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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1966.6.29
    지정일
    나전장은 나무로 짠 가구나 기물 위에 무늬가 아름다운 전복이나 조개껍질을 갈고 문양을 오려서 옻칠로 붙이는 기술이다. 나전칠기의 제작과정은, 나무로 기본 틀인 백골을 짜고 그 표면을 사포로 문지르거나 틈새를 메워 고르게 한 다음 자개를 붙인다. 그 후 연마, 옻칠, 광내기 과정을 거쳐 완성한다. 자개로 무늬를 만드는 방법에는 자개를 실처럼 잘게 자른 '상사'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드는 끊음질 기법과, 자개를 문질러 얇게 만들어 국화, 대나무, 거북이 등 각종 도안 문양을 만드는 줄음질 기법이 있다. 나전 무늬는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는 모란·국화·연꽃 등의 식물무늬가, 조선 중기에는 화조·쌍학·포도· 사군자 등의 무늬가 주로 사용되었다.<br /><br />나전칠기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 옻나무 수액인 칠과 자개이다. 자개의 재료는 전복, 소라, 진주조개가 주로 사용되며, 남해안과 제주도 근해에서 나는 것이 아름답고 우수하다. 현재 나전칠기로 가장 유명한 지역은 경남 통영이며 강원도 원주는 우수한 옻칠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 1966.6.29
    지정일
    진주삼천포농악은 진주·삼천포 지역에 전래되고 있는 농악으로 영남농악에 속한다.<br /><br /> 진주삼천포농악에 쓰이는 악기에는 꽹과리, 징, 장구, 북, 법고가 있으며, 편성은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808)' onmouseout='dn2()'>기수(旗手)</span>와 쇠, 징, 북, 장구, 법고 그리고 양반과 포수로 되어 있다. 모두가 흰바지와 색깔있는 저고리의 농악복에 색띠를 두루고, 모자(상모)를 쓴 채 연주하는데 개인놀이가 비교적 발달하였다. 판굿에서는 채상모놀이가 돋보이며, 군사놀이인 팔진해식진(八陣解式陣)굿이 특이하다. 빠른 가락을 모는 경우가 많아 힘차고 가락이 다채로워 흥겹다.<br /><br /> 진주삼천포농악은 판굿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어 예술적 가치가 높으며, 팔진법이라든가 버꾸놀이, 상쇠놀이, 무동놀이(사내아이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 등의 개인기가 뛰어나다.
  • 1976.6.30
    지정일
    줄타기는 공중에 맨 줄 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와 발림을 섞어가며 여러 가지 재주를 보여주는 놀이이다. 줄 위를 마치 얼음지치듯 미끌어지며 나가는 재주라 하여 '어름' 또는 '줄얼음타기'라고도 한다. 주로 음력 4월 15일이나 단오날, 추석 등 명절날에 연희되었으며, 개인의 초청에 응해서 돈을 받고 놀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줄타기 놀이의 유래는 서역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중국 한나라 때 발생했다는 설이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줄타기는 조선시대에 두 계통으로 나뉘어 발달했다. 하나는 주로 양반층을 위해 공연되었던 광대줄타기로 순수하게 줄타기로만 구성되어 기술의 종류나 솜씨에서 뛰어났다. 다른 하나는 남사당패의 어름줄타기로 서민들을 위해 공연되었던 만큼 재담이나 오락성이 뛰어났다.<br /><br /> 줄타기는 줄광대와 어릿광대, 삼현육각잡이로 편성된다. 줄광대는 주로 줄 위에서 놀고 어릿광대는 땅 위에 서서 재담을 하며 삼현육각잡이는 줄 밑 한편에 한 줄로 늘어앉는다. 줄의 높이는 일정하지 않으나 대략 3m이고, 길이는 10m정도이다. 줄타기는 주로 훈련이 잘 된 남자가 했지만 때로는 여자가 타는 수도 있었다. 줄 위에 올라갈 때는 손에 부채나 수건을 들었는데 동작이 멋있어 보이기 위한 것도 있지만,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사용되었다. 줄을 탈 때에는 아래에 있는 잽이들이 장구, 피리, 해금 등으로 흥을 돋우어 광대들의 동작을 율동적이고 날렵하게 만들었다. 줄타기의 기교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여 가지로, 줄 위에서 걷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동작이며 뒤로 걸어가기, 줄 위에서 한 발로 뛰기, 걸터앉고 드러눕기도 하며 때로는 재주를 넘고 떨어지는 척 해서 구경꾼들을 놀라게 한다. 줄타기를 할 때에는 단순히 줄만 타지 않고, 노래를 부르거나 파계승과 타락한 양반을 풍자한 이야기로 익살을 떨고, 바보짓이나 곱추짓, 여자의 화장하는 모습들을 흉내내 구경꾼들을 즐겁게 했다. <br /><br />우리나라의 줄타기는 외국의 줄타기와 달리 줄만 타는 몸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노래와 재담을 곁들여 줄타는 사람과 구경꾼이 함께 어우러진 놀이판을 이끄는데 그 의의가 있다.
  • 1987.7.1
    지정일
    남해안별신굿은 경상남도 거제도를 중심으로 통영시 일대의 어촌과 한산도, 사량도, 욕지도, 갈도, 죽도 등지에서 벌어지는 공동제의다.

