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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AL HERITAGE

Everlasting Legacies of Korea

  • 1995.6.30
    지정일
    청송에서 전통적인 과정으로 종이를 생산했던 곳인 지소는 안덕면 지소리와 파천면 신기리, 중평리 등 모두 세 곳이 있었다.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2리 감곡마을은 참닥나무가 많고 물이 맑아, 오래전부터 제지 마을로 알려져 왔다.

    이 마을에서는 1920년대까지 20여 가구가 한지를 생산했으며, 제지를 생업으로 하지 않는 주민들도 부업으로 삼았다. 그러나 유리창의 보급으로 창호지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고, 한지를 주로 사용하던 각종 의례도 현대화되는 등, 한지 소비가 급감하여 한지 공방은 크게 위축되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대 기능 보유자인 이상룡은 송강리로 이주하여 그의 5대조 원천 이석일로부터 시작된 가업을 이어오며,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3호 청송 한지장으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그의 장남인 이자성이 가업을 이어받아 청송 한지장 기능 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신기리 감곡마을에 있는 벽진이씨 재실인 삼체정은 가업을 시작한 원천 이석일과 그의 아우인 감천 이재일, 석천 이향일 삼형제의 재실 겸 정자이다.

    최근 화선지와 소지, 책지, 화가들이 쓰는 벽보지 등으로 전통한지의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3호 청송 한지장 기능 보유자인 이자성은 수입 닥나무를 쓰지 않고 닥나무 산지인 청송군 일대와 예천 용궁 등지에서 원료를 수집하여 사용한다.

    이자성은 공방 근처에 6,000여㎡의 닥나무밭을 일구었을 뿐만 아니라, 청송한지체험관을 조성하여 청송 한지 보급에 힘쓰고 있다
  • 1995.6.30
    지정일
    삼베는 베라고도 불리며 한자어로는 마·마포·포 라고도 한다. 삼베는 신석기시대의 궁산패총에서 뼈로 된 바늘에 마사가 감긴 것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기술이 발달되어 중국으로 수출되었고 문물교환의 수단으로 모시와 함께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면 생산이 시작되면서 삼베의 생산이 약간 줄게된다.

    제작과정은 우선 삼나무를 재배해서 수확을 한 후, 잎을 훑은 삼단을 쪄서 껍질을 벗기고 햇볕에 말린다.

    삼을 쪼갠 후 실을 한올 한올 길게 이은 다음 베 한필의 길이와 폭에 따라 몇 올의 실이 들어갈지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풀 먹이기 과정을 거친 후 베틀을 이용해 직물을 짠다.

    전통기법으로 한 마을에서 집단적으로 삼베짜기가 전승되고 있는 지역은 전국적으로 드문 사례이므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2006.6.30
    지정일
    1935년 부안에서 태어난 김봉기는 어린 시절 석암 정경태와 한마을에 살면서 가사를 배웠으며, 이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고민순으로 부터도 사사받았다.

    김봉기는 청이 맑고 고요할 뿐 아니라 고음 처리에도 끊길 듯 하면서도 끊기지 않고 구슬이 굴러가듯 유연하게 소리를 이어가는 느낌이 특징이다.

    김봉기는 전주전국남여시조경영대회, 전국남여시조경창대회 등 다수 대회에서 입상하였다.
  • 2001.6.30
    지정일
    안섬 당굿은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굿의 한 형태이다. 문헌상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약 35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송악면 안섬은 원래 당진군의 북서쪽에 있는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된 곳이다. 이곳의 어민들은 고기잡이를 나가기 전에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당제를 지냈다.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첫번째 진일(辰日-병진일(丙辰日)제외)에 당굿을 올리는데 격년제로 대제(大祭)</span>와 소제(小祭)를 나누어 지낸다. 소제는 당제(堂祭)</span>의 형태로, 대제 때에는 무당이 참여하는 당굿 형태로 진행된다.

