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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ISTORY

Meaningful Days of Korean History

  • 1987.12.16
    당선일
    한국의 제13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로, 1987년 12월 16일에 실시되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 16년 만에 치뤄진 대통령 직접선거로, 실로 오랜만에 치러진 직선제 선거이니만큼 참여 열기가 매우 뜨거워 투표율은 89.2%로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이후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선거 결과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후보가 2위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를 득표율 8.6%p, 194만5,157표 차로 꺾고 당선되었다.

    군부정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죽다 살아난 롤러코스터 선거였지만, 가열차게 민주화 투쟁을 한 이들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죽 쒀서 개 준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영호남 갈등은 더욱 깊게 패여만 갔고, 특히 PK와 호남 사이의 갈등이 확연히 심해진 계기가 되었다.
  • 1598.12.16
    전사일
    이순신(李舜臣, 1545년 4월 28일 ~ 1598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은 진도군수, 전라좌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조선 중기의 무신이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부하들을 통솔하는 지도력, 뛰어난 지략, 그리고 탁월한 전략과 능수능란한 전술로 일본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하였다.

    1598년 11월 19일(양력 12월 16일) 새벽 노량·관음포 해전에서 선두(船頭)에 나서서 적군을 지휘하다가 애통하게도 적의 유탄에 맞았다.

    죽는 순간까지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삼가라.” 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순신 장군은 풍전등화에 처한 조선을 구한 성웅(聖雄)으로 추앙받고 있다.
  • 2009.12.16
    선정일
    삼성경제연구소는 2009년 12월 16일 누리꾼 1만1538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와 전문가 검토를 토대로 ‘2009년 10대 히트상품’을 선정해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서 올해의 히트상품 1위 자리에 오른 제품은 ‘막걸리’ 였다.

    막걸리는 한국의 전통주의 한 종류로 소주, 맥주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흔히 보이고 소비되는 술이다.

    쌀로 밑술을 담가 거기서 청주(淸酒)를 걸러내고 남은 술지게미를 다시 체에 물로 걸러낸 술로 양조주에 속한다.

    원래 막걸리는 이렇게 청주에서 파생된 저가품이다.

    다만 청주의 수요가 적어진 현대에는 막걸리 전용으로 양조를 하여 전부 물에 섞어 걸러내는 경우가 대다수다.

    막 걸러냈다고 해서 막걸리라고 하며, 투명한 청주에 비해 흐리다 해서 탁주라고도 한다.
  • 1963.12.17
    당선일
    1963년 10월 15일 직접 선거에 의한 제5대 대통령 선거로 박정희 후보가 당선되었다.

    박정희 후보와 윤보선 후보의 득표차는 역대 1위 대통령 후보와 2위 대통령 후보 간 득표차 중 최소인 15만 6,026표를 기록하였으며, 두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이어 두번째로 작은 1.55%를 기록하였다.
  • 1997.12.18
    제15대 대통령 당선일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이다. 1997년 12월 18일 목요일에 실시되어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다.

    새정치국민회의의 대통령 후보 김대중과 자유민주연합의 대통령 후보 김종필은 1997년 11월 3일 대선 후보 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하고 김대중으로 대선 후보를 단일화한 뒤 김대중이 당선될 경우 공동 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으로 장면 내각이 실각한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계 정당이 36년 만에 집권한 최초의 평화적인 민주적 정권 교체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 1962.12.18
    출발일
    1962년 12월 18일 총 17가구 91명의 브라질 이민단이 부산항을 출발했다.

    1962년 해외이주법 공포 후 양국 정부 간 정식 이민절차를 밟은 첫 이민이었다.

    이민단은 55일간의 항해 후 브라질 산토스항에 도착하였다.

    1960년대에는 이를 시작으로 총 5차에 걸쳐 브라질 농장을 목적지로 한 계획이민이 이루어졌다.
  • 1962.12.20
    국보 지정일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陜川 海印寺 大藏經板) 또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Tripitaka Koreana 트리피타카 코레아나)은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에 있는,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불력(佛力)으로 막아내고자 1236년(고종 23년) 강화군에서 조판에 착수하여 15년이 지난 1251년(고종 38년)까지 총 16년에 걸쳐 완성한 고려의 대장경이다.