    남해안별신굿은 무당의 노래가 뛰어나고 반주악기에 북이 첨가되는 것이 특징이다.

    동해안별신굿과 달리 진행과정에서 무당이 악사와 주고받는 재담이 극히 드물고 사설이 없으며 굿이 진지하다.

    굿 중간에 북을 치는 고수와 이를 지켜보는 마을사람들이 함께 놀이마당을 이루기도 한다.

    굿은 틀맞이, 당산굿, 일월맞이굿, 용왕굿, 부정굿, 가망굿, 제석굿, 서낭굿, 댓굿, 손굿, 염불굿, 군웅굿, 거리굿으로 진행된다.

    춤은 비교적 단조롭고 소박하며 혼자 추는 독무가 많다. 굿의 시작에는 청신악, 끝부분에서는 송신악을 하는데 이때에는 대금으로만 연주한다.

    마을의 평안과 장수를 기원하며 어민들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기를 비는 굿으로 2년에 한번씩 열린다.

    오락성이 적고 이야기는 많지 않으나, 오랜 전통으로 규모가 크며 관중에게 주는 신앙의 신뢰성이 뛰어나다.
  • 1996.7.1
    지정일
    도자기는 흙으로 빚은 그릇을 구워내는 방법에 따라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1235)' onmouseout='dn2()'>도기(陶器)</span>, 자기(瓷器)로 나누어 지는데, 백토 등이 혼합되어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그릇을 사기(자기)라 한다. 사기장이란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2438)' onmouseout='dn2()'>사옹원(司饔院)</span>에서 사기를 제작한던 장인을 일컫는 말이다.<br /><br /> 우리나라 도자기는 고려시대부터 천하제일의 비색청자로서 그 명성을 떨쳤다. 조선시대에는 국가기관인 사옹원(司甕院)에서 자기를 제작하였는데, 경기도에 분원을 설치하여 왕실에서 사용하는 자기를 특별히 제작하였다. 조선 후기 관요(정부 관리하에 도자기를 만드는 곳)가 폐쇄되면서 도공들이 문경, 괴산, 단양 등 지방으로 흩어져 민요(민간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곳)가 번창하였다. <br /><br /> 사기의 제작과정은 사토를 채굴하는 것부터 구워내는 작업까지이다. 우선 모래흙(사토)을 구한 후 물에 넣어 이물질을 제거하는 수비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순수 흙으로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물레작업을 한다. 만들어진 그릇을 가마에 넣고 초벌구이와 유약을 바른 뒤 다시 재벌구이를 해서 구워낸다. 전통적인 나무로 만든 발물레를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는데, 이러한 물레 돌리는 방법이 한국 도자기 장인들의 기술이다.<br /><br /> 사기장은 서민적이면서 활달한 조선분청사기와 단아한 선비의 향을 담고 있는 조선백자와 같이 한국적 정감과 멋을 나타내는 전통공예기술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 1969.7.4
    지정일
    승무(僧舞)는 승복을 입고 추는 춤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춤 가운데 하나이다. 승무는 흔히 무복(舞服) 때문에 중춤이라고도 하지만 불교의식에서 승려가 추는 춤과는 다르다. 승무의 유래는 불교문화사적 입장에서 본 불교설과 김만중 소설 중 구운몽에서 나왔다는 설, 탈놀음 중에서 노장춤과 파계승의 번뇌에서 비롯된 춤이라는 설 중 어느 것이 확실한지 알 수 없으나, 1910년대쯤 기방에서 발전되었다고 한다.