    안섬 당제의 구조와 성격은 서해안 어촌마을의 공동체 신앙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민속학적 의미와 가치가 매우 크다.
  • 2000.7.1
    지정일
    지경다지기는 새 집을 지을 때 집터를 다지는 작업을 말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하는 협동적 노동이며, 재앙을 쫓고 축복하는 의식이 담겨 있다. 상노리지경다지기는 터다지기의 단순한 의미를 넘어 전통적인 농경사회의 생활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철원 상노리지경다지기는 제의, 지경다지기, 여흥놀이의 세 마당으로 나눌 수 있다. 제의는 지경다지기를 하기 전에 땅을 건드림으로써 생길 수 있는 지신의 노여움을 막고자 하는 주술적 의식이다. 지신은 밤에만 활동한다하여 저녁에 횃불을 밝히고, 주인이 제주가 되어 축문을 읽고 고사를 지낸다. 지신제의가 끝나면 지경다지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지경돌을 가운데 놓고 지경줄을 잡아 들었다 놓았다 하며 터를 다진다. 지경을 다지면서 지경소리와 가래질소리의 노동요를 부르는데, 노래의 첫 단락은 지역의 유래와 집터의 환경, 집주인의 내력 등의 내용으로 사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부른다. 지경다지기가 끝나면 여흥놀이로 이어져 밤늦도록 술과 음식을 먹으며 한바탕 논다.

    철원 상노리지경다지기는 농경생활의 전통적 민속문화와 전통의 축제적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 2005.7.1
    지정일
    생칠장(生漆匠)은 생옻으로 목기 등에 칠을 하는 장인이다. 양질의 생칠을 사용하여 목기에 칠을 하면 처음에는 검은색의 칠기제품이 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원래 무늬가 서서히 나타나 은은한 광이 살아날 뿐 아니라 오래되면 될수록 아름답게 변화하기 때문에 생옻칠은 오래전부터 널리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옻칠 산업이 쇠퇴해 감에 따라 생옻칠 기법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보유자 이돈호는 1977년부터 생옻칠을 해 온 장인으로, 신중현(서울시무형문화재 제1호 생옻칠장), 이성구 등 우리나라 생옻칠계 거장들에게 전통기법과 기능을 전수받았다.
  • 1999.7.1
    지정일
    남이 장군은 세종 23년(1441)에 태어나 17세에 무과에 합격하고, 26세에 이시애의 난과 여진족을 격퇴하여 병조판서에 올랐으나 유자광의 모함으로 27세의 젊은 나이로 참수를 당하였다. 남이장군사당제는 남아의 기개를 펴보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장군의 생을 안타깝게 여겨 그의 원혼을 달래주고, 충절을 기리고자 약 300년 전에 사당을 지은 후 해마다 지내는 제사이다. 특히 10월 1일에는 전야제를 비롯하여 큰 굿을 벌이면서 주민들이 근심, 걱정 해소와 쾌복을 빌어 자연스럽게 이 지역의 민속신앙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남이 장군 사당제가 시작되면 걸립패들이 농악을 울리며 집집마다 방문하여 당제와 당굿에 소요되는 경비를 마련하는데, 농악대의 단순한 걸립이라기보다는 무녀가 참여하여 집집마다 축원을 해주는 마을돌기굿에 해당하는 신앙성이 강한 의례이다. 예전의 당굿에서는 꽃을 당집에 모셨다가 본당으로 모셔오는 영신의례로 꽃받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꽃등렬 행사로 발전하여 산천동 당집에서 사당까지 행진하고 사당에서 제를 올린다. 남이장군사당제는 악공들의 제례음악에 맞추어 유식제례로 지내고 이어 무굿이 진행되는데, 강릉단오제나 은산별신제와 그 형태가 비슷하다. 다만 장군행렬은 신꽃을 들고 마을을 한바퀴 돌아오는 것이 사실상 신의 마을 행차에 해당되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마을굿이 사라져 가는 실정에서 남이장군 사당제는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는데 그 의의가 있으며,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로 축제성을 띤 마을제의로 자리잡고 있다.

    ※위 문화재에 대한 상세문의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02-2133-2616)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 1999.7.1
    지정일
    휘몰이잡가는 조선 후기 경기지방에서 서민들에 의해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소리의 하나로, 휘몰이라는 말은 휘몰아치듯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며 잡가는 국악용어로 정식적인 노래에 속하지 않는 노래라는 말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휘모리잡가로는 만학천봉·병정타령·곰보타령·생매잡아·육칠월·기생타령·비단타령·바위타령·맹꽁이타령·한잔 부어라 등이 있다. 노랫말은 서민들의 생활상과 감정이 담겨있는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긴 사설이다.

