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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1996.10.14
    지정일
    농요는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하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들노래 또는 농사짓기 소리라고도 한다. 토속민요의 하나로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부르며, 지방에 따라서 노래가 달라질 수 있다.

    고흥 한적들노래는 음악적인 면에서 육자배기권의 소리에 메나리권의 소리가 가미되어 중요한 위치에 있다. 분포권상으로는 전남 산아지타령권에 속한다. 내용은 모찌기노래·모심기노래·논매기노래·질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찌기와 모심기는 여자들이 주로 하며, 모찌기노래는 새벽부터 아침까지 모를 찌면서 부른다. 모찌기에는 식전에 부르는 방애타령과 먹은 후에 부르는 두허래소리가 있다. 논매기노래는 논을 매면서 부르며 남자들이 부른다. 질가락은 논매기 마지막 날 부르는 노래로 질지심때 부른다. 질지심은 논매기를 마치는 날 농군들이 풍물을 치며 마을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를 장원질놀이 또는 질꼬냉이라고 부른다. 모찌기노래·모심기노래·논매기노래는 한사람이 먼저 선창을 하면 농군들이 제창으로 받는 선후창(先後唱)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적들노래는 육자배기 음계를 지닌 노래가 중심이 되어, 방애타령 등 육자배기조와 메나리조가 융합된 노래로 음악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고흥군에 살고있는 남자 정봉주, 여자 박반심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1996.10.14
    지정일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액자나 족자형태로 만들어지는 불화(佛畵:불교의 내용을 쉽게 표현하고 널리 전하기 위해 그리는 그림)를 말하며, 이러한 탱화를 그리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탱화장이라 한다.

    탱화는 만드는 방법이 다른 불화에 비해 훨씬 쉽고, 고정되어 있지 않고 옮길 수 있어서 불교행사 때 쓰기 위해 많이 그려졌다.

    우리나라의 탱화는 삼국시대 때 불교가 전해지면서 시작되었다고 추측된다. 이는『삼국사기』의 “신라 화가 솔거가 황룡사 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렸다”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또 통일신라 혜공왕(재위 765∼780) 때 만들어진 석굴암의 석조 탱화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시작되어 통일신라시대에는 탱화가 널리 그려졌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전쟁으로 파괴된 절들을 새로 고치면서 많이 그려졌다.
  • 2016.10.14
    지정일
    태권도는 대한민국이 종주국인 현대 무술이며, 대한민국의 국기(國技)다. 빌차기를 중심으로 손과 발 및 기타 다른 신체부위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것을 지향하는 무술이다.
  • 2016.10.14
    지정일
    무주 안성 낙화놀이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 모내기 전 혹은 4월 초파일, 7월 보름에 숯가루·사금파리·소금·마른 쑥 등을 넣은 낙화봉을 긴 줄에 매달아 놓고 거기에 불을 붙여 그것이 타오를 때 나오는 불꽃 모양과 터지는 폭음 소리를 함께 즐기는 우리나라 전통 민속놀이를 말한다. 이를 ‘줄불 놀이’, ‘줄불이’ 등이라고도 한다.

    1. 불놀이 종류와 낙화놀이

    토화(吐火), 폭죽, 연등놀이, 화산대(火山臺), 줄불-낙화놀이, 불단-낙화놀이, 달걀 불놀이, 횃불 놀이, 딱총 놀이 등이 있다.

    2. 낙화놀이의 지역적 분포

    함경남도 북청 지방의 ‘연등’, 평안북도 정주 지방의 ‘연등’, 경기도 여주 지방의 ‘낙화놀이’, 경기도 양주시의 ‘줄불 놀이’, 충청북도 청주 지방의 ‘불꽃놀이’, 충청북도 충주 지방의 ‘불꽃놀이’, 충청남도 공주 지방의 ‘연등·관등’, 경상북도 안동 지방의 ‘선유-줄불 놀이’, 경상남도 함안 지방의 ‘이수정 낙화놀이’, 경상남도 마산 지방의 ‘진동 낙화놀이’, 경상남도 고성 지방의 ‘낙화놀이’, 경상남도 진해 지방의 ‘낙화놀이’, 전라북도 무주 지방의 ‘낙화놀이’, 전라북도 진안 지방의 ‘불꽃놀이’, 전라북도 임실 지방의 ‘불꽃놀이’, 전라북도 순창 지방의 ‘관등’, 전라남도 화순 지방의 ‘적벽-낙화놀이’ 등이 있다.