    춤의 형태는 의식성이나 종교성, 생산성, 극성, 놀이성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홀춤[독무]으로, 춤사위가 살풀이춤과 유사함을 지니고 있어 기녀들에 의해 예술적인 춤의 형식이 갖추어졌다고 보여진다.

    승무는 흰(검은) 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치고 흰 고깔을 착용한다. 승무는 염불, 도드리, 타령, 굿거리, 자진모리 등 장단의 변화에 따라 춤을 추는데, 장삼소매를 뿌리는 동작이나 장삼자락을 휘날리게 하는 팔동작은 춤 공간의 백미를 나타낸다. 반주악기로는 피리, 대금, 해금, 장구, 북이 사용된다.

    승무는 달고 어르고 맺고 푸는 리듬의 섬세한 표현과 초월의 경지를 아우르는 춤사위의 오묘함이 조화된 춤이다.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높은 차원에서 극복하고 승화시킨 춤이라 할 수 있다.
  • 1969.7.4
    지정일
    나주의 샛골나이는 전남 나주 샛골의 무명짜는 직녀 또는 무명짜는 일에 대한 통칭이다. 목화를 원료로 만든 무명은 조선 초기부터 화폐의 구실을 하거나 일본과의 중요한 교역품 중에 하나였다.

    무명의 제작과정은 재배와 수확, 씨앗기와 솜타기, 고치말기, 실잣기, 무명날기, 베매기, 무명짜기 순으로 이루어진다. 8월 중순 목화를 타고, 볕에 말린 후 씨아틀로 씨를 빼내는 씨앗기를 한다.

    솜활을 이용하여 솜을 타고, 말대로 비벼 고치를 만든다. 물레를 이용하여 실을 뽑아 가락에 감는 실잣기 후 실의 굵기에 의해 한 폭에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하는 무명날기를 한다.