    현재 경기소리 휘몰이잡가는 박상옥씨가 보유자로 인정받아 전수에 힘쓰고 있다.

    ※위 문화재에 대한 상세문의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02-2133-2616)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 2009.7.1
    지정일
    대장간은 금속[쇠]을 단야하여 전통 농기구 등 각종 연장[도구]을 제작하는 곳으로, 대장장은 전통 농기구 등을 만드는 기술 또는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현재 대장간의 시설로는 풀무, 모루, 정, 메 등이 있으며 대장장은 쇠의 성형,천공, 열처리[담금질] 등을 통해 각종 연장[도구]을 생산하고 있다.

    1960년대 까지만 하여도 다수 존재하였던 대장장은 현재는 산업화에 밀려 대장장의 전통적 제작기법 및 전승에 위기를 맞고 있는데, 전통적인 대장장 제작기능을 이어받아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특히, 성형, 천공, 열처리 기술 등에 있어 전통적인 기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 대장간의 맥을 이어받아 제작기능의 전통성과 수월성이 뛰어나는 등 전통적인 대장장의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 1987.7.2
    지정일
    다대포 후리소리는 해변가에서 멸치잡이 후리질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로서 작업의 순서에 따라 그 동작이 함께 곁들여진다. 토속민요의 하나로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부르며, 지방에 따라서 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다대포 후리소리는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면 다른 여러 사람이 그 노래를 받아 부르는 선후창(先後唱)형식이다. 내용은 그물을 어장으로 옮겨 배에 실으면서 부르는 그물을 배에 싣는 소리, 용왕고사(제사)를 지내며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제, 고깃배의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노젓는 소리, 어부들이 양쪽에서 벼릿줄(그물)을 당기면서 부르는 후리소리, 후리질을 하며 그물을 쪼으면서 부르는 그물터는소리, 멸치를 저장통에 옮기면서 부르는 가래소리, 가래질을 마친 후 ‘쾌지나칭칭나네’를 부르며 즐기는 풍어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다대포 후리소리는 이 지역의 특성을 지닌 민요로서 멸치잡이에 소요되는 어구와 작업의 방법을 재현·보존하고 있어 민속적·음악적·문화적 가치가 높다. 현재 다대포후리소리보존회에서 전승·보급에 힘쓰고 있다.
  • 1979.7.3
    지정일
    한산소곡주는 한산지방의 이름난 술로서 빛깔은 청주와 같다. 백제 때의 궁중술로서 백제 유민들이 나라를 잃고 그 슬픔을 잊기 위해 빚어 마셨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 가장 많이 알려진 술로『동국세시기』·『경도잡지』·『시의전서』·『규합총서』등에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다.

    소곡주를 만드는 방법은 찹쌀을 빚어 100일 동안 익힌다. 이때 며느리가 술맛을 보느라고 젓가락으로 찍어 먹다보면 저도 모르게 취하여 일어서지도 못하고 앉은뱅이처럼 엉금엉금 기어다닌다고 하여 ‘앉은뱅이술’이라고도 한다.

    한산소곡주는 술맛이 독특한 뛰어난 민속주로 기능보유자 우희열씨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 2009.7.3
    지정일
    강하주는 과하주라고도 한다. 건강증진을 위한 술로 첨가하는 약재와 지역에 따라 독특한 맛과 향을 살린 우리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 민속주이다. 일제의 주세법과 개발시대의 편협한 논리로 대부분의 우수한 전통주가 사라지고 말았다. 강하주도 예외일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문화의 한 요소인 전통주를 찾고 지키고 키워나가는 일은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성 강하주’는 보성군 회천면 지역을 기반으로 전승되어온 전통주로 향과 맛이 진하고 숙취가 없으며, 마실 때 부드럽고 뒷맛이 개운하다. 재료로 밀, 보리, 멥쌀, 찹쌀 등 주곡(主穀)이 다 들어가는 술로 전국적으로도 유래가 드물다. 특히, 보리를 사용하여 증류주를 만드는 전라도 지역의 특징적인 기법을 간직하고 있다. 양조기법상으로 밑술, 덧술, 증류주 첨가 등 중양(重釀) 후 혼양(混釀)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만 선진 양조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회천면지역에서 전승 작업을 하는 도화자씨는 16세(1963년)부터 어머니로부터 배워왔고 그 어머니는 또한 외할머니로부터 배워온 즉 3대에 걸쳐 전승되어온 강하주 전승자이다. 보성 강하주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시판되는 희석식 소주에 밀려 중간에 약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전통주 맥잇기 사업의 일환으로 온전히 복원하여 전승하고 있고, 일반 대중의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보성 강하주는 전통의 보편성과 지역적 독창성을 지니고 있는 술이다. 그리고 현대의 과학적인 분석에 의해서도 건강증진에 도움이 되는 약주로 선인들의 지혜와 과학성이 입증되었으며, 지역적 전통을 충실히 이어오고 있다.
  • 1993.7.6
    지정일
    대금장이란 삼금(대금·중금·소금) 가운데 하나인 대금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 또는 기술을 말한다. 대금은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로 ‘저’ 혹은 ‘젓대’라고도 한다.

