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4 페이지 > Little Korea

K-HISTORY

Meaningful Days of Korean History

  • 1989.7.1
    시행일
    의료보험제도는 1963년 의료보험법을 시작으로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 1979년 공무원 및 사립학교, 1988년 5인이상 사업장 및 농어촌, 1989년 도시지역 등으로 확대되어 1989년 7월 1일 전국민 대상 의료보험으로 발전하였다.
  • 1979.7.3
    개장일
    1979년 7월 3일 연 건평 8,300평의 한국종합전시장 개장식이 서울 삼성동 현장에서 열렸다.

    이 전시장은 지하1층, 지상3층으로 되어 있고, 전시시설, 국제회의실 등이 갖추어졌다.

    원래 명칭은 KOEX였으나 1998년에 명칭을 COEX (COnvention & EXhibition ) 로 변경하였다. 2호선 삼성역과 9호선 봉은사역이 코엑스와 연결되어 있다.

    종합전시시설은 본관과 별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변에는 외국인 카지노를 비롯, 호텔과 백화점 등의 편의시설이 있으며, 지상에 공연장인 '코엑스 아티움' 위치하고 있다.
  • 1972.7.4
    역사적 사건일
    7·4 남북 공동 성명(7·4 南北 共同 聲明)은 1972년 7월 4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국이 국토 분단 이후 최초로 통일과 관련하여 합의, 발표한 공동성명이다.

    1972년 박정희의 지시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파견되어 김일성과 만나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 원칙을 제정하였다.

    국제적 데탕트 분위기와 주한미군 철수선언, 군비경쟁 축소를 위해 제정되었으나 이후 통일논의를 통해 남북 양측이 자국 권력기반 강화를 위해 이용되었다.
  • 1970.7.7
    개통일
    서울-부산간 고속도로는 조국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민족번영 도로이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 1일 착공해 2년 5개월만인 1970년 7월 7일 준공·개통했다.

    당시 연인원 892만명, 연장비 165만대, 공사비 429억원 등을 투입해 428km의 고속도로를 완성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의 탄생은 우리 경제의 발전과 사회문화 확산 계기를 낳았다. 수송 구조가 철도에서 도로 위주로 변화되며 화물수송의 신속·대량화가 이뤄졌다.

    또 경부축을 따라 산업단지가 증가하고 생산활동인구가 유입되며 도시는 성장할 수 있었다. 전국의 일일생활권화로 현대화·도시화 및 국가 균형발전 촉진의 원동력이 됐다.
  • 1998.7.7
    우승일
    1977년 9월 28일 대전 유성에서 태어난 박세리는 아버지 박준철의 권유로 1989년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어린 나이에 훈련장에서 새벽 2시까지 혼자 남아 훈련을 하는 등 스스로 최고가 되기 위해 쉬는 날도 없이 엄격한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에 프로로 전향했고, 1998년에 LPGA 투어에 참가했다.

    투어 참가 첫 해에 LPGA 챔피언십과 US 여자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특히 IMF 국금융시대에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악전고투 끝에 우승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 1937.7.12
    방문일
    Helen Adams Kelle r(1880년 6월 27일 ~ 1968년 6월 1일)

    미국의 사회운동가. 듣지도 보지도 못했으나 장애를 극복하고, 인권 운동가, 사회주의자 등 다방면으로 활동한 거룩한 인물이다.

    1937년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서울(당시는 경성)에서 강의를 마치고 평양으로 향하는 기차가 개성에 잠시 정차했을 때 그 시간을 놓치지 않고 강연을 했다고 한다. 
    대구에도 방문했다. 그리고 이후 한국전쟁 때도 방한한 적이 있다.
  • 2003.7.14
    시작일
    2002년 세계 최초로 DDR(Double Data Rate)2 D램을 개발해 2003년 양산에 들어감으로써 고속 D램 시대가 개막됐다.

    2004년 80나노 1Gb DDR2, 2005년 DDR3 D램과 70나노 DDR2 D램, 2006년 50나노 1Gb DDR2 등에 이어 2010년에는 30나노급 DDR3 D램까지 세계 최초 타이틀을 이어갔다.
  • 1907.7.14
    이준 순국일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됩니다. 자력으로는 망국의 위기를 벗어나기 힘든 상황, 고종은 외세의 도움을 구하기로 결심하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3인을 파견합니다. 이준, 이상설, 이위종입니다.