    풀먹이기 과정인 베매기 후에는 베틀을 이용하여 직물을 짜면 무명이 완성된다. 나주의 나주세목 또는 샛골목은 오늘날의 12승 무명으로 유명하다.
  • 2015.7.8
    지정일
    「선자장(扇子匠)」은 전통 부채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부채는 형태상으로 크게 둥근 모양의 부채와 접고 펼 수 있는 접(摺)부채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접부채인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5965)' onmouseout='dn2()'>합죽선(合竹扇)</span>은 현재까지 전승되는 최고 수준의 정교함과 세련미를 갖춘 부채로서, 고려시대부터 나전, 금속, 칠, 옥공예 등과 접목되어 나라를 대표하는 공예품이었다. <br /><br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5964)' onmouseout='dn2()'>합죽(合竹)</span>이란 대나무의 겉대와 겉대를 붙여서 만든 것으로 고려시대에 대나무의 주산지인 전남 담양에서 처음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합죽선은 조선시대에는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에서 선자청(扇子廳)이라는 관청의 장인들이 주로 제작하였고 외교나 대외무역에도 활용되었다.
  • 1975.7.12
    지정일
    경기민요란 서울과 경기도 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이지만,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경기민요는 '경기좌창'이라 불리는 '경기긴잡가'이다.<br /><br /> 잡가는 가곡이나 가사와 같은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4661)' onmouseout='dn2()'>정가(正歌)</span>와 대비되는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3030)' onmouseout='dn2()'>속가(俗歌)</span>라는 뜻으로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속가 중에서도 긴형식의 노래를 앉아서 부르는 것을 잡가라 한다. 경기잡가 가운데 느린 장단으로 된 12잡가를 긴잡가라 한다. 경기긴잡가는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소춘향가, 선유가, 집장가, 형장가, 평양가, 십장가, 출인가, 방물가, 달거리 등 12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산가는 산천경치를 노래한 것이고, 소춘향가, 집장가, 십장가, 형장가는 판소리 춘향가의 내용을 따서 사설을 지은 것이며, 적벽가는 판소리 적벽가와 비슷하고 제비가는 판소리 흥보가와 내용이 통하지만 이들 잡가가 판소리 곡조로 된 것은 아니고 다만 일부 사설만 따왔을 뿐이다. 평양가, 출인가, 방물가, 달거리는 서민적인 인정, 사랑 등을 노래하고 있다. 장단은 흔히 느린 6박 도드리장단이나 좀 느린 3박 세마치장단으로 된 경우가 많다. 선율은 서도소리제인 수심가토리와 경기소리제인 경토리가 뒤섞인 특이한 음조로 되어 있다. <br /><br /> 경기긴잡가의 특징은 경기 특유의 율조로서 대개 서경적 혹은 서정적인 긴사설로 비교적 조용하고 은근하며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서정적인 표현이 많다. 경기잡가는 조선시대 서울 장안의 소시민들의 모임장소인 ‘공청’ 또는 ‘깊은사랑’을 통해 12잡가가 발생하였으므로 공청소리문화의 특색을 잘 담고 있다.
  • 2016.7.14
    지정일
    ‘제다’(製茶)는 차나무의 싹, 잎, 어린줄기를 찌거나 덖거나 발효 등을 거쳐 재료로 만든 후 비비기, 찧기, 압착, 건조 등의 공정을 통해 마실 수 있는 차(茶)로 만드는 전통기술을 말한다.<br /><br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4797)' onmouseout='dn2()'>제다(製茶)</span>에 관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조선후기 다서(茶書)에 이르기까지 나타난다.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4797)' onmouseout='dn2()'>제다(製茶)</span> 기법은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하게 변화․발전하여 오늘날에도 활발하게 전승·통용되고 있다. 차 제조 방법 및 음다 방식 등에서도 우리나라만의 고유성이 있다.<br /><br /><br /><br />※ 국가무형문화재 ‘제다’는 한반도 남부 지방의 차산지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차 제조 기술이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일반적으로 공유·전승되고 있으므로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음.