    대금 제작에 사용되는 재료로는 황죽(黃竹)이나 쌍골죽(雙骨竹)이 쓰인다.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황죽 또는 쌍골죽을 불에 구워 기름을 제거하고, 구부러진 부분을 바로 잡아 약 2개월간 건조시킨다. 이어 대나무 안에 소금물을 부어 약 24시간 경과시킨 다음 소금물은 제거하여 10일간 건조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대나무에 구멍을 뚫고 갈라짐을 방지하기 위해 마디 위치에 따라 10군데를 낚시줄로 동여맨다. 구멍에는 취구(吹ㅁ)·청공(淸孔)지공(指孔)칠성공(七星孔)·청가리개가 있는데, 취구는 입김을 불어넣는 곳이며, 청공은 떨림판 역할을 하는 갈대의 속껍질을 붙이는 곳이다. 지공은 손가락으로 음정을 조절하며, 칠성공은 전체 음정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 1989.7.6
    지정일
    가야금산조는 가야금으로 연주하도록 짜여진 산조를 가리킨다. 산조란 악기를 혼자서 연주하는 형식을 말하며, 느린 장단으로 시작하여 차츰 빠른 장단으로 바뀌는데, 이는 듣는 사람을 서서히 긴장시키면서 흥겨움을 끌어올리게 한다.

    가야금산조는 4∼6개의 장단으로 짜여진다. 각 장단의 느낌을 살펴보면 진양조는 아주 느려서 서정적이고, 중모리는 안정적이며, 중중모리는 흥취를 돋운다. 자진모리는 밝고 경쾌하고, 휘모리는 흥분과 급박감이 있다.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 산조보다 먼저 만들어졌으며, 뛰어난 기교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끌어서 여러 유파가 형성되었다.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는 막아내기, 눌러내기 등 어려운 기교가 많아 기교파의 총수로 평가된다. 특징을 보면 산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계면조(슬프고 처절한 느낌을 주는 음조)를 줄이고, 우조(맑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 음조)와 강산제(목소리가 분명하고 정교하여 화창하고 맑은 느낌을 주는 음조)를 많이 끌어들임으로써 호쾌하고 온화한 면이 많다. 가락은 복잡하고 불규칙적이며 엇박이 많이 나타난다.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는 전통음악 중에서 순수한 음악미를 추구하는 독주곡으로, 다른 산조에 비해 경쾌한 느낌을 주는 귀중한 음악이다. 현재 강태홍류가야금산조보존회에서 전승·보존에 힘쓰고 있다.
  • 2000.7.7
    지정일
    고창농악은 예로부터 고창, 무장, 영광 등지의 해변을 끼고 형성된 농악이다. 호남 우도 농악의 일반적인 성격을 지니면서도 잡색놀음이 다양하게 발달한 점과 고깔소고놀음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고깔소고놀이는 머리에 고깔을 쓰고 삼채가락에 맞추어 춤을 흥겹게 추는 것으로서 가락의 진행과 상황전개에 따라 즉흥적인 동작을 유연하게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강모질의 제자인 정창환 씨는 소고 부문에서 보유자로 인정되어 현재는 고창동리국악당 및 고창농악전수관에서 후진양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