    3. 우리나라 낙화놀이 특징

    첫째, 우리나라 낙화놀이는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둘째, 공연 시기는 음력 4월 초파일,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행하여진다. 셋째, 공연 장소는 마을에서 이루어진다. 넷째, 공연 주관자는 마을 사람들이다. 다섯째, 제작 재료는 숯, 한지, 줄이 공통 요소이다. 사금파리, 쑥, 소금, 유황 등이 첨가된다. 여섯째, 공연 내용상으로 보면 줄불 놀이, 줄불 놀이와 제등/연등 달기, 장대에 낙화를 매달아 불을 붙이는 장대 불놀이 등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 1984.10.15
    지정일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4396)' onmouseout='dn2()'>자수(刺繡)</span>는 여러 색깔의 실을 바늘에 꿰어 바탕천에 무늬를 수놓아 나타내는 조형활동이다. 자수의 유래는 직조기술의 발달과 함께 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부터 확인된다. 고려시대에는 일반백성의 의복에까지 자수장식이 성행할 정도로 사치가 심해 여러 번 금지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궁수(宮繡:궁중에서 수방나인에 의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수)와 민수(民繡:민간에서 일반적으로 만들어진 수)로 크게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을 보이면서 발전하였다. <br /><br /> 자수의 재료로는 바늘과 바탕천, 평사(平絲)·<span class='xml2' onmouseover='up2(5962)' onmouseout='dn2()'>합사(合絲)</span>·<span class='xml2' onmouseover='up2(6529)' onmouseout='dn2()'>연사(撚絲)</span>의 색실과 틀 등이 있다. 주요기법에는 돗자리의 표면처럼 촘촘하게 엮는 자릿수, 땀새가 장단으로 교차되게 수놓는 자련수(刺練繡), 수면을 수평·수직·경사 방향으로 메워 가는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5817)' onmouseout='dn2()'>평수(平繡)</span>, 선을 조성하는 이음수, 수가 놓여진 윗부분에 군데군데 길게 고정시켜 수면이 흩어지지 않게 하는 징검수, 각종 꽃의 술이나 석류 등 작은 씨앗을 표현할 때 쓰이는 매듭수, 사슬고리 모양의 사슬수가 있다. 제작과정을 보면 바탕천을 틀에 고정시키고 밑그림을 그린다. 밑그림에 맞춰 수를 놓고 수가 끝나면 수틀을 뒤집어 먼지를 턴다. 수놓은 뒷면에 가볍게 풀을 칠하여 실밥이 흩어지지 않게 한 후 그늘에서 말린 다음 수틀에서 뗀다. <br /><br /> 자수는 단순히 직물의 표면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각 민족의 생활환경, 풍습, 신앙 등에 따라 독자적 양식을 이루면서 발전하여 왔다.
  • 1982.10.15
    지정일
    소동패는 남도지역을 중심으로 공동작업을 위해 조직된 두레의 한 유형이다. 두레는 20세 이상의 성년들로 구성된 대동패와 20세 이전의 청년들로 구성된 소동패로 나눌 수 있다. 소동패는 주로 풀베기와 김매기 등의 공동노동을 하였는데, 노동의 고달픔과 지루함을 잊고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농악이나 춤, 노래 등을 생활화한데서 놀이가 유래하였다.

