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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2011.4.22
    지정일
    조선 중종 11년(1516) 제6대 임금인 단종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우승지 신상을 보내 치제한 것으로 시작되어 숙종 24년(1698) 확립된 영월 단종제례는 장릉에서 올리는 유교식 제례의식으로 체계적 보존⋅전승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1791년(정조 15)에 시작된 배식단의 충신제향은 조선왕릉 중에서 유일한 것이라는 점에서 지정가치가 큼.
  • 2003.4.24
    지정일
    당제는 마을 수호신에게 풍요와 다산 및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마을 단위의 제사이다. 이 일산동 당제는 마을 사당(당집)에서 올리는 유교식 제사와 세습무들이 진행하는 별신굿이 합쳐진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당제는 울산 및 동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마을제로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3년마다 음력 10월 초하루부터 3일간 일산동당제보존회 주관으로 거행된다. 마을에서는 덕망이 있고 정결한 마을 사람 가운데에서 제주를 뽑고 집집마다 조금씩 금품을 거두어 제물을 마련한다.

    이 곳 일산동 당제는 내륙지방의 동제와는 달리 세습무들의 별신굿 중심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 별신굿은 동해안 세습무집단이 주재하는데 더러움을 제거하는 의식인 부정거리, 선원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거리 등 총24거리로 구성되어있다. 이 별신굿의 자료는 「울산지방 무가 자료집(1〜5권)」(1993년), 「(한국의 별신굿 무가(1〜12권)」(1999) 등으로 출간되었다.
  • 2003.4.25
    지정일
    방짜수저는 전통적인 금속공예품인 유기제품의 하나로서 우리 생활공간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던 실용성이 높은 공예품이었으나, 현대화의 과정에서 대체용기의 사용으로 점차 인멸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유기는 일반적으로 놋쇠라고 부르며 구리에다 주석이나 아연 또는 니켈을 혼합하여 만든 합금물체로 제작 성분에 따라 다소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유기의 제작방법은 크게 주물, 방자, 반방자로 나누어진다. 방짜는 양대라고도 하는데 동과 주석의 합금을 도가니에 녹여 바둑형태와 같은 놋덩어리를 만든 후 이것을 불에 달구어 두들겨서 늘리고 다듬어서 기형을 이루는 방법이다.

    기능보유자 김우찬씨는 3대째 전승을 이어가고 있다.
  • 2003.4.25
    지정일
    둔전평농악은 평창군 용평면 일대에서 전승되어 온 농악으로 지리적인 특성상 영동과 영서농악의 특성을 함께 갖추고 있으면서 독창적인 개성도 갖추고 있고, 각 지역의 농악들이 대부분 사라져 가는 실정에서도 원형을 잘 계승하여 왔다. 특히 산업사회로의 이행과 급격한 농촌지역의 기계화로 각 지역의 농경민속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실정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농악이라는 점에서 전통문화의 체계적인 보존·전승을 위해 가치가 크다.

    이종현과 김은영은 어려서부터 용평지역의 농악과 함께 생활해오면서 둔전평농악의 상쇠로서 농악대를 이끄는 기능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농악의 전반적인 부문을 실연할 수 있으며, 평창둔전평농사놀이보존회는 농악의 특성상 단체놀이의 성격이 크므로 이의 체계적인 보존·전승을 위해 인정되었다.
  • 2018.4.26
    지정일
    전남의례음식 가운데 혼례음식 제조기술은 전라 서부권역 반가(창녕조씨)의 혼례음식이 4대째 어이져 최윤자 장인에게 전수되었다.

    혼례음식은 크게 봉치떡, 동뢰상음식(대례상), 큰상음식, 폐백음식, 이바지음식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폐백음식은 재료와 부재료의 선정, 도구와 제조기법 모두 전통을 따르며, 장식성과 예술성도 뛰어나다.
  • 2012.4.27
    지정일
    익산목발노래는 익산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요로 지게를 진 나무꾼들이 작대기로 지게의 다리인 목발을 두드리며 부르던 노래이다. 목발노래란 산타령, 등짐노래, 지게목발노래, 작대기타령, 둥당기타령, 상사소리 등 6곡을 하나로 묶은 노래의 명칭을 말한다.

