가야 밀도가 높아지고 두께가 일정해진다. 쇳물을 붓고 3분 뒤 쇠의 온도가 800℃ 이하로 떨어지면 거푸집을 분리한 뒤 주물가마솥에 붙은 쇳물과 주물사를 떼어낸다. 참기름으로 길들이기를 하여 마무리를 하면 표면이 매워지면서 반질반질해진다. 가마솥 뚜껑을 제작하는 방식도 가마솥을 만드는 방식과 다를 바가 없지만 가마솥의 크기와 상관없이 가마솥 뚜껑은 가마솥 무게의 4분의 1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마솥 단면의 두께를 살펴보면 바닥면의 두께가 약9mm인 것에 비해 옆면의 두께는 약 4~5mm로 더 얇다. 이것은 가마솥의 크기와 관계없이 바닥과 옆면의 두께차이는 2분의1로 제작된다. 불이 가장 먼저 닿는 부분은 두껍고, 늦게 닿는 부분은 얇게 만들어 열이 전달될 때 내부에 고르게 전달되게 하기 위함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전통주물기술을 이용하여 가마솥뿐만 아니라 프라이팬이나 타코야끼팬 등 현대적인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 2003.3.14
    지정일
    진천 용몽리농요는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일대에서 농사를 하면서 전래되어 온 농요이다.

    진천 용몽리농요는 모찌는 소리, 모심는 소리, 논매는 소리, 논 뜯는 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가창방법은 선소리꾼 3명이 각 단계마다 돌아가며 하기도 하는데 한사람이 메기면 전체가 후렴구를 받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가락은 금강 유역의 한 줄기인 미호천 유역의 음성, 청주 특히 넓은 들을 형성하고 있는 미호천 유역 들노래의 특성을 잘 갖고 있다. 사설은 주로 은근하게 이어져 일의 과정과 동작이 적합하게 짜여져 있어 농사일에 지친 농부들의 피로를 잊게 하고 흥을 돋운다.

    진천 용몽리농요는 중원마수리농요와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타 지역의 농요와는 달리 수확 시기에 행해지던 수확놀이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 2013.3.15
    지정일
    판소리는 조선중기 이래로 지속된 대표적인 민족 예술의 하나로, 민족 고유의 음악과 문학을 담고 있으며, 특히 동초제(東超制) 춘향가는 가사와 문학성을 중시해 사설이 정확할 뿐만 아니라 너름새(동작)가 정교하고 부침새(장단)가 다양하여 무형문화재로써 지정 가치가 있다.

    아울러 판소리 춘향가와 관련된 예능 실현과 전승자 양성 등 보존․전승을 위하여 동 예능을 가지고 있는 고향임을 예능보유자로 인정하였다.
  • 1971.3.16
    지정일
    경산자인단오제는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에서 전승되고 있는 단오행사이다. 마을의 전설에 의하면, 신라(혹은 고려) 때 왜적이 침범하여 마을사람들을 괴롭히자, 한장군이 꾀를 내어 여자로 변장하고 누이동생과 함께 화려한 꽃관을 쓰고 춤을 추어 왜병들을 무찔렀다고 한다. 이후 한장군이 죽은 다음 자인마을 주민들이 한장군의 사당을 짓고 해마다 단오날이면 제사를 지내고 성대한 놀이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경산자인단오제는 제사와 가장행렬 여원무로 이어진다. 옛날에는 전쟁터까지 가서 여원무를 추고 사당에 올라가 제사를 지냈으나, 지금은 시장의 넓은 광장에 모여 한장군 묘를 향해 행렬을 하는 데서 시작된다. 가장행렬의 순서는 동서남북과 중앙을 뜻하는 오방기가 맨 앞에 서고 농기·여원화관·무부들·희광이·여장동남·군노·사령·까치사령·포군·영장·기생·중군·익공·통인·일산·도원수·수배 등이 열을 짓는다. 가장행렬은 한장군 묘소를 한 바퀴 돌아 광장으로 내려가고, 제사를 주관하는 제관들은 제사를 지낸다.

    경산자인단오제는 다른 민속놀이와 달리 이색적인 가장행렬로 이루어졌으며, 화관의 높이가 3m나 되고 춤사위도 매우 독특해서 예술적인 가치가 높다. 또한 오랜 역사를 지니면서 주민들의 확고한 신앙이 놀이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명칭변경(한장군놀이 → 경산자인단오제/ 변경일 : 2007.3.12.)
  • 1971.3.16
    지정일
    산조란 장구반주에 맞추어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독주형태의 음악으로, 4∼6개의 악장을 구분하여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 순서로 연주한다. 대금산조는 대금으로 연주하는 산조를 일컫는다.