    소동패놀이는 아침에서 저녁까지의 하루 생활을 통하여 놀이를 행한다. 아침식사를 재촉하는 조반소고, 일터로 빨리 모이라는 모임소고, 일터로 향하는 길소고, 논을 맬 때 논매기소리 등으로 이어진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대동패를 만나게 되면 인사를 여쭙는 전갈올리기가 행해지고, 다른 소동패를 만나면 한판겨루기놀이를 벌이는데 승패에 상관없이 농악을 치며 서로 화합한다. 민요는 경쾌한 가락으로 동작과 놀이에 따라 논매기노래, 등화타령, 허령타령, 개고리타령, 방애타령 등이 다양하게 불리운다.

    현천 소동패놀이는 노동과 노래, 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 종합민속예술이며, 인사를 여쭙는 전갈올리기는 어른에 대한 예절을 중시한 농촌사회의 전통을 담고 있다.
  • 2001.10.17
    지정일
    구덕망깨터다지기는 큰 건물이나 집을 지을 때 망깨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담장이나 기둥을 세울 곳의 땅을 다지던 작업(망깨질)과 그 과정에서 소리꾼이 부르는 노동요(망깨소리)가 포함된 전통민속이다.

    망깨란 넓적한 돌 또는 쉿덩이를 4∼5개의 손잡이나 줄에 매어 만든 것인데, 부산에서는 다른 곳과는 달리 넓적한 돌을 사용한다. 일꾼들이 줄을 힘껏 당겨 올렸다가 놓으면 망깨가 땅에 부딪치면서 점점 견고하게 다져진다. 이처럼 터를 다지기 위해 망깨로 땅을 다지는 일을 망깨질이라고 하고, 망깨질을 할 때 노동의 고단함을 덜고 일의 능률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부르는 소리를 망깨소리라 한다.

    서구 대신동을 중심으로 이어져 오는 구덕망깨터다지기는 전통건축에서 터를 다지는 도구인 망깨와 망깨로 터를 다지는 작업과정의 옛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민속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으며, 망깨소리 역시 부산 지역의 노동요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 2013.10.17
    지정일
    제주 동부 일부지역에서 꾸준히 불려왔던 어업 노동과 관련된 희귀한 소리이다.

    전승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불러왔다는 점에서 기능과 노래의 연관성이 밀접한 무형문화재로서의 전승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

    노래 2곡(터위 네젓는 소리, 갈치 나끄는 소리)
  • 2000.10.18
    지정일
    연안이씨인 이만희는 선조가 지다방사(知茶房事-왕의 검식관)를 지내는 등 문중이 왕실과 인연이 깊었다. 맏며느리인 그의 친정어머니로부터 혼인전까지 집안에 전통떡 등 집안에 전승되어 오는 여러 전통음식의 제조 비법을 전수 받았다.

    그는 광산김씨와 혼인한 이후 40여 년간 대전에 거주하며 떡을 포함한 이바지 음식을 만들어 혼례음식 문화의 전통을 이어왔다. 그의 음식제조 기능 가운데 대표적인 백편·꿀편·싱검초편 등 각색편은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백설기·밀설기·신감초말밀설기로 지칭 되었던 맵쌀을 주재료로 한 떡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떡의 하나였다.

