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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1966.6.29
    지정일
    나전장은 나무로 짠 가구나 기물 위에 무늬가 아름다운 전복이나 조개껍질을 갈고 문양을 오려서 옻칠로 붙이는 기술이다. 나전칠기의 제작과정은, 나무로 기본 틀인 백골을 짜고 그 표면을 사포로 문지르거나 틈새를 메워 고르게 한 다음 자개를 붙인다. 그 후 연마, 옻칠, 광내기 과정을 거쳐 완성한다. 자개로 무늬를 만드는 방법에는 자개를 실처럼 잘게 자른 '상사'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드는 끊음질 기법과, 자개를 문질러 얇게 만들어 국화, 대나무, 거북이 등 각종 도안 문양을 만드는 줄음질 기법이 있다. 나전 무늬는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는 모란·국화·연꽃 등의 식물무늬가, 조선 중기에는 화조·쌍학·포도· 사군자 등의 무늬가 주로 사용되었다.<br /><br />나전칠기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 옻나무 수액인 칠과 자개이다. 자개의 재료는 전복, 소라, 진주조개가 주로 사용되며, 남해안과 제주도 근해에서 나는 것이 아름답고 우수하다. 현재 나전칠기로 가장 유명한 지역은 경남 통영이며 강원도 원주는 우수한 옻칠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 1966.6.29
    지정일
    진주삼천포농악은 진주·삼천포 지역에 전래되고 있는 농악으로 영남농악에 속한다.<br /><br /> 진주삼천포농악에 쓰이는 악기에는 꽹과리, 징, 장구, 북, 법고가 있으며, 편성은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808)' onmouseout='dn2()'>기수(旗手)</span>와 쇠, 징, 북, 장구, 법고 그리고 양반과 포수로 되어 있다. 모두가 흰바지와 색깔있는 저고리의 농악복에 색띠를 두루고, 모자(상모)를 쓴 채 연주하는데 개인놀이가 비교적 발달하였다. 판굿에서는 채상모놀이가 돋보이며, 군사놀이인 팔진해식진(八陣解式陣)굿이 특이하다. 빠른 가락을 모는 경우가 많아 힘차고 가락이 다채로워 흥겹다.<br /><br /> 진주삼천포농악은 판굿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어 예술적 가치가 높으며, 팔진법이라든가 버꾸놀이, 상쇠놀이, 무동놀이(사내아이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 등의 개인기가 뛰어나다.
  • 1976.6.30
    지정일
    줄타기는 공중에 맨 줄 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와 발림을 섞어가며 여러 가지 재주를 보여주는 놀이이다. 줄 위를 마치 얼음지치듯 미끌어지며 나가는 재주라 하여 '어름' 또는 '줄얼음타기'라고도 한다. 주로 음력 4월 15일이나 단오날, 추석 등 명절날에 연희되었으며, 개인의 초청에 응해서 돈을 받고 놀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줄타기 놀이의 유래는 서역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중국 한나라 때 발생했다는 설이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줄타기는 조선시대에 두 계통으로 나뉘어 발달했다. 하나는 주로 양반층을 위해 공연되었던 광대줄타기로 순수하게 줄타기로만 구성되어 기술의 종류나 솜씨에서 뛰어났다. 다른 하나는 남사당패의 어름줄타기로 서민들을 위해 공연되었던 만큼 재담이나 오락성이 뛰어났다.<br /><br /> 줄타기는 줄광대와 어릿광대, 삼현육각잡이로 편성된다. 줄광대는 주로 줄 위에서 놀고 어릿광대는 땅 위에 서서 재담을 하며 삼현육각잡이는 줄 밑 한편에 한 줄로 늘어앉는다. 줄의 높이는 일정하지 않으나 대략 3m이고, 길이는 10m정도이다. 줄타기는 주로 훈련이 잘 된 남자가 했지만 때로는 여자가 타는 수도 있었다. 줄 위에 올라갈 때는 손에 부채나 수건을 들었는데 동작이 멋있어 보이기 위한 것도 있지만,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사용되었다. 줄을 탈 때에는 아래에 있는 잽이들이 장구, 피리, 해금 등으로 흥을 돋우어 광대들의 동작을 율동적이고 날렵하게 만들었다. 줄타기의 기교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여 가지로, 줄 위에서 걷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동작이며 뒤로 걸어가기, 줄 위에서 한 발로 뛰기, 걸터앉고 드러눕기도 하며 때로는 재주를 넘고 떨어지는 척 해서 구경꾼들을 놀라게 한다. 줄타기를 할 때에는 단순히 줄만 타지 않고, 노래를 부르거나 파계승과 타락한 양반을 풍자한 이야기로 익살을 떨고, 바보짓이나 곱추짓, 여자의 화장하는 모습들을 흉내내 구경꾼들을 즐겁게 했다. <br /><br />우리나라의 줄타기는 외국의 줄타기와 달리 줄만 타는 몸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노래와 재담을 곁들여 줄타는 사람과 구경꾼이 함께 어우러진 놀이판을 이끄는데 그 의의가 있다.
  • 1995.6.30
    지정일
    청송에서 전통적인 과정으로 종이를 생산했던 곳인 지소는 안덕면 지소리와 파천면 신기리, 중평리 등 모두 세 곳이 있었다.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2리 감곡마을은 참닥나무가 많고 물이 맑아, 오래전부터 제지 마을로 알려져 왔다.