    목발노래는 나무꾼들이 무거운 짐을 질 때, 가벼운 짐을 질 때, 빈 지게로 나갈 때 등에 따라 노래가 달라지므로 여러 가지 곡조의 장단이 나타나고 있다. 나무나 풀을 벨 때는 느린 진양조장단의 산타령을, 그 후 나무를 짊어지고 내려올 때는 느린 중모리장단의 등짐노래를 부른다. 마을로 돌아올 때나 나뭇짐을 지고 신바람이 나 있을 때는 엇모리장단의 지게목발노래와 굿거리장단의 작대기타령, 둥당기타령, 상사소리를 부른다.

    익산목발노래는 농경문화의 꽃으로 비유되어 온 농요(農謠)로, 시대적 변화에 따라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귀중한 음악이다. 익산시에 사는 박갑근씨가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1987.4.28
    지정일
    우리 고장의 대표적인 토속주인 이강주는 조선 중엽부터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술의 제조방법 및 맛에 대해서는 임원16지, 동국세시기, 한국의 명주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전주 이강주는 우선 맑고 깨끗한 물과 밀, 백미를 이용하여 30도 소주를 증류해 낸다. 그리고 30도 수주 18리터에 배 5개의 즙액을 비롯하여 생강 20그램, 계피 3.75그램 및 울금 7.7그램의 각 추출액을 가하고, 다시 과당 600밀리리터를 배합하여 완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강주는 그 특유의 향과 맛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 2011.4.29
    지정일
    나무를 재료로 하여 집짓는 일에서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기술설계는 물론 공사의 감리까지 겸하는 목수로서 궁궐, 사찰, 군영시설 등을 건축하는 도편수를 가리키기도 한다. 대목장은 문짝, 난간 등 소규모 목공일을 맡아하는 소목장과 구분한데서 나온 명칭으로 와장, 드잡이, 석장, 미장이, 단청장 등과 힘을 합하여 집의 완성까지 모두 책임진다.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벼슬이 주어졌으나 오늘날에는 사찰이나 서원, 향교, 전통한옥 등을 짓는 것으로 대목장 기술이 전수되어 오고 있다.

    대목장은 그 기법이 엄격히 전승되기 때문에 기문(技門)이 형성되어 있다.

    기문(技門)은 기술로서 한 가문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기문에서의 대목장은 절대권위를 지닌다.

    조부 신성집(1877~1954)대로부터 부친 신혁묵(1921~1968)으로부터 이어온 전통건축기법을 19살 때에 입문하여 전수활동 및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1999년부터 차자인 신태선도 입문하여 전수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예술적인 측면과 특징으로는 재래종 전통재료를 사용하면서 제작과정에서 전통목조건축 과정을 따르고 있고, 치목과정에서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연기와 불꽃을 이용한 건조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치목의 특징은 각 건축마다 문양초각은 같은 것이 없이 창의적이고 의장적인 표현을 자아내고 있다. 특히 다른 대목장에게는 보기 힘든 설계도면을 직접 작성하여 시공하고 있으며 20년 전부터 그린 도면이 보관되고 있다. 전문적인 설계도를 직접 그리는 다른 대목장과는 차별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기문(技門)이 대를 이어 가문화하여 활발한 전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며, 지방의 특성을 잘 보전하면서 전통성을 유지해 갈 수 있는 향토적 전통성을 보이고 있다. 예술적인 측면에서 전통재료의 사용, 전통목조건축 제작과정, 치목과정의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건조기법, 각기 다른 문양초각의 의장 표현, 설계도면을 직접 그려서 시공하고 있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 2011.4.29
    지정일
    이종덕은 1961년에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김약환이봉주박임모송광호박일동곽선재 등에게 사사받았으며, 전승공예대전, 전북공예품경진대회 등에서 입상하였다.