  • 1970.7.22
    지정일
    광주칠석고싸움놀이는 주로 전라남도 일대(현재의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칠석마을)에서 정월 대보름 전후에 행해지는 격렬한 남성집단놀이이다. 고싸움의 고란 옷고름, 고맺음, 고풀이 등의 예에서 보듯이 노끈의 한 가닥을 길게 늘여 둥그런 모양으로 맺은 것을 말하며, 2개의 고가 서로 맞붙어 싸움을 벌인다 해서 고싸움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측된다.<br /><br />고줄은 줄머리에 둥근 고를 만들어 세우고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 대목을 속에 넣어 팔뚝만한 동아줄로 칭칭 감아 고줄이 빳빳하도록 하고, 둥글게 구부려 묶어서 고몸체를 만든다. 고몸체도 단단해야 하므로 큰 통나무를 속에 넣고 동아줄로 감아 곧은 줄을 만든다. 고머리나 고몸체 줄은 사람이 걸터앉아도 두 다리가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크다. 7∼8개의 통나무는 고를 메거나 고가 서로 부딪칠 때 떠받치고 밀어주는 구실도 한다. 고가 만들어지면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공동으로 마을 앞에서 간단한 고사를 지내고 집집마다 돌며 마당밟이굿을 한다. 고를 메고 싸움터로 나가기 전에 마을을 돌며 농악으로 흥을 돋운다. 양쪽의 고가 서로 접근하면 고를 높이 들었다 내렸다 하며 기세를 올린다. 놀이꾼은 줄패장, 고를 메는 몰꾼, 고의 몸과 꼬리를 잡는 꼬리줄잡이, 농악대 등으로 구성된다. 우두머리인 줄패장은 고 위에 앉아 싸움을 총지휘하고, 부장들은 깃발을 휘둘러 기세를 북돋운다. 상대방의 고를 덮쳐 땅에 닿게 하면 이기는데,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일단 고를 풀어서 줄로 만들어 2월 1일에 줄다리기로 승부를 내기도 한다. 고싸움은 줄다리기와 마찬가지로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의식의 한 형태이며, 놀이를 통하여 마을사람들의 협동심과 단결력을 다지는 집단놀이로서 의의를 지닌다.<br /><br /> ※ 명칭변경(고싸움놀이 → 광주칠석고싸움놀이/ 명칭변경일 : 2005.9.23.) : 고싸움놀이는 원래 광주광역시 남구(구 전남 광산군 대촌면) 칠석동 마을에 전하는 민속놀이로 오늘날 각 지역마다 형태와 규모가 유사한 다양한 고싸움놀이로 인해 지정 명칭상 변별성이 없어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지역을 병기한 &quot;광주칠석고싸움놀이&quot;로 변경하였다.
  • 1970.7.22
    지정일
    탈춤은 조선 전기까지 각 지방에서 행해지던 가면놀이이다.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궁중의 관장하에 “산대”라 불리는 무대에서 상연되던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2493)' onmouseout='dn2()'>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span>의 형태로, 인종 12년(1634)에 궁중에서의 상연이 폐지되자 민중에게 유입되어 전국으로 전파되었다. 황해도탈춤은 황해도의 평산과 기린의 남북을 중심으로 북쪽의 봉산탈춤형과 남쪽의 해주탈춤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강령탈춤은 해주탈춤형으로 분류된다. <br /><br />강령탈춤은 매년 단오에 행해지는데 사자춤·말뚝이춤·목중춤·상좌춤·양반과 말뚝이춤·노승과 취발이춤·영감과 할미광대춤의 7개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놀이에 앞서 탈과 의상을 갖추고 음악을 울리면서 공연장소까지 행렬하는 길놀이를 한다. 등장인물은 마부·사자·원숭이·말뚝이·목중·상좌·맏양반·둘째양반·재물대감·도령·영감·할미·용산삼개집·취발이·노승·소무 등 모두 20명이다. 파계승에 대한 풍자와 양반계급에 대한 모욕, 일부처첩의 삼각관계와 서민의 생활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춤은 느린 사위로 장삼소매를 고개 너머로 휘두르는 장삼춤이 주가 되며, 장단에는 도드리, 타령, 자진굿거리가 주로 쓰이지만 소리의 사설이 30여 가지나 되고 소리마다 장단이 특이하다. <br /><br />강령탈춤의 내용 중에서 양반 3형제가 나와 양반의 근본을 찾고 말뚝이를 부르거나 말뚝이가 재담하는 과장은 경남의 오광대와 비슷하고, 할미광대가 물레를 돌리는 장면은 가산오광대와 매우 유사한데, 이러한 유사점은 탈춤의 전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사실적인 얼굴 모습을 묘사한 인물탈을 쓰고 장삼춤을 추는 아담하고 부드러운 점이 같은 황해도 탈춤인 봉산탈춤과 다른 특징이다.
  • 1970.7.22
    지정일