    이 마을에서는 1920년대까지 20여 가구가 한지를 생산했으며, 제지를 생업으로 하지 않는 주민들도 부업으로 삼았다. 그러나 유리창의 보급으로 창호지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고, 한지를 주로 사용하던 각종 의례도 현대화되는 등, 한지 소비가 급감하여 한지 공방은 크게 위축되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대 기능 보유자인 이상룡은 송강리로 이주하여 그의 5대조 원천 이석일로부터 시작된 가업을 이어오며,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3호 청송 한지장으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그의 장남인 이자성이 가업을 이어받아 청송 한지장 기능 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신기리 감곡마을에 있는 벽진이씨 재실인 삼체정은 가업을 시작한 원천 이석일과 그의 아우인 감천 이재일, 석천 이향일 삼형제의 재실 겸 정자이다.

    최근 화선지와 소지, 책지, 화가들이 쓰는 벽보지 등으로 전통한지의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3호 청송 한지장 기능 보유자인 이자성은 수입 닥나무를 쓰지 않고 닥나무 산지인 청송군 일대와 예천 용궁 등지에서 원료를 수집하여 사용한다.

    이자성은 공방 근처에 6,000여㎡의 닥나무밭을 일구었을 뿐만 아니라, 청송한지체험관을 조성하여 청송 한지 보급에 힘쓰고 있다
  • 1995.6.30
    지정일
    삼베는 베라고도 불리며 한자어로는 마·마포·포 라고도 한다. 삼베는 신석기시대의 궁산패총에서 뼈로 된 바늘에 마사가 감긴 것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기술이 발달되어 중국으로 수출되었고 문물교환의 수단으로 모시와 함께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면 생산이 시작되면서 삼베의 생산이 약간 줄게된다.

    제작과정은 우선 삼나무를 재배해서 수확을 한 후, 잎을 훑은 삼단을 쪄서 껍질을 벗기고 햇볕에 말린다.

    삼을 쪼갠 후 실을 한올 한올 길게 이은 다음 베 한필의 길이와 폭에 따라 몇 올의 실이 들어갈지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풀 먹이기 과정을 거친 후 베틀을 이용해 직물을 짠다.

    전통기법으로 한 마을에서 집단적으로 삼베짜기가 전승되고 있는 지역은 전국적으로 드문 사례이므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2006.6.30
    지정일
    1935년 부안에서 태어난 김봉기는 어린 시절 석암 정경태와 한마을에 살면서 가사를 배웠으며, 이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고민순으로 부터도 사사받았다.

    김봉기는 청이 맑고 고요할 뿐 아니라 고음 처리에도 끊길 듯 하면서도 끊기지 않고 구슬이 굴러가듯 유연하게 소리를 이어가는 느낌이 특징이다.

    김봉기는 전주전국남여시조경영대회, 전국남여시조경창대회 등 다수 대회에서 입상하였다.
  • 2001.6.30
    지정일
    안섬 당굿은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굿의 한 형태이다. 문헌상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약 35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송악면 안섬은 원래 당진군의 북서쪽에 있는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된 곳이다. 이곳의 어민들은 고기잡이를 나가기 전에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당제를 지냈다.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첫번째 진일(辰日-병진일(丙辰日)제외)에 당굿을 올리는데 격년제로 대제(大祭)</span>와 소제(小祭)를 나누어 지낸다. 소제는 당제(堂祭)</span>의 형태로, 대제 때에는 무당이 참여하는 당굿 형태로 진행된다.

    안섬 당제의 구조와 성격은 서해안 어촌마을의 공동체 신앙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민속학적 의미와 가치가 매우 크다.
  • 1987.7.1
    지정일
    남해안별신굿은 경상남도 거제도를 중심으로 통영시 일대의 어촌과 한산도, 사량도, 욕지도, 갈도, 죽도 등지에서 벌어지는 공동제의다.

    남해안별신굿은 무당의 노래가 뛰어나고 반주악기에 북이 첨가되는 것이 특징이다.

    동해안별신굿과 달리 진행과정에서 무당이 악사와 주고받는 재담이 극히 드물고 사설이 없으며 굿이 진지하다.