    유기란 놋쇠로 만든 그릇을 말하는데, 그 가운데 방짜유기는 구리 78%, 주석 22%를 섞어서 녹인 다음 두드려 만든 유기를 말한다. 놋쇠의 기원은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철기시대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와서 불교와 상류층을 중심으로 사용되다가 조선시대에 와서는 일반인 등도 사용하였다. 방짜유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북지역을 대표하는 토산품 가운데 하나였으며, 『경국대전』에도 외공장을 전주와 남원에 유기장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항토문화적 특성이 강하였으며, 특히 6.25전까지 남원,운봉,전주,임실,정읍,군산 등 전북지역에서 유기생산이 활발했으며, 이곳을 거점으로 다른 지역에 까지 영향을 끼쳤으며, 또한 전주와 익산, 김제에 놋전이 있어서 대구,안성과 함께 3대 시장으로 꼽히기도 하였다.
  • 2018.4.30
    지정일
    우리나라는 소금산지가 없어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바닷물을 원료로 하여 소금을 생산함. 자염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찾아 볼 수 있고, 현재까지 이어져온 천일염전은 1907년에 도입되어 100여년 지속되어왔다.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자염법(煮鹽法)은 갯벌 흙, 바닷물, 햇볕을 이용하여 얻은 함수를 소금가마에 붓고 불을 지피는 방식이고, 천일제염법은 오로지 햇볕과 바람만으로 수분을 증발시키면서 소금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자염이나 천일염은 갯벌에 조성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갯벌 천일염 생산량 중에 86%을 차지하고 있음. 그리고 소금으로 화재를 예방하고 부정한 것을 퇴치한다는 신앙차원에서 우리나라만의 고유성을 찾아볼 수 있으며, 향후 소금 생산방식과 작업구조에 대한 연구는 어촌문화와 우리나라 갯벌의 생태에 대한 학술연구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임. 또한 서해안의 갯벌 염전은 낙조와 함께 독특한 경관을 연출한다.

    ※ 제염은 특정지역에 한정되어 전승되는 전통 지식, 기술이 아니므로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고 종목으로만 지정함.
  • 2018.4.30
    지정일
    한반도 지역의 온돌문화는 청동기시대를 거쳐 원삼국시대 부뚜막식 화덕과 연도가 설치된 원시적 형태의 난방방식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되고 기원전 3세기~1세기경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원시적 온돌 유적들이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된 점들로 미루어 보아 한반도에서 온돌문화는 약 2천년이상 전승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우리 온돌은 서양 벽난로와 다르게 연기를 높은 굴뚝으로 바로 내보내지 않고 불을 눕혀 기어가게 만들어서, 불의 윗부분을 깔고 앉아 사용하는 탈화좌식(脫靴坐式) 바닥 난방이 특징으로 방내부에 연기를 발생시키지 않고 오래 난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온돌문화는 한국의 총체적인 주거문화로 바닥 난방 및 생태환경 활용 기술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관습과 규범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생활양식은 주택, 실내건축, 가구의 형식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주어 한국을 대표하는 ‘온돌방’ 문화로 대중화되었다.

    여름철의 기후환경에 대응한 마루방과 겨울철의 기후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온돌방은 한국을 대표하는 주거 요소들로, 현재 온돌방은 중국 및 만주지방의 바닥 난방 방식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한민족의 고유한 주거기술 및 주생활 문화유산이다. 그리고 온돌문화는 기술적 발전과 주요 주거공간의 형식적 변화, 생활방식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그 원형인 바닥 난방 방식은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온돌문화는 오래전부터 전승되고 지속적으로 재창조되어 한국사회의 주생활과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쳐온 사회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산으로 한반도가 처했던 혹한의 기후환경에 지혜롭게 적응하고 대처해온 한국인의 창의성이 발현된 문화라는 점에서 국가무형문화재로서의 그 가치가 있다.