    조각장은 금속에 조각을 하는 기능이나 그 기능을 가진 사람으로, 조이장이라고도 한다. 금속조각은 금속제 그릇이나 물건의 표면에 무늬를 새겨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br /><br />출토된 유물에 의하면 금속조각은 청동기시대에 처음 발견되었고, 삼국시대에는 여러 가지 조각기법이 사용되었으며, 고려시대에 크게 발전하였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240)' onmouseout='dn2()'>경공장(京工匠)</span>의 금속공예 분야가 세분화되면서 조각장이 따로 설정되어 있었다.<br /><br />금속조각 기법으로는 평각(平刻)·투각·고각·육각·상감입사(象嵌入絲) 등이 있다. 평각이란 일명 음각이라고도 하는데 평면에 여러 가지 문양을 쪼아서 나타낸다. 투각은 바탕면의 문양에 따라 필요없는 부분을 정으로 쪼거나 오려서 빼낸다. 고각은 바탕면에 무늬를 도드라지게 튀어나오도록 한다. 육각은 가장 어려운 기법으로 기물의 외면과 내면에 정으로 두들기거나 오그려서 무늬를 나타낸다. 상감입사는 바탕에 홈을 파고 그 자리에 금·은·오동선 등을 넣은 후 빠지지 않게 다진다. 재료는 금·은·철·석·연·아연 등으로 다양하나 주로 은을 사용한다. 무늬는 산수·<span class='xml2' onmouseover='up2(6249)' onmouseout='dn2()'>화조(花鳥)</span>·구름과 용·덩굴무늬 등이 일반적이고, 조선말 이후에는 아름답거나 좋은 뜻을 지닌 문양을 주류를 이룬다.
  • 2012.7.23
    지정일
    '법성포 단오제'는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 일대에서 단오 무렵 지역 주민에 의해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민속축제이다. 법성포에는 조선시대 한양으로 올라가는 세곡을 관리하는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4924)' onmouseout='dn2()'>조창(漕倉)</span>이 있었으며, 조기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5771)' onmouseout='dn2()'>파시(波市)</span>의 중심지였기에 오래전부터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2601)' onmouseout='dn2()'>상권(商圈)</span>이 발달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파시가 형성되는 시기에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6451)' onmouseout='dn2()'>난장(亂場)</span>이 크게 섰으며, 이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단오제가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다.<br /><br />특히, 뱃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용왕제, 부녀자들이 중심으로 즐겼던 <span class='xml2' onmouseover='up2(2856)' onmouseout='dn2()'>선유(船遊)</span>놀이를 비롯해 '숲쟁이'(법성포 숲)에서 벌어지는 예인들의 경연행사는 법성포 단오제의 지역성과 전통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았다. 또 과거의 전통을 기반으로 현재의 주민이 향유하고 있는 생활·문화적 가치를 주목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 1988.8.1
    지정일
    임실 필봉농악은 필봉리에 전승되고 있는 농악으로 호남좌도농악에 속한다. 필봉마을에는 예로부터 당산굿·마당밟기 정도의 단순한 농악이 전승되어 왔는데, 오늘날과 같은 높은 수준이 된 것은 1920년경에 상쇠(패의 지도자 격으로 꽹과리를 가장 잘 치는 사람) 박학삼을 마을로 초빙하여 그의 농악을 배우면서부터라고 한다.<br /><br /> 필봉농악의 농악수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르는데, 쇠잡이(꽹과리나 징을 치는 사람)만 상모(털이나 줄이 달린 농악에서 쓰는 모자)를 쓰며 나머지는 고깔을 쓴다. 농기, 용기(그릇), 영기(깃발), 긴 쇠나발, 사물(꽹과리, 징, 북, 장구), 법고(불교의식 때 쓰는 작은 북), 잡색(대포수, 창부<남자광대>, 양반, 조리중<삼태기를 맨 중>, 쇠채만 든 농구, 각시, 화동과 무동<사내아이>)으로 편성된다.<br /><br /> 농악의 종류에는 섣달 그믐의 매굿, 정초의 마당밟기(풍물을 치며 집집마다 도는 것), 당산제굿(당산에서 마을을 위해 제사지낼 때 농악을 치며 노는 것), 보름굿과 징검다리에서 치는 노디굿, 걸궁굿, 문굿, 농사철의 두레굿, 기굿과 판굿이 있다. 이 중에서 판굿은 가장 예술성이 뛰어나다. 뒷굿에 편성되는 영산가락은 가진영산, 다드래기영산(상쇠가 부포시범을 보임), 미지기영산, 재넘기영산(상쇠가 쇠시범을 보임) 및 군영놀이영산(개인놀이와 비슷함)으로 매우 세분화되어 있고 느린 편이다. <br /><br /> 임실 필봉농악은 쇠가락(농악의 대표격인 꽹과리 가락)의 맺고 끊음이 분명하여 가락이 힘차고 씩씩하며, 개개인의 기교보다 단체의 화합과 단결을 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