    『조선왕조궁중의궤(朝鮮王朝宮中儀軌)』의 기록에 의하면 백편은 맵쌀·찹쌀·석이버섯·잣·밤·대추가, 꿀편은 맵쌀·찹쌀·대추·밤·잣·꿀이, 싱검초편은 맵쌀·찹쌀·신검초가루·대추·밤·잣·꿀이 재료가 되고 있다. 이들 재료를 참기름 먹인 한지를 깔고 곱게 정성을 다하여 대추·밤·잣으로 장식하여 찌는데, 이만희의 각색편은 조선왕실의 떡 제조방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백편 등은 원래 차(茶) 문화의 발달과 함께 다도(茶道)와 결합된 궁중연회에서 사용되었던 음식이다. 고려시대에는 말차(末茶)와 함께, 조선시대에는 녹차와 함께 사용되었던 맵쌀로 만든 대표적인 떡이었다. 연희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다도와 결합된 조선왕조의 진찬연(進饌宴)에 반드시 올라가는 찬품이었던 것이다.
  • 2000.10.18
    지정일
    단청은 광물성 안료인 진채로 건조물이나 공예품 등에 채색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단청을 하면 목재의 보존에 유리하고 또 목재부분의 조악한 부분을 가릴 수 있으며 건물을 장엄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단청은 불교미술의 한 분야로 불교의 교리와 이념을 표현하는 작업으로 오랜 우리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예전에는 단청에 종사하는 사람을 화사·화원·화공·도채장 등으로 불렀다. 만일 그가 승려인 경우에는 금어 또는 화승이라 하였다.

    단청장 이정오는 어려서부터 우리나라 단청계 최대 계파의 수장인 고 일섭스님(전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에게서 전통단청 기능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1974년 지정문화재 수리기술자(단청기술자) 선발 시험에 최연소(만 26세)로 합격하였다. 이후 전통문양 및 기법 계승과 더불어 스승인 일섭스님의 특장인 금문양 및 주위문양의 발전에 힘썼다.

    또한 중국 건축의장의 지침서격인 「이명중 영조법식」의 ‘채화작도 문양’을 참고한 신문양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여 남다른 기능을 보여주었다.

    이정오의 작품으로 합천 해인사 대웅전, 온양 현충사 현충각, 영남루, 직지사 대웅전, 대전 덕수암 대웅전 등이 있다.

    김성규는 故신언수(전북무형문화재 단청장 보유자)와 문화재수리기술자였던 故 박준주 등 스승으로부터 이수 받은 계보를 이어 전통기법의 단청문양 재현을 비롯하여 단청기술자로서 필요한 기량을 충분히 보유하였다. 또한 국보‧보물 등 주요 문화재 350여 곳의 단청을 시공한 실적이 있으며 다수의 기능자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등 전수체계도 잘 갖추고 있다. 이상과 같이 자질과 조건이 충분하므로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95년과 96년 각각 문화재청 문화재수리기능 도금, 단청 부문 시험에 합격했으며,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단청 작품집으로 『붓 끝에 담은 崋藏莊儼의 서원』(훈민사, 2004)이 있다.
  • 1999.10.18
    지정일
    단청은 건물에 색을 입히는 기술이나 그 기술이 발휘된 결과를 말하며, 단청장은 단청일을 하는 장인을 일컫는다. 단청의 영역은 전통적으로 불화를 아우르는 경향이 있으며, 근래의 학습과정도 이런 인식을 뒷받침한다. 단청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의 담징曇徵, 백제의 백가白加, 신라의 솔거率居가 모두 사찰에 벽화를 그린 화승으로서 단청의 소임을 담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불교신앙과 특수한 권위를 지닌 사찰과 궁궐에 칠하는 단청은 건물의 수명을 늘리고 장엄을 겸할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단청을 입히는 건물 사이에도 무늬의 선택과 치장의 정도를 다르게 하여 위격에 차등을 두었다. 가장 격이 높은 궁궐의 정전과 사찰의 대웅전에는 갖은금단청을, 이보다 격이 낮은 건물에는 수순에 따라 금단청과 모로단청, 긋기단청 등으로 점차 간결하게 처리하였다. 주로 다섯 가지의 광물성 석채안료를 기본으로 하여 화사한 무늬를 구현한다.