    산조연주에 쓰이는 대금은 시나위나 남도무악 등 다양한 가락을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음의 변화가 없어 합주에 사용되고 있는 정악대금과는 크기, 잡는 방법, 음높이가 다르다. 대금산조는 20세기 초 박종기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며, 음악적 특징으로는 가락에 리듬과 장단을 더하기 위한 장식법(바로붙임, 엇붙임, 완자걸이, 잉어걸이), 농음(꺾고, 평으로 내고, 흘러내리고, 밀어 올리고, 질러내고 하는 표현법), 틀(형식), 즉흥성을 들 수 있다.<br /><br /> 대금산조는 오랜 세월동안 독특함을 간직한 채 전승되어 왔으며, 더욱 듣기 좋게 편곡되어 기교어린 연주 속에 긴장과 흥겨움을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 1992.3.16
    지정일
    농악은 농부들이 두레(마을의 공동작업을 하기 위한 조직)를 짜서 일할 때 치는 음악으로 꽹과리·징·장구·북과 같은 타악기를 치며 벌이는 음악을 두루 가리킨다.

    호남우도농악은 전라남도의 서부평야지대를 중심으로 발달한 농악이며, 그 일종인 광산농악은 예로부터 전승되어 온 마륵동 판굿농악을 중심으로 칠석동의 고싸움놀이농악과 소촌동의 당산농악, 산월동의 풍장농악 등 광산지역에서 연주되는 다양한 농악을 집대성한 것이다.

    악단의 편성은 꽹과리·장구·작은북으로 구성된 앞치배와 대포수·양반·할미·조리중·각시·참봉·남녀무동으로 구성된 뒤치배로 이루어지며, 여기에 나팔수와 쇄납이 더하여진다. 가락의 변화와 기교가 다양하며 뒷치배의 구성이 조직적이고 다채롭게 꾸며진 것이 특징이다.

    또한 설날 놀이로 개인 특기를 자랑하는 판굿은 구성지면서도 슬픈 가락으로 되어있으며 광산농악에서만 유일하게 전승되고 있다. 현재 광산농악은 정득채씨가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있다.
  • 2015.3.16
    지정일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에 전승되는 두레농악이다. 과거에 농사일을 할 때 두레를 짜서 농사일의 신명을 돋우던 두레패 농악을 계승한 것이다.농사일 시작 전 의식 및 두레기 받기를 기원하는 당산제, 모찌기, 모심기, 김매기 등이 농사 재현, 농사일이 끝나고 호미를 씻어 걸어두는 호미걸이, 일년 농사를 모두 끝내고 당산에 가서 제사하는 당산제의 네 마당으로 구성된다.
  • 2018.3.16
    지정일
    호산춘은 음식 관련 신림경제, 임원경제십육지 등 16개 고문헌에 소개되어 있는 술로서, 19세기 학자 이규경이 쓴 백과사전 형식의 책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조선의 4대 명주로 호산춘을 극찬한 바있다.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이연호 선생은 가람 이병기의 동생이며 독립유공자 이병석의 장녀인 이경희의 4남으로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아 호산춘의 중요성을 깨달아 보존하면서 후배 양성을 위해 전수활동을 하고 있다.
  • 1997.3.17
    지정일
    경상북도 청송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질이 좋은 오색점토가 많이 생산되었다. 이처럼 좋은 재료를 이용하여 예로부터 청송 지역의 여러 옹기점에서는 질 좋은 옹기를 다량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 진보면 부곡리, 안덕면 노재 등에는 많은 옹기장들이 옹기를 생산하였고, 이들이 제작한 옹기는 인근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유통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생활 환경의 변화로 플라스틱, 유리, 스테인리스 용기의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옹기에 대한 수요가 점차 감소하였다. 또한, 전기가마와 같은 설비를 갖춘 현대화된 옹기 공장에서 옹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전통적인 옹기점들은 경쟁에서 점차 밀려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청송 지역의 전통적 방식의 옹기점들은 거의 사라지고, 진보면 진안리에 이무남 일가가 운영하는 옹기공방이 유일하게 청송 옹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1997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된 청송 옹기장의 기능 보유자인 이무남은 증조부 때부터 아들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5대째 가업을 이어 전통적 방식으로 옹기를 제작하고 있다
  • 1997.3.17
    지정일
    청송 추현상두소리는 만가의 일종으로 만가는 상여를 메고 갈 때에 하는 노래이다. 죽은 자의 명복을 빌고, 살아있는 사람이 오랫동안 살고 싶은 소망을 담은 구전민요로 상례의식에서 부르는 상례의식요이다.