    1962년 12월 20일에 대한민국의 국보 제32호 해인사대장경판(海印寺大藏經板)으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팔만대장경은 2007년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1965.12.20
    국보 지정일
    고려자기(高麗磁器)는 고려 때의 도자기로서, 청자(靑磁)·백자(白磁)·흑유자(黑釉磁)·철유자(鐵釉磁) 등 고려시대에 제작된 자기를 일컫지만, 일반적으로는 고려청자를 지칭하는 말로 인식되어 왔다.

    고려청자는 송나라 도자기의 영향을 받아 발달한 것이나 송나라의 그것보다도 기법이 훨씬 우수하여 송나라 사람도 이를 천하의 제일품이라고 칭찬하였다.

    고려청자의 우수한 점은 첫째 그것이 지니는 아름다운 색깔을 들 수 있다. 황록색(黃綠色)이나 황갈색(黃褐色)의 것도 있으나 비색(翡色)의 것은 특히 아름답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국보 제115호 청자 상감당초문 완이 있다.
  • 1962.12.20
    지정일
    첨성대는 경주시 반월성 동북쪽에 위치한 신라시대 중기의 석조 건축물이다.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높이는 약9m이다.

    선덕여왕때에 세워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1호로 지정되었다.
  • 1962.12.20
    국보 지정일
    경주 태종무열왕릉비(慶州 太宗武烈王陵碑)는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무열왕릉에 있는 신라 중기(7세기)에 건립된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의 능비(陵碑)이다. 무열왕릉비라고 약칭하기도 한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던 비(碑)들은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받침돌은 거북 모양을 하고 있고, 비몸위의 머릿돌에는 용의 모습을 새겨져 있는데, 태종무열왕릉비는 이러한 양식이 나타난 그 최초의 예가 되고 있다.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25호로 지정되었다.
  • 1962.12.20
    국보 지정일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대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삼층석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軀)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주실 안에 모시고 있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질 듯 하다.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되었다.

    한편, 현재 석굴암은 내부 전면 공개 관람 시 항온항습 등의 문제가 우려되어 1976년부터 유리벽을 통한 외부관람을 실시하고 있다.
  • 1962.12.20
    국보 지정일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정문으로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5년(1396)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이 건물은 세종 30년(1448)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방화 화재로 누각 2층 지붕이 붕괴되고 1층 지붕도 일부 소실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며, 5년 2개월에 걸친 복원공사 끝에 2013년 5월 4일 준공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서울 성곽 중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ㅇ 숭례문 방화 화재(2008.2.10)

    -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崇禮門放火事件)은 2008년 2월 10일 ~ 2월 11일 숭례문 건물이 방화로 타 무너진 사건이다. 화재는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전후에 발생하여 다음날인 2008년 2월 11일 오전 0시 40분경 숭례문의 누각 2층 지붕이 붕괴하였고 이어 1층에도 불이 붙어 화재 5시간 만인 오전 1시 55분쯤 석축을 제외한 건물이 훼손되었다.
  • 1962.12.20
    국보 지정일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짓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완성하여 나라의 복을 비는 절로 삼게 되었다.

    다보탑과 석가탑(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제21호)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29m, 10.75m로 비슷하다.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탑이 다보탑이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석가탑을 보면 2단의 기단(基壇)위에 세운 3층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十)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된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으며, 현재 1마리의 돌사자가 남아있다.
  • 1962.12.20
    국보 지정일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탑골 공원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탑으로 대한민국의 국보 제2호이다.

    석탑은 1467년(세조 13년)에 세워졌으며 3층의 기단과 10층의 탑신으로 되어 있고 인물과 화초 무늬 따위가 양각되어 있다.

    맨 위 3층은 오랫동안 무너져 내려져 있던 것을(새똥으로 인해 부식되었다.

    1947년에 원상태로 복구하였다. 2000년에는 표면 훼손이 심각해 유리 보호각을 씌워 놓은 상태다.
  • 1962.12.20
    국보 지정일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는 신라의 진흥왕이 새로 공략한 국경지대를 순시한 다음 세운 비 이다.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1970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3호로 지정되었다.