    굿 중간에 북을 치는 고수와 이를 지켜보는 마을사람들이 함께 놀이마당을 이루기도 한다.

    굿은 틀맞이, 당산굿, 일월맞이굿, 용왕굿, 부정굿, 가망굿, 제석굿, 서낭굿, 댓굿, 손굿, 염불굿, 군웅굿, 거리굿으로 진행된다.

    춤은 비교적 단조롭고 소박하며 혼자 추는 독무가 많다. 굿의 시작에는 청신악, 끝부분에서는 송신악을 하는데 이때에는 대금으로만 연주한다.

    마을의 평안과 장수를 기원하며 어민들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기를 비는 굿으로 2년에 한번씩 열린다.

    오락성이 적고 이야기는 많지 않으나, 오랜 전통으로 규모가 크며 관중에게 주는 신앙의 신뢰성이 뛰어나다.
  • 1996.7.1
    지정일
    도자기는 흙으로 빚은 그릇을 구워내는 방법에 따라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1235)' onmouseout='dn2()'>도기(陶器)</span>, 자기(瓷器)로 나누어 지는데, 백토 등이 혼합되어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그릇을 사기(자기)라 한다. 사기장이란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2438)' onmouseout='dn2()'>사옹원(司饔院)</span>에서 사기를 제작한던 장인을 일컫는 말이다.<br /><br /> 우리나라 도자기는 고려시대부터 천하제일의 비색청자로서 그 명성을 떨쳤다. 조선시대에는 국가기관인 사옹원(司甕院)에서 자기를 제작하였는데, 경기도에 분원을 설치하여 왕실에서 사용하는 자기를 특별히 제작하였다. 조선 후기 관요(정부 관리하에 도자기를 만드는 곳)가 폐쇄되면서 도공들이 문경, 괴산, 단양 등 지방으로 흩어져 민요(민간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곳)가 번창하였다. <br /><br /> 사기의 제작과정은 사토를 채굴하는 것부터 구워내는 작업까지이다. 우선 모래흙(사토)을 구한 후 물에 넣어 이물질을 제거하는 수비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순수 흙으로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물레작업을 한다. 만들어진 그릇을 가마에 넣고 초벌구이와 유약을 바른 뒤 다시 재벌구이를 해서 구워낸다. 전통적인 나무로 만든 발물레를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는데, 이러한 물레 돌리는 방법이 한국 도자기 장인들의 기술이다.<br /><br /> 사기장은 서민적이면서 활달한 조선분청사기와 단아한 선비의 향을 담고 있는 조선백자와 같이 한국적 정감과 멋을 나타내는 전통공예기술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 2000.7.1
    지정일
    지경다지기는 새 집을 지을 때 집터를 다지는 작업을 말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하는 협동적 노동이며, 재앙을 쫓고 축복하는 의식이 담겨 있다. 상노리지경다지기는 터다지기의 단순한 의미를 넘어 전통적인 농경사회의 생활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철원 상노리지경다지기는 제의, 지경다지기, 여흥놀이의 세 마당으로 나눌 수 있다. 제의는 지경다지기를 하기 전에 땅을 건드림으로써 생길 수 있는 지신의 노여움을 막고자 하는 주술적 의식이다. 지신은 밤에만 활동한다하여 저녁에 횃불을 밝히고, 주인이 제주가 되어 축문을 읽고 고사를 지낸다. 지신제의가 끝나면 지경다지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지경돌을 가운데 놓고 지경줄을 잡아 들었다 놓았다 하며 터를 다진다. 지경을 다지면서 지경소리와 가래질소리의 노동요를 부르는데, 노래의 첫 단락은 지역의 유래와 집터의 환경, 집주인의 내력 등의 내용으로 사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부른다. 지경다지기가 끝나면 여흥놀이로 이어져 밤늦도록 술과 음식을 먹으며 한바탕 논다.