    만가를 기능별로 분류하면 축원하는 축원만가, 상여가 나갈 때 하는 출상만가, 무덤을 만들 때 하는 성분만가로 나눌 수 있다. 청송 상두소리의 경우는 축원만가가 없는 대신 희귀한 대도둠소리가 있고, 출상만가인 상여소리가 있으며, 성문만가인 덜구소리가 있다.

    청송 추현상두소리는 민족의 정서와 문화를 알 수 있는 민요이기에 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다.

    현 예능 보유자 신상경(申相京)은 격년제로 개최하는 청송문화재에서 상여놀이 앞소리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 1989.3.17
    지정일
    칠장은 칠기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하며, 칠기란 목기에 옻나무에서 채취한 나무액을 칠한 용기를 말한다.

    칠기를 만드는 것은 옻칠을 하는 것인데, 옻칠의 종류에는 생칠, 정제생칠, 정제칠이 있다. 생칠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옻나무에서 채취한 그대로의 상태를 사용한다. 정제생칠은 생칠에 들어 있는 이물질을 제거한 칠로 약재나 용기에 바르는데 사용한다. 정제칠은 공예, 공산품에 바르기 위하여 각종 색상으로 만든 칠을 말한다.

    옻칠의 성분에는 고무질이 있어 방수에 효과가 있으며, 썩지 않는 효과도 있어 예전에는 장례용 관에 거의 옻칠을 했다. 옻칠은 오래될수록 단단해지고 습기, 벌레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과거에 팔만대장경이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옻칠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칠장은 여러 가지 효과와 은은한 멋을 느낄수 있는 전통공예기술로서 신중현씨가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호 칠장은 생옻칠 외에도 옻칠, 황칠, 채화칠, 남태칠 등 4개 종목이 추가로 지정되어 있다. 보유자는 손대현(옻칠), 홍동화(황칠), 김환경(채화칠), 정병호(정병호)이다.

    ※위 문화재에 대한 상세문의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02-2133-2616)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 2014.3.18
    지정일
    수륙재는 조선초기부터 모든 수륙의 고혼 천도를 위하여 행해졌던 불교의례로 『조선왕조실록』에 설행기록이 나타나는 등 역사성과 예술성이 높으며, 개인 천도의 성격을 띤 영산재에 비해 대중적 성격이 두드러지고 낮재 · 밤재 합설이라는 의례상 특수성을 지니고있다.

    아랫녘 수륙재는 경남 일대에서 전승되던 범패의 맥을 이어 의례와 음악적 측면에서 경남 지방의 지역성을 내포하고 있는 불교의례로 가치가 크다.
  • 1989.3.18
    지정일
    농악은 농부들이 두레를 짜서 일할 때 치는 음악으로, 꽹과리·징·장구·북과 같은 타악기를 치며 벌이는 음악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다. 굿·매구·풍장·금고·취군 등으로도 불린다.

    웃다리농악은 충청·경기지역의 농악을 가리킨다. 농악의 과정은 인사굿·돌림벅구·당산벌림·칠채오방감기와 풀기·무동쾌자놀이·소고절굿대놀이·십자걸이·사통백이·원좌우치기·네줄좌우치기·쩍찌기·풍년굿·고사리꺾기·도둑굿·소고판굿놀이·무동꽃받기·개인놀이·뒷풀이·퇴장굿의 순서로 진행된다.

    웃다리농악은 다른 충청·경기농악들과 구성에 있어서 서로 유사성을 갖는데 이것은 각 농악단의 상쇠들이 1950년에 만들어진 남사당패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칠채가락과 무동타기는 다른 지역과 구분된다.
  • 2004.3.18
    지정일
    마도 갈방아소리는 전어잡이 그물에 갈물을 드리는 작업 시에 부르는 노동요로서 전어잡이 그물 당기는 소리를 합하여 공연하고 있다. 전승이 어려운 어업 노동요가 온전히 계승되어서 귀중한 문화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촌의 생활양상을 재현하여 협동화합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전통문화의 현재적인 전승이라는 의의를 지니고 있어서 더욱 가치가 있다.

    마도 갈방아소리는 이 섬사람들의 주된 생계수단인 전어잡이와 함께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온 특색 있는 일 소리이다. 그 발생연대는 알 수 없으나 소리의 가락이나 노랫말에 자신들의 삶의 애환이 잘 드러나 있으며 전승상태가 양호하여 전통문화서의 가치가 있다.

    전어잡이 자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전어 포획의 방법이 현대화되면서 마을 공동작업의 과정이 필요치 않게 됨에 따라 이 일 소리는 문화유산으로서 보호하지 않으면 결국 소멸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보존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