    이들은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해 회의장으로 향했지만 참석을 거부당합니다. 정식 초청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만국평화회의 참석이 좌절되자 이준은 크나큰 분노로 병을 얻습니다. 수일 후인 1907년 7월 14일, 먼 타국 땅 작은 호텔방에서 헤이그 특사 이준은 숨을 거둡니다.
  • 1948.7.17
    국경일
    ‘제헌절’은 1948년 7월 17일 헌법이 제정·공포된 것을 축하하고, 그 이념 수호를 다짐하며 준법정신을 앙양하기 위해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해서 제정된 국경일이다.
  • 1989.7.18
    수상일
    영화배우 강수연이 1989년 7월 18일 폐막된 제16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출품되어 여우주연상을 따낸 모스크바 영화제는 칸·베를린·베니스 영화제와 더불어 세계4대 영화제의 하나로 꼽히는 공산권의 최대 영화제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한 비구니가 출가와 방황, 고뇌를 통해 불교적 깨달음을 얻어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 1947.7.19
    여운형 암살일
    여운형은 1918년, 상하이에서 신한청년당을 결성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9년에는 조선 독립을 알리기 위해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했고, 상해임시정부 초대내각에 외무부 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19년 11월, 여운형은 일본 내각의 초청을 받는다. 수백 명의 일본기자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그는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고 일본 정부를 비판한다. 여운형을 회유하려 한 일본 내각은 역풍을 맞아 중의원 해산 사태에 놓인다. 1929년, 여운형은 일제 경찰에 체포돼 3년간 수감된다. 출옥 후, 조선중앙일보 사장이 된 그는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우승하자 일장기 삭제 사진을 게재했다.

    1944년 8월, 여운형은 좌우를 망라한 애국세력을 모아 건국동맹을 결성한다. 이는 해방 후 출범 이틀 만에 체계를 갖춘 건국준비위원회의 밑바탕이 된다. 그러나 통일정부 수립의 길은 쉽지 않았다. 모스크바 3상회의의 신탁통치 안으로 좌우대립이 극렬해졌다. 통일임시정부 구성을 논의하려던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됐다.

    1946년 6월, 이승만은 정읍에서 단독정부 수립을 제안하고, 여운형은 이를 반대한다.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좌우합작을 추진한 여운형에게 양 진영의 비난과 공세가 쏟아지고, 그를 향한 끊임없는 테러가 발생한다. 결국 여운형은 1947년 7월 19일, 암살당한다. 그의 죽음으로 통일정부 수립의 꿈이 멈춰버린다.
  • 1985.7.19
    개통일
    1985년 7월 19일 부산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다.

    개통된 노선은 부산시 금정구 노포동에서 범내골을 연결하는 것으로 부산지하철 1호선의 1단계 구간이었다.

    2017년 4월 20일 다대포해수욕장역 구간을 끝으로 전구간 개통한 부산광역시의 첫번째 도시철도 노선이다.

    전국의 비수도권 도시에서 최초로 개통된 도시철도이다.
  • 1978.7.20
    준공일
    1978년 7월 20일 원자력 발전소를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건설하고 준공식 및 5,6호기 기공식을 했다.

    지난 세월동안 고리 1호기는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뒷받침했다.

    가동 첫해인 1978년 우리나라 전체 발전설비 용량의 9%를 감당했고, 이후 늘어난 원전으로 우리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크게 늘어난 전력수요에 대응할 수 있었다.

    2017년 6월 19일, 1977년 완공 이후 40년만에 국내 최초의 고리원전 1호기를 영구 정지했다.
  • 1979.7.20
    우승일
    김진호 (1961년 12월 1일 ~ ) 선수는 경상북도 예천군 출신으로, 예천여중 재학 중 양궁을 시작했다.

    예천여고 재학 중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1979년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 양궁 선수권 대회에서 30m, 50m, 60m, 개인 종합, 단체전을 석권하며 5관왕에 올라 세계 양궁을 제패했다.

    1980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하계 올림픽에서도 큰 기대를 모았으나, 대한민국의 보이콧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198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다시 5관왕에 오른 김진호는 세계무대에 한국 양궁의 저력을 알린 최초의 선수이다.
  • 1948.7.24
    취임일
    1948년 7월 20일 국회에서 제1대 대통령·부통령선거를 실시했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어야 당선되는 간접선거 방식이었다.

    후보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이승만, 무소속의 김구·안재홍 3명이었다.
    선거 결과 국회 재적의원 198명 중 197명이 출석해 이승만이 92.3%의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김구는 13표, 안재홍은 2표를 얻었다.
    부통령선거에서는 133표를 얻은 이시영이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