    철원 상노리지경다지기는 농경생활의 전통적 민속문화와 전통의 축제적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 2005.7.1
    지정일
    생칠장(生漆匠)은 생옻으로 목기 등에 칠을 하는 장인이다. 양질의 생칠을 사용하여 목기에 칠을 하면 처음에는 검은색의 칠기제품이 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원래 무늬가 서서히 나타나 은은한 광이 살아날 뿐 아니라 오래되면 될수록 아름답게 변화하기 때문에 생옻칠은 오래전부터 널리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옻칠 산업이 쇠퇴해 감에 따라 생옻칠 기법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보유자 이돈호는 1977년부터 생옻칠을 해 온 장인으로, 신중현(서울시무형문화재 제1호 생옻칠장), 이성구 등 우리나라 생옻칠계 거장들에게 전통기법과 기능을 전수받았다.
  • 1999.7.1
    지정일
    남이 장군은 세종 23년(1441)에 태어나 17세에 무과에 합격하고, 26세에 이시애의 난과 여진족을 격퇴하여 병조판서에 올랐으나 유자광의 모함으로 27세의 젊은 나이로 참수를 당하였다. 남이장군사당제는 남아의 기개를 펴보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장군의 생을 안타깝게 여겨 그의 원혼을 달래주고, 충절을 기리고자 약 300년 전에 사당을 지은 후 해마다 지내는 제사이다. 특히 10월 1일에는 전야제를 비롯하여 큰 굿을 벌이면서 주민들이 근심, 걱정 해소와 쾌복을 빌어 자연스럽게 이 지역의 민속신앙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남이 장군 사당제가 시작되면 걸립패들이 농악을 울리며 집집마다 방문하여 당제와 당굿에 소요되는 경비를 마련하는데, 농악대의 단순한 걸립이라기보다는 무녀가 참여하여 집집마다 축원을 해주는 마을돌기굿에 해당하는 신앙성이 강한 의례이다. 예전의 당굿에서는 꽃을 당집에 모셨다가 본당으로 모셔오는 영신의례로 꽃받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꽃등렬 행사로 발전하여 산천동 당집에서 사당까지 행진하고 사당에서 제를 올린다. 남이장군사당제는 악공들의 제례음악에 맞추어 유식제례로 지내고 이어 무굿이 진행되는데, 강릉단오제나 은산별신제와 그 형태가 비슷하다. 다만 장군행렬은 신꽃을 들고 마을을 한바퀴 돌아오는 것이 사실상 신의 마을 행차에 해당되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마을굿이 사라져 가는 실정에서 남이장군 사당제는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는데 그 의의가 있으며,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로 축제성을 띤 마을제의로 자리잡고 있다.

    ※위 문화재에 대한 상세문의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02-2133-2616)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 1999.7.1
    지정일
    휘몰이잡가는 조선 후기 경기지방에서 서민들에 의해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소리의 하나로, 휘몰이라는 말은 휘몰아치듯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며 잡가는 국악용어로 정식적인 노래에 속하지 않는 노래라는 말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휘모리잡가로는 만학천봉·병정타령·곰보타령·생매잡아·육칠월·기생타령·비단타령·바위타령·맹꽁이타령·한잔 부어라 등이 있다. 노랫말은 서민들의 생활상과 감정이 담겨있는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긴 사설이다.

    현재 경기소리 휘몰이잡가는 박상옥씨가 보유자로 인정받아 전수에 힘쓰고 있다.

    ※위 문화재에 대한 상세문의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02-2133-2616)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 2009.7.1
    지정일
    대장간은 금속[쇠]을 단야하여 전통 농기구 등 각종 연장[도구]을 제작하는 곳으로, 대장장은 전통 농기구 등을 만드는 기술 또는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현재 대장간의 시설로는 풀무, 모루, 정, 메 등이 있으며 대장장은 쇠의 성형,천공, 열처리[담금질] 등을 통해 각종 연장[도구]을 생산하고 있다.

    1960년대 까지만 하여도 다수 존재하였던 대장장은 현재는 산업화에 밀려 대장장의 전통적 제작기법 및 전승에 위기를 맞고 있는데, 전통적인 대장장 제작기능을 이어받아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특히, 성형, 천공, 열처리 기술 등에 있어 전통적인 기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 대장간의 맥을 이어받아 제작기능의 전통성과 수월성이 뛰어나는 등 전통적인 대장장의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 1987.7.2
    지정일
    다대포 후리소리는 해변가에서 멸치잡이 후리질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로서 작업의 순서에 따라 그 동작이 함께 곁들여진다. 토속민요의 하나로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부르며, 지방에 따라서 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다대포 후리소리는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면 다른 여러 사람이 그 노래를 받아 부르는 선후창(先後唱)형식이다. 내용은 그물을 어장으로 옮겨 배에 실으면서 부르는 그물을 배에 싣는 소리, 용왕고사(제사)를 지내며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제, 고깃배의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노젓는 소리, 어부들이 양쪽에서 벼릿줄(그물)을 당기면서 부르는 후리소리, 후리질을 하며 그물을 쪼으면서 부르는 그물터는소리, 멸치를 저장통에 옮기면서 부르는 가래소리, 가래질을 마친 후 ‘쾌지나칭칭나네’를 부르며 즐기는 풍어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다대포 후리소리는 이 지역의 특성을 지닌 민요로서 멸치잡이에 소요되는 어구와 작업의 방법을 재현·보존하고 있어 민속적·음악적·문화적 가치가 높다. 현재 다대포후리소리보존회에서 전승·보급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