    단청장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일찍이 지정받은 이치호萬奉, 김성수,임석정, 홍창원 등이 있으며, 지방에도 여러 장인이 각기의 전승체계를 통해 기능을 잇고 있다. 경기도는 단청장 보유자로 1999년에 김종욱(1937년생)을 지정하여 활발히 전승하고 있다.
  • 1999.10.18
    지정일
    화각공예는 쇠뿔을 얇게 갈아 뒷면에 무늬를 그려 장식하는 공예품이나 그 기술을 말하며, 화각 일을 하는 장인을 화각장이라 일컫는다. 화각공예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한국 공예의 고유한 특질로서, 나전칠기와 더불어 한국 목공예의 특질을 잘 보여준다. 기원은 알 수 없으나 고려의 나전칠기에 성질이 유사한 거북의 등껍질을 쓴 사례를 들어 시대를 고대로 올려보기도 하며, 조선후기 이후에는 그 자취가 확연하다.

    화각은 3~5년생 황소의 뿔을 삶고 반을 갈라서 펼쳐 평평한 면을 만든 다음 뒷면이 비칠 만큼 얇게 저며 뒷면에 문양을 그리는 복채기법을 쓴다. 복채된 문양은 색이 잘 보존될 뿐 아니라 발색도 한결 깊어져 공예품의 품격을 높인다. 문양을 그린 각편을 뼈대가 되는 백골위에 아교로 붙이고, 각편들 사이에는 소뼈를 깎아 경계선을 고정시켜 마무리한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 본디 원추형이던 소뿔의 속성으로 돌아가려는 탄력 때문에 들뜨는 일이 빈번하여 보존이 쉽지않다. 따라서 재료를 마련하는 공정부터 복잡하고 번거로울뿐더러 가격도 비싸 궁중이나 소수 지배층에서 쓰던 고급 공예품이었다.

    화각장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일찍이 지정받은 고 음일천과 이재만이 있으며, 지방의 화각장 보유자로는 경기도의 고 한춘섭(1949-2015)이 있을 뿐이었다. 한춘섭은 나전칠기에 입문하여 기술을 익힌 뒤 음일천의 문하에서 다시 화각기술을 배웠다. 현재는 아들 한기덕이 전수조교로 지정되어 기능 전승에 매진하고 있다.
  • 1999.10.18
    지정일
    북메우기는 전통 북을 제작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북을 메우는 장인은 한자말로 고장鼓匠이라 하였다. 짐승 가죽을 울려 소리를 내는 북은 가장 원초적인 악기의 하나로 꼽힌다. 가죽의 울림이 다른 재료보다 인간 보편의 기본 감성을 움직인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각기 매우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북은 용도에 따라 정악용과 사찰용, 민간용 등으로 나뉘며, 그 종류가 매우 많다. 흔히 알려진 사찰의 법고나 농악용 매구북, 판소리의 소리북 외에도 정악의 좌고座鼓, 용고龍鼓, 영고靈鼓, 교방고敎坊鼓 등 14종에 이르고, 민간용으로 소고와 장고 등으로 다양하다. 장구는 본디 따로 제작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북메우기의 작업 범위에 포함되기도 한다.

    이름이 다른 북은 용도별로 형태나 만드는 방법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북은 대개 소가죽을 쓰지만 장구는 채로 치는 쪽에 개가죽을 써야 제 소리를 낸다. 북메우기의 핵심 중 하나는 울림통 제작과 가죽 무두질기술이다. 생가죽을 다루는 무두질은 현재 일부만 전하고있다. 울림통은 통나무의 안쪽을 깎아내는 방법과 나무쪽을 서로 연결하여 둥글게 울림통을 만드는 방법이 있는데, 이 가운데 나무쪽을 이어붙이는 기술이 손이 많이 가고 난이도가 높다.

    북메우기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일찍이 고 박균석과 고 윤덕진을 인정하였다. 현재 경기도에서는 악기장 종목에 북메우기를 묶어 지정하고 있으며, 1999년에 임선빈(1950년생)이 기능을 인정받아 아들 임동국을 비롯한 제자들에게 활발히 전수하고 있다.
  • 1999.10.18
    지정일
    악기장 가운데 현악기 분야는 가야금과 거문고 등을 제작하는 장인을 일컫는다. 조선시대에는 풍류장또는 풍물장으로도 불리었다. 현악기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현의 거문고는 고구려의 왕산악이 발명하였고, 12줄의 가야금은 가야에서 비롯하였다. 거문고는 장중한 소리에 검은 학이 모여들었다 하여 현학금, 또는 가장 근본이 되는 악기라는 뜻의 현금으로도 지칭되었다. 거문고는 여흥을 넘어 유가 정치철학의 핵심인 예악가운데 함께 어우러지는 조화의 상징으로서 사대부와 선비의 서재에도 놓이는 필수품이었다.