    ※ 온돌문화는 한반도 전역에서 오래도록 한국인들에게 공유되고 관습화된 한국인의 주생활문화이므로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고 종목으로만 지정함.
  • 2019.4.30
    지정일
    「불복장작법」은 탑의 내부에 사리 등을 봉안하듯이 불상・불화 등을 조성하여 모시기 전에 불상 내부나 불화 틀 안에 사리와 오곡 등 불교와 관련한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1756)' onmouseout='dn2()'>물목(物目)</span>을 봉안함(불복장)으로써 예배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을 통해 세속적인 가치의 불상・불화에 종교적 가치가 부여되어 예배의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br /><br /> 고려 시대부터 설행(設行, 베풀어 행함)되어 700년 이상의 전통을 갖고 있으며 해당 의례의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4532)' onmouseout='dn2()'>저본(底本)</span>인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4884)' onmouseout='dn2()'>조상경(造像經)</span>』이 1500년대부터 간행되어 조선 시대에 활발히 설행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도 비전(秘傳)되어 현재까지 전승의 맥을 이어온 점, 한・중・일 삼국 중에서도 의식으로 정립되어 전승되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고, 『조상경』 역시 우리나라에만 있는 경전인 점, 불복장의 절차와 의례요소가 다양하고 복잡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점, 세부 내용마다 사상적・교리적 의미가 부여된 점 등이 높이 평가되었다.<br /><br /><br /><br />*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4419)' onmouseout='dn2()'>작법(作法)</span>: 수륙재나 영산재 등에서 행하는 작법무(作法舞)와 같이 몸짓으로 표현하는 행위의 좁은 의미가 아니라, 불복장을 행하되 의례로써 실행한다는 뜻을 나타낸 것임.
  • 2004.4.30
    지정일
    승무는 조선 중엽 포교수단으로 승무를 추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유혹하려고 춤 춘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춤사위가 다양하고 춤의 기법이 독특하며 춤의 구성 또한 체계적인 품위와 격조가 높은 예술형식을 지니고 있는 승무는 절에서 추어지는 의식무가 아니라 살풀이와 함께 민속춤으로 분류된다. 장삼에다 어깨에 붉은 가사를 두르고 고깔을 눌러 쓴 불교적인 색채가 짙은 승무의 세찬 장삼놀음과 빼어난 발디딤새, 장관을 이루는 북의 울림이 가히 한국춤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대전 출생으로 1974년 불가에 입문한 송재섭은 조계종 스님으로부터 작법과 범패를 배우기 시작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영산재 보유자인 박송암스님에게서 바라춤, 법고무 등 불교의식과 의식무를 사사받았다. 이후 이매방으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승무와 살풀이춤을, 영산재보존회로부터 영산재를 각각 이수받았다.

    송재섭의 춤은 매우 여성적이나 약하지 않고, 섬세하나 큰 결이 있으며, 결코 화려하지 않은 소박함이 깃들어 있다. 발끝에서 손끝까지 잔잔한 생명력이 있는 움직임이 표출되는 춤사위를 통해 한과 숙명을 풀어내고 있다. 그 몸짓은 억지로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절제된 감정으로 내면에서 희열을 끄집어내고 있으며 결코 경직되지 않는 모습의 춤사위를 펼쳐 보인다. 잔잔한 호수에 동심원을 그리며 물살이 퍼져 나가는 듯한 애잔한 느낌을 준다. 구도의 정신에서 묻어 나오는 그만의 춤 세계와 겸허한 마음자세가 숙명적으로 춤을 추기 위해 태어난 자의 몸부림이라 표현할 만 하다.
  • 2013.4.30
    지정일
    고법은 판소리의 북 반주의 법례를 의미한다. 고수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엇중모리 등의 다양한 장단을 치면서 소리꾼의 노래를 반주한다.

    또한, 추임새를 통해 소리꾼의 흥을 돋우면서 소리판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판소리에는 예로부터‘일고수 이명창’과 같이 고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2013.4.30
    지정일
    꽃맞이굿은 꽃피는 봄철을 맞이하여 신의 음덕에 감사 하기 위해 행하는 무속 의례이다. 이 굿에는 무당이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것과 재가집(단골집)의 요청으로 하는 것이 있다.

    무당이 자신이 모신 신령님과 자신을 위해 하는 신굿은 자신의 건강과 무업 번창을 재가집을 위한 굿은 집안의 평안을 감사하는 것이 목적이다. 즉 꽃맞이굿은 신에게 감사하는 것이 목적이며, 무사태평, 무병장수, 부귀공명을 비는 기복적 내용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