    현악기는 거문고와 가야금 외에도 용도에 따라 아쟁, 해금, 대쟁, 향비파, 월금, 와공후, 수공후, 양금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가야금은 정악용과 산조용으로 크게 나뉜다. 현악기의 주재료는 울림통으로 오동나무를 쓰며, 뒤판은 이보다 단단하여 음을 받쳐주는 밤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현악기를 다루는 장인은 음질의 차이가 주로 오동나무의 품질과 연관된다고 여겨 양질의 재료를 구하는데 공력을 들인다. 예부터 척박한 바위틈에서 더디 자란 오동이 소리가 여물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데, 『악학궤범』에 기록된 석상동이 이와 연관된다.

    현악기는 국악의 성행에 힘입어 다른 공예분야에 비해 활성화된 분야에 속한다. 그동안 국가무형문화재로 고 김광주, 이영수, 고흥곤 등이 인정되었다. 경기도에서는 제 30-2호의 악기장 종목에 현악기를 묶어 지정하고 있으며, 1999년에 최태순(1941년생)이 기능을 인정받아 아들 최정욱을 비롯한 여러 제자들에게 활발히 전수하고 있다.
  • 1999.10.18
    지정일
    휘몰이잡가는 빨리 몰아서 부르는 잡가라는 뜻이다. 긴잡가의 상대적인 의미로 휘몰이잡가라는 명칭이 붙었다. 경기의 긴잡가와 휘몰이잡가 등 앉아서 부르는 좌창계열의 악곡은 조선후기에 서울 사계축이라 불리던 만리재·청파도 소리꾼을 중심으로 하여 서울 도성 안팎의 소리꾼들에 의해 발전된 것이다.

    잡가꾼들이 노래할 때에는 먼저 가사와 시조를 부른 다음 긴잡가와 수잡가, 휘몰이잡가를 부른 후에 통속민요로 판을 끝냈다고한다. 즉 휘몰이잡가는 주로 끝판에 불렀던 노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처럼 끝에 불렸던 것은 휘몰이잡가의 익살스러운 가사가 분위기를 흥겹게 만드는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휘몰이잡가의 가사는 대개 장형시조의 변형인데, 이를 볶는 타령장단에 얹어 촘촘히 엮어 부른다. 이러한 이유로 휘몰이잡가를 사설시조의 한 갈래로 포함시키기도 한다.

    휘몰이잡가는 해학적인 가사가 특징적이다. 빠르게 가사를 나열하는것은 가사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휘몰이잡가의 가사는 과장과 확대, 열거, 반전 등의 방법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현재 전승되는 휘몰이잡가로는 ‘곰보타령’, ‘생매잡아’, ‘만학천봉’, ‘기생타령’, ‘바위타령’, ‘맹꽁이타령’, ‘병정타령’, ‘육칠월흐린날’, ‘한잔 부어라’, ‘순검타령’, ‘비단타령’ 등이 있다.

    휘몰이잡가는 소리꾼이 혼자 앉아서 장구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위타령은 노래가락과 창부타령조가 섞인 소리이고, 비단타령은 책읽듯 읽어 나가다가 끝에 맹인덕담경 외는 소리조로 부른다. 또 ‘기생타령’, ‘맹꽁이타령’, ‘바위타령’ 등은 볶는 타령장단으로 되어 있다.

    현재 휘몰이잡가 예능 보유자 김권수를 중심으로 국악의 향연 등 활발한 공연 및 전승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